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정치 사법화 논란이 가속화되고 있다. 타협과 양보를 통해 그들 스스로 문제를 해결해나갔던 정치가 자신들의 문제를 사법부에 맡겨버리는 기묘한 일들이 일어나고 있는 것이다. 여당은 정당 내부 문제가 사법부 판결을 기다리고 있고 야당 역시 대표의 법 위반 의혹으로 판결을 기다리는 중이다.
정치는 스스로의 문제에 대해 상호 간의 이해를 조정하며 갈등을 해결해나가는 것이 그 정의이자 소명이다. 그리고 꽤 오랜 시간 동안 정치는 그러한 역할을 잘해왔다. 여전히 많은 국가들이 정치의 기능에 대해 인정을 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그런데 최근 상황은 좀 다르다. 정치는 자신의 존재 이유이자 소명을 다하지 못하는 기현상이 발생하고 있는 것이다.
최근 한 언론인은 한국정치에 없는 것으로 대화, 타협, 협치를 꼽기도 했다. 그래서 우리 정치는 늘 극단적인 선택을 하게 되고 따라서 갈등과 대립을 반복한다는 것이다. 따라서 이를 해결하기 위해 같은 문제에 대해서도 관점, 성향에 따라 보는 것이 다를 수 있고 그런 차이를 수용해야 한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이런 연유로 원래 정치적으로 해결되어야 하는 현안 및 갈등이 매번 법정으로 가고 있다. 따라서 판사가 갈등을 해결해주는, 다시 말해 사법부가 직접 정치를 해야 하는 낯선 상황에 도달하게 되는 것이다. 이로 인해 국민은 정치에서 희망을 찾지 못하고 등마저 돌리는 결과를 낳고 있다.
정치가 스스로 풀어야 하는 과제를 법에 의존해서 해결하는 정치 사법화의 또 다른 문제는 법과 정치 사이에 존재하는 상호규정성이다. 쉽게 말해, 정치(입법부)가 법을 만들고, 그 법에 의해 정치가 통제된다는 것이다. 따라서 이러한 정치 사법화의 지속은 정치인이 자신들의 정치에 유리하게 법을 만들고 그것을 통해 갈등을 본인들에게 유리하게 해결하는 문제점을 야기할 수 있다는 것이다. 정치 사법화를 넘어 사법 정치화이다. 그리고 이러한 흐름의 결말은 결국 정치의 실종일 것이다. (참고 기사)
물론 작금의 상황이 정당 혹은 정치인 스스로가 정치 사법화를 원하고 한 일은 아닐 것이다. 해결을 위한 노력을 다했지만 소기의 성과를 달성하지 못해 최종적으로 해결하기 위해 당도한 곳이 사법부일 것이다. 하지만 이러한 과정의 지속은 국민의 반(反)정치, 정치 무관심으로 이어지다 결국에는 정치의 실종으로 이어질 수 있음을 명심할 필요가 있다. 대화와 타협, 협치가 다시 우리 정치에 복원될 수 있도록 서로 노력하여야 하는 시점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프리드리히 하이에크 Friedrich Hayek 의 말이다. 그는 정부의 잘못된 계획은 상황을 더 악화시킬 뿐이라고 강조하기도 했다. 그의 말을 빌려 다시 말하자면, 복잡한 문제에는 복잡한 해결책이 필요하다.
사람들의 문제 해결 도식은 어떨까. 많은 사람들이 문제가 발생하면 해결을 위해 무턱대고 덤빈다. 왜일까? 아마도 문제상황이 지속되는 것이 불편하고 싫어서 일 것이다.
