부정선거론과 싸우는 미국 선관위

2024년 10월, 미국 대통령선거를 약 2주 앞두고 조지아주에서 한 유권자가 이상한 일을 겪었다고 주장했다. 터치스크린 투표기에서 선택한 후보와 출력된 투표용지의 내용이 달랐다는 것이었다. 공화당 소속 마저리 테일러 그린(Marjorie Taylor Greene) 하원의원은 이를 투표기가 유권자의 선택을 바꾼 사례로 언급했다.

그러나 조지아주 선거 당국의 조사 결과는 달랐다. 당시까지 약 6,000표가 행사된 가운데 제기된 한 건의 사례였고, 문제가 된 투표용지는 폐기된 뒤 해당 유권자는 다시 정상적으로 투표했다. 선거 당국은 투표기가 표를 바꿨다는 증거를 발견하지 못했으며 지금까지 확인된 사례들은 대부분 화면을 잘못 누르는 등의 유권자 실수에서 비롯됐다고 설명했다.

개별적으로 보면 투표기 사용 과정에서 발생한 작은 사건이지만 2024년 미국 선거관리 당국이 마주하고 있던 문제는 기계 한 대의 오류 여부보다 훨씬 컸다.

“투표기가 표를 바꾼다. 실제 투표할 수 있는 사람보다 등록 유권자가 더 많다. 시민권이 없는 사람들이 대규모로 투표하고 있다.”

AP통신은 당시 이런 부정선거 주장들이 소셜미디어를 통해 빠르게 확산되면서 주정부와 지방정부의 선거 담당자들이 사전투표를 관리하고 본투표를 준비하는 동시에 끊임없이 잘못된 정보를 해명해야 했다고 보도했다. 기사 제목에는 이를 ‘투표 음모론의 쓰나미(a tsunami of voting conspiracy theories)’라고 표현하기도 했다.

물론 이러한 사례는 미국만의 이야기는 아니다.

2025년 제21대 대통령선거를 앞두고 한국에서는 선관위가 비치한 기표용구 대신 개인 인감도장을 이용해 투표해야 부정선거를 막을 수 있다는 정보가 온라인을 통해 확산됐다. 그러나 공직선거법에 따르면 정해진 기표용구가 아닌 다른 도구로 투표하면 오히려 무효표가 될 수 있다.[1]

2026년 6·3 지방선거에서도 비슷한 주장이 반복됐다. 사전투표 때는 선거 시스템이 인터넷에 연결돼 있어 결과를 조작할 수 있다는 주장, 외국인이 부정한 방법으로 선거에 참여한다는 주장, 사전투표 관리관의 도장이 인쇄된 투표지가 가짜 투표지를 만드는 데 사용된다는 주장 등이 SNS를 통해 확산됐다. 선관위는 선거 전용 통신망이 외부 인터넷망과 연결되지 않은 폐쇄망이며 승인된 전용 단말기만 접근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지방선거에서 투표권을 갖는 외국인 역시 단순 관광객이 아니라 일정 기간 국내에 거주하면서 영주자격 등 법이 정한 요건을 갖춘 경우에 한정된다.[2]

이미 여러 차례 설명된 주장들이 선거 때마다 다시 등장하고 있다.

그렇다면 왜 이런 일은 반복되는 것일까.

가장 간단한 설명은 잘못된 정보를 만들어내는 사람에게 책임을 돌리는 것이다. 실제로 정치적 목적이나 관심을 얻기 위해 확인되지 않은 정보를 퍼뜨리는 경우도 있다.

그러나 그것만으로는 같은 이야기가 반복해서 받아들여지는 이유까지 설명하기 어렵다.

서울여대 유지윤 교수는 AFP와의 인터뷰에서 선거 관련 음모론 역시 다른 음모론과 마찬가지로 이용자가 관련 콘텐츠에 한 번 노출되면 알고리즘을 통해 비슷한 콘텐츠를 계속 접하게 되고 결국 일종의 ‘필터 버블(Filter Bubble)’에 갇힐 수 있다고 설명하기도 했다.[2]

사람은 모든 정보를 처음부터 다시 검토하지 않는다. 이미 자신이 믿고 있는 생각과 비슷한 정보를 더 쉽게 받아들이고, 같은 설명을 반복해서 접하면 그것을 주변 사람들도 알고 있는 일반적인 사실처럼 느낄 가능성이 커진다. 여기에 SNS의 알고리즘 구조가 더해지며 일종의 ‘에코 챔버(echo chamber)’안에 갖혀 본인의 생각을 더욱 강화하는 현상이 일어나는 것이다. 확증편향과 같은 현상도 가능해진다.

선거제도가 어떻게 운영되는지 설명하려면 이야기가 길어진다. 유권자 등록과 본인 확인, 투표용지 발급, 투표함 보관, 개표, 수검표와 같은 여러 절차를 설명해야 한다. 반면 “투표기가 표를 바꿨다”거나 “사전투표 시스템은 인터넷으로 조작할 수 있다”는 주장은 한 문장이면 충분하다. 그리고 그로 인한 임팩트도 강하다.

사실은 복잡하지만 의혹은 단순하다.

그러나 한국의 사례를 보면 문제는 여기서 한 단계 더 복잡해진다.

실제로 선거관리 과정에서 실수가 발생하기 때문이다.

2025년 5월 대통령선거 사전투표 당시 경기 용인의 한 투표소에서 한 유권자가 받은 회송용 봉투 안에서 이미 기표된 투표용지가 발견됐다.

처음 상황만 보면 충분히 의심스러운 장면이었다.

