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가 주: 아래 내용은 개인적 공부를 위해 정리한 것으로, Pippa Norris의 「The new research agenda studying electoral integrity」(2013)와 Sebastian Bay의 「Protecting Electoral Integrity: The Case of Sweden」(International IDEA, 2025)을 중심으로 정리한 글이다.
선거에서 투표용지 위변조, 개표 결과 조작, 특정 후보가 출마하기 어렵도록 선거법 설계, 유권자 명부 부정확, 투표소 운영 장애 등은 대표적인 선거관리 문제점들이다.
최근 여기에 새로운 문제가 더해졌다.
선거관리기구 홈페이지를 겨냥한 사이버공격, 가짜 공식 계정, 선거 절차에 대한 허위정보, 외국의 정보공작처럼 표 자체를 바꾸지 않고도 선거에 대한 신뢰를 흔드는 방식이다.
피파 노리스(Pippa Norris)는 이러한 다양한 문제들을 하나의 틀에서 보기 위해 “선거 무결성(electoral integrity)”이라는 개념을 오래 전부터 제시하고 있다.[1]
선거 무결성 electoral integrity
선거를 평가할 때 흔히 사용하는 표현은 ‘자유롭고 공정한 선거(free and fair election)’이다. 하지만 이 표현은 상당히 추상적이다. 민주주의 이론에서는 참여, 포괄성, 책임성, 투명성과 같은 기준을 제시하지만 이 역시 국가 간 선거를 비교하기에 구체적이지 않다.
피파 노리스는 이를 보완하기 위해 선거 무결성을 “국제협약과 세계적으로 공유되는 규범에 따라 선거 전 과정이 운영되는 상태”로 정의한다.
1. 국제적으로 공유되는 규범을 기준으로 한다.
2. 선거 문제의 심각성을 구분한다.
3. 선거 무결성 문제는 모든 국가에서 발생할 수 있다고 본다.
4. 투표일이 아니라 선거 주기 전체를 평가한다.
국제 규범을 기준으로 삼는 이유
국내법만으로 선거의 공정성을 평가하기에는 한계가 있다. 왜냐하면 국내법을 지켰다고 해서 반드시 공정한 선거라고 할 수는 없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권위주의 정부가 야당에 불리하도록 후보자 등록 요건을 만들거나 선거구를 설계한 뒤 그 법률을 충실하게 지켰다고 해서 그 선거가 공정하다고 평가하기는 어렵다.
따라서 피파 노리스는 각국의 국내법보다 상위에 있는 비교 기준으로 국제사회가 합의해 온 선거 원칙을 제시하는데, 대표적인 출발점은 1948년 세계인권선언(Universal Declaration of Human Rights) 제21조 제3항이다.
“The will of the people shall be the basis of the authority of government; this will
shall be expressed in periodic and genuine elections which shall be by universal and equal suffrage and shall be held by secret vote or by equivalent free voting procedures.”정부 권력은 국민의 의사를 기초로 해야 하며, 그 의사는 정기적이고 진정한 선거, 보통·평등선거와 비밀투표 등을 통해 나타나야 한다는 원칙이다.
1966년 시민적 및 정치적 권리에 관한 국제규약(International Covenant on Civil and Political Rights, ICCPR) 제25조에서는 이를 보다 구체화하고 있다.
정기성: 선거가 일정한 주기로 실시돼야 한다. periodic elections at regular intervals
보통선거: 자격을 갖춘 사회 구성원이 폭넓게 참여할 수 있어야 한다. universal suffrage
which includes all sectors of society
평등선거: 기본적으로 1인 1표의 원칙이 보장돼야 한다. equal suffrage, in
the idea of one-person, one-vote
출마권: 공직 선거에 출마할 수 있는 권리가 보장돼야 한다. the right to stand for
public office and contest elections
투표권: 자격을 갖춘 유권자가 실제로 투표할 수 있어야 한다. the rights of all
eligible electors to vote
비밀투표: 누구에게 투표했는지가 보호돼야 한다. the use of a secret ballot process
진정한 경쟁: 형식적으로만 후보가 존재하는 선거가 아니어야 한다. genuine elections
자유로운 의사: 유권자의 선택이 협박이나 강압 없이 표현돼야 한다. elections should
reflect the free expression of the will of the people
이러한 기준들은 선거가 국민의 자유로운 정치적 선택을 실제로 반영하기 위해 지켜야 할 최소한의 기준으로 보는 것이 타당할 것이다.