어느 날 아침 집 문 앞에 쓰레기 봉투가 하나 놓여 있다고 하자. 우리 것이 아니라면, 당연히 짜증부터 올라올 것이다. 아침부터 쓰레기 불법투기라니. 당장 이 불편한 상황에서 벗어나고 싶어진다. 일단 시원하게 욕부터 박는다. 그래도 분이 안풀린다. 옆집 이웃들에게 하소연 하기도 한다. 더 나아간다면 경찰에 연락해서 동네 CCTV를 볼 수 있게 해달라고 요청하기도 할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문제가 해결될 기미가 없다. 점점 답답해진다. 그런데 갑자기 전화가 온다. 어머니다. 어제 말한 남는 옷가지를 봉투에 담아 우리 집 앞에 두고 왔다고 한다. 마침 봉투가 없어 쓰레기 봉투에 담았다고 한다. 쓰레기 봉투를 열어보니 잘 개어진 옷가지들이 가지런히 담겨져 있었다. 아뿔싸.
물론 가상의 이야기다. 하지만 많은 사람들이 이런 식으로 문제해결을 위해 무턱대고 덤빈다. 문제 상황에서 뭐라도 하고 있으면 마음이 편해지기 때문이다. 그게 문제해결에 도움이 되는지는 안되는지 생각조차 하지 않은 채 말이다.
조직에서도 마찬가지다. 단순한 일이야 단순하게 즉각즉각 처리하면 된다. 몸에 익숙한 반복적 일이라면 더더욱 생각 없이 처리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복잡한 문제는 다르다. 문제가 복잡할수록 천천히 고민하면서 전체 숲이 어떻게 되어있나 살펴보는 노력을 해야 한다. 그게 당장은 시간이 들지 몰라도 결과적으로 전체 문제해결 시간을 줄여줄 수 있기 때문이다.
아까의 예로 다시 돌아가보자.
아침에 문을 열었더니 쓰레기 봉투가 하나 놓여져 있다. 일반적인 상황은 당연히 아니다. 왜 여기 놓여져 있을까. 일단 겉을 살펴본다. 특별히 이름이 써있거나 메모가 붙어있지는 않다. 이제 어쩔 수 없이 내용물을 확인해봐야 한다. 매듭을 풀어 봉투 안을 살펴본다. 잘 개어진 옷가지들이 가지런히 담겨져 있다. 쓰레기 같지는 않다. 왜 옷이 들어있을까. 문득 어제 어머니가 말한 것이 생각났다. 아, 어머니가 두고 가셨는데 봉투가 없으셨나 보구나. 전화를 건다. 어머니가 맞다. 문제 파악에 조금 시간은 들였지만 결과적으로 문제를 정확히 해결을 할 수 있었다.
사실 집 앞 쓰레기 봉투 문제는 매우 쉬운 축에 속한다. 실제 사회문제, 경제문제는 매우 복잡하다. 문제는 꼬여있을 것이고 이해관계자도 헤아릴 수 없이 많을 것이다. 수혜자가 있는 만큼 필연적으로 손해 보는 사람들도 있을 것이다. 무엇이 문제인지조차 파악하기 어려울 수도 있다. 따라서 해결이 난망한 문제 앞에서 여러 고민이 들기 시작할 것이다. 그리고 우선 덤벼볼까 하는 유혹이 조금씩 생겨날 것이다.
하지만 그래서는 안된다. 그것이 오히려 시간을 낭비하는 일일 수 있다. 복잡한 문제는 해결책도 복잡할 수밖에 없다. 단순하게 덤벼서는 안된다. 문제에 앞서 잠시 생각에 잠긴다. 어떻게 엉켜져 있을지 실마리는 무엇일지 고민을 해야 한다. 문제의 범위를 정하고 해결을 위한 대안들을 하나하나 탐색해본다. 어느 정도 그림이 그려지면 빈 종이를 꺼내 차분히 계획을 세운다. 확신이 들면 그 때부터 행동에 돌입해야 한다. 그래도 늦지 않는다.
『한비자』에 나오는 구절 중에 “먼 곳의 물로 가까운 곳의 불을 끄지 못한다”는 말이 있다. 이상적인 목적에 집착하기보다는 우리가 당면한 문제에 대한 해결책이 얼마나 합리적이고 얼마나 실현가능한 것이냐를 따져야 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가까운 곳의 불도 무턱대고 끄기 시작하면 곤란하다. 전체를 조망하고 계획을 세워 불길을 잡아나가야 한다.
