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를 키우는 일, 덧셈보다 뺄셈

아내와의 대화 정리,

2026. 8. 22. 저녁식사

아내와 아이들 교육 이야기를 나누다가 학원 이야기가 나왔다.

아내는 수학을 하고 있으니 영어도 하면 좋을 것 같고, 국어도 하면 좋을 것 같고, 글쓰기를 생각하면 논술도 보내는게 어떨까하는 생각이 든다고 했다.

하나씩 놓고 보면 틀린 말은 없다.

그런데 나는 오히려 반대의 생각이 들었다.

아이를 키울 때는 무엇을 더해줄 것인가보다 무엇을 남겨둘 것인가가 더 중요할 때가 있다.

“머리는 아이디어를 떠올리기 위한 곳이지, 붙잡아 두기 위한 곳이 아니다.” 데이비드 앨런 ‘쏟아지는 일 완벽하게 해내는 법’에 나오는 말이다. 머리에 빈자리를 남겨두라는 말의 다름아니다.

성장은 어느날 갑자기 온다.

운동을 하는 아이들을 보면 실력이 매일 일정하게 늘지 않는다.

한동안 별다른 변화가 없어 보이다가 어느 순간 공이 빨라지고, 타구가 멀리 나가고, 이전에는 하지 못하던 동작을 자연스럽게 해낸다.

120km/h 던지던 투수가 어느날 140km/h 를 넘게 던지고 단거리 타자가 어느날 갑자기 홈런을 터뜨리기 시작한다.

보이지 않는 사이 몸이 만들어지고 기본기가 쌓이고 있었던 것이다.

공부나 글쓰기도 비슷한 면이 있다고 생각한다.

어린아이에게 어려운 책을 읽히고 글을 계속 쓰게 한다고 해서 사고력이 그만큼 빨리 자라는 것은 아니다.

책을 읽고 학교생활을 하고 친구와 놀고 이런저런 일을 겪고 자기 생각을 해보는 사이 자기도 모르게 성장을 하게 된다.

그러다 어느 순간 이전보다 긴 글을 이해하기 시작하고 자기 생각을 조금 더 정확하게 표현하기도 한다.

성장은 항상 직선으로 오지 않는다. 오히려 J-curve 와 같이 어느순간 폭발적으로 이루어진다.

그래서 부모가 눈앞의 결과만 보고 조급해질 필요는 없다고 생각한다.

많이 하는 것과 잘하는 것은 다르다

물론 학원을 많이 다니는 것이 무조건 나쁘다는 뜻은 아니다. 잘하는 아이에게는 더 어려운 것을 배우는 과정 자체가 재미일 수 있다.

문제는 아이의 상태를 보지 않고 계속 더하는 것이다.

수학을 하니 영어를 더한다.

영어를 하니 국어를 더한다.

국어를 하다 보니 논술도 필요해 보인다.

그러다 보면 어느 순간 아이의 하루에는 빈 시간이 남지 않는다.

그런데 시간은 무한하지 않다.

다섯 가지를 한다는 것은 단순히 다섯 가지 능력을 얻는 일이 아니다. 한 가지에 쓸 수 있었던 시간과 집중력을 다섯 군데로 나누는 일이기도 하다.

오히려 부족한 것이 분명하다면 그 하나에 집중할 시간을 만들어주는 편이 나을 수 있다. 잘하는 것은 조금 내려놓고 부족한 것을 채울 수도 있다.

모든 것을 놓치지 않으려다 보면 정작 중요한 것을 깊게 하지 못한다.

그래서 교육에도 덧셈만큼 뺄셈이 필요하다.

무엇을 더 해줄지 결정하는 것보다 무엇을 하지 않을지를 결정하는 일이 오히려 더 중요한 것이다.

노는 시간도 아이의 시간이다

어른들은 쉽게 말한다.

지금 조금 고생하면 나중에 편하다고.

대학갈 때까지만 열심히 하면 된다고.

틀린 말은 아닐 것이다.