모든 선거 문제가 같은 수준은 아니다
피파 노리스는 선거 무결성을 훼손하는 문제를 심각성에 따라 크게 1차적 문제(first-order malpractice)와 2차적 문제(second-order malpractice)로 구분했다.
| 구분 | 주요 성격 | 사례 | 예상되는 영향 |
|---|---|---|---|
| 1차적 문제 | 중대한 인권 침해와 폭력 | 정치 탄압, 유권자 협박, 선거 폭력 | 정권 정당성·사회 안정까지 위협 |
| 2차적 문제 | 행정·기술·관리상의 문제 | 부정확한 선거인 명부, 행정 오류, 기술적 실패 | 선거 신뢰와 절차적 정당성 저하 |
1차적 문제에는 사망자가 발생하는 선거 폭력이나 기본권을 심각하게 침해하는 정치 탄압 등이 포함된다. 반면, 2차적 문제는 오래된 선거인 명부, 선거관리 과정의 실수, 부족한 행정 능력처럼 상대적으로 일상적인 문제다.
선거제도와 정부기관에 대한 신뢰가 높은 사회에서는 작은 행정적 실수가 발생하더라도 법원이나 선거관리기관을 통해 해결될 가능성이 높다. 반대로 정치적 갈등이 심하고 국가기관에 대한 신뢰가 낮은 사회에서는 작은 오류 하나가 선거 전체에 대한 불신으로 번질 수 있다.
결국 문제의 심각성은 사건 자체뿐 아니라 그 사건이 발생한 정치적·사회적 환경과 함께 봐야 한다.
선거는 하나의 사이클이다
선거는 투표, 개표가 이루어지는 선거일도 중요하지만, 전체 사이클을 보면서 판단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
선거 주기(electoral cycle)에 대해 ACE project 는 아래와 같이 예시로 제시하고 있다.[2]
1. 선거 관련 법률과 규칙 설계 – 2. 선거관리 조직과 인력 준비 – 3. 선거 계획 수립 – 4. 유권자 등록 – 5. 정당과 후보자 등록 – 6. 선거운동 – 7. 투표 – 8. 개표와 집계 – 9. 결과 발표 – 10. 선거 분쟁 해결 – 11. 감사 및 기록보관
선거의 여러 단계 중 하나라도 문제가 발생하면 전체 선거의 신뢰성에 영향을 주게 된다.
예를 들어 투표와 개표가 정확하더라도 유력 야당 후보가 출마하지 못하도록 법률이 설계됐다면 이미 경쟁 조건이 왜곡됐다. 특정 정당에 유리하도록 선거구를 획정하거나, 일부 유권자가 등록하기 어렵도록 행정절차를 만들거나, 국영 언론이 한쪽 후보만 집중적으로 보도하는 경우도 마찬가지다.
따라서 ‘선거일에 투표와 개표가 정확하게 이루어졌다’는 사실만으로 선거 전체가 공정했다고 결론 내리기는 어려울 것이다.
스웨덴 사례
스웨덴은 선거 부정이 발생되어 기존 제도를 개혁한 국가가 아니다. 오히려 민주주의가 탄탄하고 선거제도와 선거관리기관에 대한 신뢰도도 매우 높은 국가에 속한다. 영국 Economist 지가 매년 발표하는 민주주의 지수(Democracy Index)에서도 늘 상위권에 위치하는 국가다. 2024년에도 전세계 3위였다.[3]
하지만 2016년 미국 대통령 선거에 대한 러시아의 개입은 스웨덴에 경종을 울리는 계기가 되었다. 2017년 미국 정보공동체 평가보고서(U.S. Intelligence Community Assessment)는 이러한 개입을 상세히 설명했으며 러시아가 여기에서 얻은 교훈을 향후 유사한 활동에 활용할 것이고 여기에는 미국 동맹국들의 선거 과정에 대한 활동도 포함될 것이라고 결론 내렸다. 러시아가 사용한 수단과 전술에는 허위정보와 소셜미디어 조작이 포함됐다. 지정학적 긴장이 점차 높아지는 상황에서 스웨덴이 이미 크렘린이 지원하는 허위정보의 표적이 되고 있다는 점을 인식한 스웨덴 당국은 향후 선거가 외국의 개입 위험에 노출될 수 있다고 판단했다. 이에 스웨덴은 허위정보를 퍼뜨려 시민이 선거 결과를 믿지 못하게 만드는 것, 선거기관 홈페이지를 마비시키는 것, 가짜 공식 계정을 만드는 것, 투표소에서 위협이나 소란을 일으키는 것까지 선거 보호의 범위에 포함하여 대책을 마련하였다.[4]