문제가 복잡하면 복잡할수록 더 많은 시간을 준비에 들여야 한다. 선후본말(先後本末) 을 세심하게 잘 살펴봐야 한다. 단순하게 접근할수록 해결과는 더 멀어질 수 있다. 2차 방정식에는 2차 해결 공식이, 3차 방정식에는 3차 해결 공식이 각각 필요하다. 어설프게 1차 해결 공식으로 덤볐다가는 큰 코 다칠 수 있다.
많은 사람들이 다수결을 민주주의의 핵심으로 오해한다. 다수결이 민주주의 내 결정의 정당성을 보장한다고 말하기도 한다. 하지만 이것은 큰 문제다.
다수결은 그 자체로 결정의 정당성을 보장하는 것이 아니다. 다수결이 정당성을 얻기 위해서는 전제조건이 있다. 바로 아래와 같은 “과정“이다.
결정에 있어 참가자들은 각자의 이유를 제시한다. 그리고 서로 비판하고 논쟁하면서 경쟁적으로 서로의 이유를 내세운다. 그러는 가운데 서로의 해법들에 대한 안목이 넓어지고 배움이 깊어진다. 그리고 최종적으로는 서로가 세련된 판단을 얻게 된다.
이러한 “과정” 속에서 서로가 양보하고 타협하면서 더 좋은 제 3의 대안이 도출되기도 하고, 비슷한 제안자들끼리 연합하여 세력을 결성하기도 한다.
만약 이러한 “과정“이 없다면 어떨까? 비판적 논의 없이 끝없는 비난 속에서 결정을 못하고 그저 결정을 위해 다수결이라는 수단을 사용하는 한계에 머물게 될 것이다. 그리고 그러한 결정은 또 다른 분쟁과 마찰을 야기할 것이다. 스스로는 결정의 정당성을 얻었다고 자부하겠지만 사실 아무것도 ‘완벽하게’ 결정된 것이 없게 되는 것이다.
요약하면, 합의를 위한 여러 이성적 노력을 다하고도 해법을 찾지 못했을 경우에 최후의 방법으로 참가자 다수의 지지를 받는 방안이 잠정적으로 좋은 방안이라고 받아들이는 것, 이것이 민주주의 다수결 원리일 것이다.
다수결로 결정했기 때문에 정당한 것이 아니라, 지난한 이성적 과정(비판, 논쟁 등)을 거칠 경우에만 다수결은 정당성을 인정받는 것이다.
물론 다수결에 의한 결정이 정답은 아니다. 임시적 결정에 지나지 않을 것이다. 추후에 상황이 변화하여 부적절한 선택으로 판명이 난다면 다시금 이성적 의사결정을 거쳐야만 한다. 따라서 다수결에 의한 결정은 수정 가능성을 늘 염두에 두고 있어야 한다.
무수하고 다양한 인간의 결정에 어떻게 완전무결한 것이 있을 수 있겠는가. 완전한 대안이 있을 수 없다면, 그 중에서 가장 결점이 적은, 그래서 많은 이들이 동의하는 대안으로 만족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그것이 다수결 원리이고 전술한 조건을 충족하는 다수결 원리 만이 결정의 정당성을 담보할 수 있을 것이다.
먼저, 합리성이다. 이에 따르면 정부조직 개편의 논리는 정부조직의 구조에 합리성이 결여되어 있다는 것이다. Salamon (1981)에 따르면, 합리성은 정부 조직의 능률성 및 경제성 그리고 정책효과성과 연결된다.
Burrell 과 Morgan (1979)에 따르면, 합리적 조직은 다음과 같은 특성을 갖는다.
첫째, 조직과 조직구성원은 공동의 목표를 공유하고 이를 구심점으로 하여 통합된 팀으로 작동한다.
둘째, 갈등은 드물고 일시적인 현상이다. 갈등은 제거되어야 할 부정적 요소이기 때문이다.