하지만 아이에게도 지금 이 시간은 인생에 단 한 번뿐이다.

열 한 살의 하루도 한 번뿐이고, 여섯 살의 하루도 인생에서 단 한 번뿐이다.

아무 생각 없이 놀고 좋아하는 것을 오래 붙잡아 보고 별 의미 없어 보이는 일에 두세 시간씩 낭비(?)해볼 수 있는 시기는 이 때 뿐일 수 있다.

난 그 시간이 꼭 낭비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아내와 이야기하다 준서 친구 이야기가 나왔다.

그 아이는 학원을 많이 다니지 않다 보니 자기가 좋아하는 것에 오래 시간을 쓸 수 있다고 했다.

색종이를 접으면 몇 시간씩 붙잡고 어려운 것을 완성하고, 좋아하는 영어 프로그램도 원 없이 한다고 했다.

그 이야기가 기억에 남았다.

무엇인가를 잘하게 만드는 방법이 반드시 더 많이 배우게 하는 것만은 아닐 수 있다.

좋아하는 것을 충분히 해볼 시간을 주는 것 역시 교육이다.

어려움까지 없애줄 필요는 없다

이야기는 자연스럽게 다른 쪽으로 이어졌다.

아이에게 여유를 주는 것과 아이가 힘들 일을 모두 없애주는 것은 다르다.

하기 싫어도 해야 하는 일이 있다.

귀찮아도 따라가야 할 때가 있고 마음에 들지 않아도 상황에 맞춰야 할 때가 있다.

그럴 때마다 부모가 문제를 바로 해결해준다면 아이는 편하다.

하지만 스스로 그 상황에 대응하고 해결해 낼 기회도 사라진다.

조금 불편한 상황에서 어떻게 기분을 바꿀지 생각해보는 것.

실패했을 때 다시 도전해 보는 것.

원하지 않는 상황에서도 자기 나름의 방법을 찾아 이겨내는 것.

이런 것을 모두 부모가 먼저 해준다면 아이는 그것으로부터 배움을 얻을 기회를 놓치는 것이다.

최근 회복력 혹은 회복탄력성(resilience)이 중요하다는 말을 많이들 한다.

책이나 강의를 보고 듣는다고 회복력이 생기는 것은 아니다.

작은 어려움을 겪어보고 그 안에서 자기 방법으로 빠져나온 경험이 쌓여야 한다.

부모가 해줄 수 있는 것은 모든 돌을 치워주는 일이 아닐지도 모른다.

넘어져도 크게 다치지 않을 정도의 길을 만들어주고, 그 길은 아이가 직접 걸어보게 하는 것이 중요하다.

부모에게 필요한 것은 여유일지도 모른다

아이를 키우다 보면 주변의 이야기가 계속 들린다.

누구는 영어를 시작했다.

누구는 논술을 다닌다.

누구는 벌써 중학교 과정을 한다.

그 이야기를 듣고 있으면 가만히 있는 것이 오히려 불안해진다.

무엇이라도 하나 더 시켜야 할 것 같다.

나 역시 그 마음을 이해한다.

그래서 더 어려운 것이 뺄셈이다.

더하는 것은 오히려 쉽다.

학원을 알아보고 교재를 사고 수업을 하나 더 신청하면 된다.

하지만 빼는 것은 스스로 자녀에 대한 믿음이 없으면 불가능하다.

지금 하지 않아도 괜찮다고 믿어야 하고,

조금 늦어 보여도 따라갈 수 있다고 믿어야 하고,

아이가 자기 힘으로 자랄 시간을 믿어야 한다.

무엇보다 부모가 조급하지 않아야 한다.

아이에게 필요한 것을 해주는 것도 부모의 역할이다.

하지만 필요하지 않은 것을 하지 않는 것 역시 부모의 역할이다.

채워주는 것만 사랑은 아니다.

기다려주는 것도 사랑이다.

때로는 더하는 것보다,

잘 빼주는 것이 더 어렵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