스웨덴의 선거 보호 체계에서 중요한 것은 강력한 중앙기관 하나를 만드는 것보다 여러 기관이 동일한 위험 정보를 공유하고 함께 대응할 수 있는 구조를 만드는 것이었다. 스웨덴이 선택한 핵심 장치는 ‘선거 협력 네트워크’였다. 2017년 선거관리청의 요청으로 처음 국가 차원의 협력체가 만들어졌고, 보안경찰(Security Service)과 시민비상대응청(Civil Contingencies Agency, MSB)이 공동으로 운영에 참여했다. 경찰청과 국세청 등 선거에 필요한 기관들도 참여했다. 스웨덴 선거 보호 체계에서 중요한 특징은 ‘예방’이었다. 선거 직전에 문제가 발생하면 대응하는 것이 아니라 사전에 무엇이 공격받을 수 있고 어떤 부분이 취약한지를 분석한다. 2018년 선거를 앞두고 MSB와 선거관리청, 지역기관은 선거기관이 사용할 수 있는 위험 및 취약성 평가 지침을 만들었다.[4]
스웨덴 사례에서 반복되는 단어는 ‘신뢰(public trust)’이다. 2018년과 2019년 선거를 준비하면서 스웨덴 당국은 실제 부정행위뿐 아니라 작은 사건이나 근거 없는 부정선거 주장도 선거제도에 대한 신뢰를 심각하게 약화시킬 수 있다고 판단했다. 이 때문에 대응도 두 방향으로 이루어졌다.
첫째, 실제 선거 절차를 안전하게 만들어야 한다. 선거인 명부, 투표소, 개표, 정보시스템과 선거인력을 보호해야 한다.
둘째, 정상적으로 운영되는 절차가 정상적으로 운영되고 있다는 사실을 시민이 확인할 수 있어야 한다. 선거기관이 투명하게 설명하고, 언론이 정확한 정보를 전달하며, 시민이 허위정보를 판별할 수 있어야 한다.
결국 선거 무결성은 보안만의 문제가 아니다. 보안과 투명성이 동시에 필요한 것이다.
선거 무결성을 지키기 위해 필요한 것
먼저, 선거를 하나의 사이클로 봐야 한다. 선거 보호는 투표함을 지키는 것에서 시작하지 않는다. 선거법, 후보자 등록, 선거인 명부, 선거운동 환경, 투표, 개표, 결과 발표와 분쟁 해결까지 모두 연결돼 있다.
둘째, 눈에 보이지 않는 문제도 살펴봐야 한다. 투표함 조작이나 폭력은 쉽게 발견된다. 반면 선거구 조작, 후보자 진입장벽, 행정 역량 부족, 허위정보와 사이버공격은 상대적으로 눈에 잘 띄지 않는다. 선거에 미치는 영향 역시 적지 않다. 따라서 보이지 않는 위협들에 대해서도 세심하게 살펴야 한다.
셋째, 이미 신뢰받는 선거도 보호가 필요하다. 선거 무결성 문제를 제도가 불안정한 개발도상국만의 문제로 보는 것은 적절하지 않다. 스웨덴 사례처럼 기존 제도에 대한 신뢰가 높은 국가도 새로운 기술과 정보환경의 변화에 따라 새로운 위험에 노출될 수 있다.
넷째, 하나의 기관만으로 대응하기는 쉽지 않다. 사이버공격은 사이버기관이, 폭력은 경찰이, 외국의 정보공작은 보안·심리방위기관이, 실제 투표 절차는 선거기관이 전문성을 가지고 있다. 기관 간 정보공유와 공동대응이 효과적일 것이다.
다섯째, 시민도 선거 보호 체계의 일부이다. 현대 선거에서 시민은 단순히 투표하는 사람만은 아니다. 허위정보를 판별하고 공식 정보를 확인하며 근거 없는 주장을 무분별하게 확산시키지 않는 시민의 정보 활용 능력도 선거 회복탄력성에 영향을 미친다.
결론적으로 스웨덴 보고서에도 나와있듯이 정부기관뿐 아니라 언론, 온라인 플랫폼, 연구기관과 시민까지 포함하는 사회 전체적 접근, 즉 거버넌스 구축이 핵심 원칙이 될 수 있을 것이다.
참고자료
- Pippa Norris, 「The new research agenda studying electoral integrity」, Electoral Studies, Vol. 32, 2013, pp. 563–575.
- ACE project, 「Electoral Cycle」
- Economist, 「Democracy Index 2024」
- Sebastian Bay, 「Protecting Electoral Integrity: The Case of Sweden」, Protecting Elections Series, International Institute for Democracy and Electoral Assistance(International IDEA), 2025.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