셋째, 조직 갈등 관리를 위한 권력과 정치의 역할은 미약하다.
요약하면, 합리성 논리 하에서 정부조직개편은 정부가 효과적이고 효율적인 도구가 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따라서 그 수단으로 효과적 관리, 기능적 합성, 예산 효율화, 조정과 협력, 부처 수의 감축 및 업무중복 최소화 등을 언급하는 것은 너무나 자연스러운 일이다. 이에 더하여 권한과 책임의 명확한 설정, 통솔범위, 최신의 관리기술의 활용, 공정하고도 효율적인 인적자원 활용 등이 주요 관심사가 될 것이다.
다음은, 정치성이다. 정부조직개편은 전쟁터에서 승리한 자에게 주어지는 전리품이다. 따라서 Morgan (2006)이 지적하듯이, 정치성은 합리성을 벗어나는 순간 반조직적이며 역기능으로 작용할 수 있어 부정적 평가의 대상이 될 수 있다.
정부조직개편에 정치가 작동하는 상황적 조건은 다음과 같다. (Ferris and King, 1991)
첫째, 희소한 자원이다.
둘째, 희소자원을 둘러싼 경쟁이다.
셋째, 불확실성이다.
정치성의 구체화는 다음과 같이 이루어진다.
첫째, 조직개편을 둘러싼 다양한 행위자가 있고 그들의 목표가 반드시 일치하는 것은 아니다. 따라서 자신의 원하는 방향으로 논의를 끌고 가기 위하여 다양한 정치적 담론을 형성하고 구체적인 정치행위를 할 수밖에 없게 된다.
둘째, 정부조직개편의 높은 가시성은 정치적 활용도를 더욱 높여준다. 새로운 정권 출범 초기에는 이러한 카드가 매력을 더하는데 국민들이 새 정부 개혁에 높은 관심을 갖기 때문이다.
셋째, 정부조직개편은 진보의 환상(illusion of progress) 을 만든다. 조직개편은 긍정적인 효과를 전제한다. 미래를 예측할 수 없기에 사람들은 더더욱 조직개편에 따른 개선, 진보에 환상을 갖게 된다.
요약하면, 일반적인 조직이론은 합리성에 따른 개편을 전제하지만, 실제 현실은 정치성에 따라 작동한다. 정치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기 때문이다. 따라서 정부조직개편 논리에서 정치성을 제외하는 것은 비현실적인 논의가 될 수 있다. 정부조직개편이 역동적이고 복잡한 이유이기도 하다.
아이언맨 70.3을 완주했다. 기록은 7:20:16. 7분이 아니라 7시간이다. 난 왜 그 긴 시간을 물과 길에서 보내야만 했을까.
처음 생각은 달랐다. 작년에 참가한 시카고 철인3종 경기를 한 번 더 하고 싶었다. 하지만 경기 개최일이 내가 귀국한 뒤였다. 포기해야 했다. 그 순간 아이언맨 Ironman 이 눈에 들어왔다. 오호 이걸 해볼까.
하지만 아이언맨은 만만치 않았다. 작년 시카고 철인3종과 비교해보자.
시카고 철인3종 올림픽 코스: 총 31.93마일[수영(0.93마일), 자전거(24.8마일), 달리기(6.2마일)]
아이언맨 70.3: 총 70.3마일[수영(1.2마일), 자전거(56마일), 달리기(13.1마일)]
아이언맨 70.3의 경우, 마일을 익숙한 킬로미터로 변환하면, 수영(1.93km), 자전거(90.12km), 달리기(21.08km) 였다. 이 수치 실화인가.