중앙선관위는 당시 유권자의 자작극 가능성을 의심해 경찰에 수사를 의뢰했다. 하지만 경찰이 관련자 조사와 CCTV 분석, 휴대전화 내역 확인, 국립과학수사연구원의 지문감정까지 진행한 결과 원인은 다른 곳에 있었다. 투표사무원이 앞선 유권자에게 회송용 봉투를 두 개 지급했고, 그중 하나를 돌려받는 과정에서 제대로 확인하지 않은 채 다음 유권자에게 다시 건넨 것이었다. 경찰은 사건의 원인이 투표사무원의 실수라고 판단하고 수사를 받던 유권자를 혐의없음으로 불송치했다.[3]

이 사건은 선거 불신을 바라볼 때 중요한 구분을 보여준다.

선거관리에 실수가 있었다는 사실과 선거 결과가 조직적으로 조작됐다는 주장은 같은 것이 아니다. 하지만 관리상의 실수가 반복되면 더 큰 의혹이 제기될 가능성이 커지는 것도 사실이다.

따라서 모든 문제 제기를 음모론이라고 치부해서도 안 되고, 하나의 실수를 발견했다고 해서 선거 전체가 조작됐다고 결론 내려서도 안 된다.

보안 문제도 마찬가지다.

2023년 국가정보원의 선관위 보안점검에서는 통합 선거인명부 시스템 등에 여러 보안 취약 가능성이 확인됐다. 국정원은 해커의 관점에서 기술적인 취약점을 점검한 결과라고 설명했다. 다만 국정원 스스로 이 결과를 과거 선거 결과에 대한 의혹과 연결하는 것은 경계해야 한다고 밝혔다. 선관위 역시 실제 해킹 흔적이 확인된 것은 아니었고 기술적인 취약점 역시 보안 수준을 일부 낮춘 상황에서 모의실험을 한 것이라는 입장을 내놓았다.[4]

취약점이 있다는 것과 실제 공격이 있었다는 것은 서로 다른 주장이다.

건물의 출입문에서 보안상 문제가 발견됐다는 사실은 문을 보강해야 할 이유가 된다. 그러나 그것만으로 이미 누군가 침입해 물건을 훔쳤다고 결론 내릴 수는 없다. 실제 침입을 주장하려면 또 다른 증거가 필요하다.

선거도 마찬가지다.

2020년 제21대 총선을 둘러싸고 제기된 대표적인 선거무효 소송에서는 대법원이 사전투표지 4만5,593장을 이미지로 만들어 QR코드를 확인하고, 원고 측이 위조됐다고 주장한 투표지를 별도로 선별해 감정까지 진행했다. 그러나 대법원은 선거 결과를 뒤집을 부정행위를 입증할 증거가 발견되지 않았다고 판단했다.[4]

의혹은 검증할 수 있어야 한다. 동시에 검증 결과도 받아들일 수 있어야 한다.

이 점에서 선거관리기관의 역할 역시 달라지고 있다.

2025년 대통령선거에서 중앙선관위는 사전투표함 보관 상황을 CCTV로 24시간 공개하고, 개표 과정에서 투표지를 사람이 다시 확인하는 수검표 절차를 유지했다. 사전투표 기간에는 투표소별 투표자 수도 한 시간 단위로 공개하기로 했다.[5]

물론 이런 조치가 모든 의혹을 사라지게 만들지는 못한다. 그러나 중요한 방향은 보여준다.

선거 신뢰는 시민에게 단순히 “선관위를 믿어 달라”고 요구한다고 만들어지지 않는다. 투표지가 어떻게 발급되고 이동하는지, 투표함은 어떻게 보관되는지, 개표 과정에서 기계와 사람이 각각 어떤 역할을 하는지를 유권자인 시민들이 직접 확인할 수 있어야 한다.

선거관리기관 역시 완벽할 수는 없다.

실수가 발생하면 인정하고 원인을 설명해야 한다. 보안상 취약점이 발견되면 개선해야 한다. 반대로 사실과 다른 주장이 제기됐을 때는 막연한 해명보다 확인 가능한 절차와 자료로 반박해야 한다.

바로 여기에 음모론과 정당한 의혹을 구분하는 기준이 있다.

의혹을 제기하는 것 자체가 문제인 것은 아니다.

민주주의에서 국가기관과 선거제도를 의심하고 검증하는 일은 필요하다. 오히려 아무런 검증 없이 제도를 믿도록 요구하는 것이 더 위험할 수 있다.

하지만 의심에는 그에 맞는 증거가 필요하다. 그리고 새로운 증거가 나오면 기존의 판단도 바뀔 수 있어야 한다.

사람은 실수하고 시스템에는 취약점이 생길 수 있다. 선거를 둘러싼 정치적 이해관계 역시 사라지지 않는다.

그래서 필요한 것이 공개와 감시, 검증 절차와 증거다.

민주주의가 유지되는 이유는 선거제도가 완벽하기 때문이 아니라 그것을 검증하는 시스템이 있기 때문일 것이다.

참고자료

[1] 오지은, 「[영상] ‘인감도장 투표’ 가짜뉴스 기승…선관위 “기표용구로 투표해야”」, 연합뉴스, 2025년 5월 31일.

[2] Grace Moon and Hawon Jung, 「6·3 지방선거기간 중 다시 고개 든 부정선거 음모론」, AFP 팩트체크 한국, 2026년 6월 4일.

[3] 강영훈, 「선관위 ‘자작극 의심’에 애먼 유권자 수사…경찰, 무혐의 처분」, 연합뉴스, 2025년7월 8일.

[4] 황윤기, 「尹탄핵심판 ‘부정선거론’ 격돌 예고…대법선 모두 기각·각하」, 연합뉴스, 2025년 2월 10일.

[5] 조다운, 「[대선 D-7] 선관위, 사전투표 관리 총력…”투명성 확보 최우선”」, 연합뉴스, 2025년 5월 27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