쉽게 설명하면 이렇다. 미시건 호수의 파도를 맞으며 1.93km 수영하고 나면 몸이 퍼진다. 당연히 하루 정도는 쉬어줘야 한다. 하지만 아이언맨은 그런거 없다. 바로 자전거에 몸을 싣고 90.12km를 타야한다. 자동차로도 1시간이 넘게 걸리는 그 거리를 3시간 넘게 자전거를 타고나면 몸이 다 부서져 내릴 것이다. 이제는 이틀 정도 쉬어줘야 한다. 하지만 아이언맨은 그런거 없다. 바로 운동화 끈을 묶고 21.08km 하프마라톤을 뛰어야 한다. 이게 바로 아이언맨 70.3이다. 한마디로 말하자면, 몹시…. 미친짓이다.
하지만 사람의 욕심은 끝이 없고 같은 실수를 반복한다. 나는 귀신에 홀린듯 지난 3월 27일, 대회를 정확히 3개월 앞둔 시점에 아이언맨 70.3에 등록하였다. 지옥문 오픈이었다.
그리고 등록과 동시에 훈련을 시작했다. 시간만 나면 집근처에서 5km 또는 10km를 뛰었고 주2회 1.5km 수영도 잊지 않았다. 자전거는 집근처 Illinois prairie path 를 따라 20km 씩 연습했다. 그리고 대회 한 달 전부터는 자전거 후 러닝하고, 수영 후 자전거 타는 등 근전환 훈련도 지속적으로 시행했다. 막판에는 무릎 부담을 줄이기 위해 체중을 빼기 시작해서 대회일 기준 5kg 감량에 성공했다. 마지막 봄학기 수업, 졸업준비와 동시에 진행했던 통에 몸과 마음이 몹시 힘들었다. 아내 역시 여기가 태릉 선수촌이냐며 푸념을 하곤 했지만 항상 남편의 도전을 응원해주었다. 우리 와이프 살아있는 부처임.
그리고 드디어 대회일인 6월 26일이 돌아왔다. 바로 오늘이었다.
새벽 5시 아내는 나를 대회장에 데려다 주었다. 나는 수영 슈트와 자전거 클릿 슈즈, 헬맷 등을 한 짐 갖고 Transition area로 향했다. 이른 시간이었지만 벌써부터 많은 인파로 북적이고 있었다. 나는 자전거 상태를 확인하고 가져온 물건들을 순서대로 정리했다. 동이 터오고 있었고 수영 준비를 위해 슈트를 입었다.
근데 파도가 심상치 않았다. (미시건은 호수지만 바다처럼 파도가 친다) 작년에는 날씨 때문에 수영이 취소되었지만 올해는 예정대로 진행되었다. 워밍업 후 줄을 서서 차례를 기다렸다. 컷오프(cut-off) 시간은 1시간 10분(1.93km)이었다. 그 안에는 못들어오면 탈락이었다. 코스는 600미터를 전진한 후 오른쪽으로 돌아 700미터를 나아간 후 다시 오른쪽으로 돌아 600미터 가량을 전진하여 육지로 돌아오는 코스였다.
내 차례가 되었고 서서히 물 속으로 들어갔다. 물은 많이 차지 않았다. 자유형을 위해 스트로크를 몇 번 했다. 그런데 이상했다. 몸이 앞으로 거의 나아가지 않았다. 나아가기는 커녕 파도에 몸이 실려 오르락 내리락만 반복했다. 옆을 보니 다른 사람들도 마찬가지였다. 파도 때문이었다. 앞으로 나아가기 위해서는 파도를 뚫어야만 했다. 대략 난감이었다.
방법이 없었다. 힘을 내서 파도와 맞서 나아가기 시작했다. 힘이 두 배로 들었다. 자유형과 평형을 교차로 하며 법석을 부려도 전진이 더디기만 했다. 내 앞과 뒤, 옆에 사람들이 모두 망연자실한 표정으로 물 위에 둥둥 떠있었다. 타이타닉 침몰 후의 모습 같았다.
그렇게 한참을 꾸역꾸역 전진해서 600미터 부표를 터치할 수 있었다. 시간이 많이 소모되었다. 이제 오른쪽으로 돌아 700미터를 가로로 전진해야 했다. 파도를 옆으로 놓고 하는 수영이라 크게 어렵지 않았다. 그런데 한참을 똑바로 수영해도 몸이 파도에 떠밀려 부표 안쪽으로 들어가기 일쑤였다. 똑바로 가려면 왼쪽으로 20-30도 기울여 수영을 해야했다. 톱니모양 전진이었다.
그렇게 또 어찌어찌 700미터 부표를 터치했다. 다시 오른쪽으로 돌았다. 이제는 육지를 향해 600미터를 나아가야 했다. 이건 쉬웠다. 내 뒤에서 파도가 나를 육지를 향해 밀어주었다. 쉬지 않고 수영했고 결국 육지에 발을 디딜 수 있었다. 시간이 관건이었다. 시계를 보니 다행히 컷오프 2분 전이었다. 01:08:04. 휴, 살았다.
파도와 씨름을 하고 나오니 모래사장을 걷는데 다리가 심하게 후들거렸다. 이대로 그냥 집에 가고 싶었다. 가서 해물라면 먹고 싶었다. 하지만 그럴 수는 없었다. 자전거를 타야했다. Transition area로 가서 슈트를 벗고 티셔츠를 입은 후 클릿 슈즈를 신고 자전거를 끌고 나왔다. 시원한 공기가 코끝을 간지럽혔지만 전혀 신이 나지 않았다. 앞으로 90.12km 를 타야했다. 아…
미시건 benton harbor 근처 도로는 만만치 않았다. 울퉁불퉁한 곳도 많았고 자갈도 많았다. 작년 시카고 lakeshore 드라이브는 여기에 비하면 실크로드였다. 자전거 바퀴 펑크가 걱정되는 수준이었다. 아니나 다를까 코스 초입부터 두 명이 바퀴가 터져 고치고 있었다. 도로 위에 시선을 집중해야만 했다.
자전거 코스는 길고 지루했다. 초반에는 차가 많은 곳을 달리더니 조금 지나자 시골길을 달리기 시작했다. 체감상 70퍼센트 이상이 시골길이었던 것 같다. 자전거간 앞뒤 거리가 꽤 멀었기에 나는 거의 모든 시간 자전거와 둘이서만 있게 되었다. 그리고 3시간 넘는 시간동안 자전거와 많은 이야기를 나눴다. 발은 계속 페달을 구르면서도, “저 작물은 도대체 뭘까, 너는 아니?” “여기에 와이너리가 있네, 포도가 잘 자라나보다” “나 허리 아픈데 넌 어떠니, 아프지 마렴” “너 바퀴 펑크나면 안돼, 제발 그러지마” 뭐 이런 식이었다. 그러다 자전거 타기 너무 힘들면 같이 욕도 했다. 여기에 쓸 수 없는 욕을 하며 아픔을 극복했다.
암튼 총 3시간 44분을 달려 나와 자전거는 코스를 무사히 마칠 수 있었다. 고통의 시간이었다. 허벅지는 터지려고 했고 허리는 끊어질 것 같았다. 나는 또 다시 Transition area로 돌아왔다. 자전거를 걸어놓고 티셔츠를 갈아입고 운동화를 신었다. 이제 뛰어야 했다. 순간 운동화를 미시건 호수에 던져버리고 싶었지만 그럴 수 없었다. 지금까지 한 게 너무 아까웠다. 돌아가기엔 자전거를 너무 많이 탔다.
신발끈을 새로 묶고 뛰기 시작했다. 바로 허벅지가 올라왔다. 마사지가 필요했지만 그냥 무시하고 뛰었다. 마사지 하는 순간 쥐가 나서 허벅지를 마비시킬 것 같았다. 이럴땐 무시가 답이었다. 허벅지도 타이밍이 안좋은 걸 알았는지 몇 번 승을 내다가 잠잠해졌다. 그렇게 마지막 하프마라톤이 시작되었다.
코스가 약간 특이했는데 후원사인 월풀 Whirlpool 본사를 두 바퀴 도는 코스였다. 3km 정도 뛰니 월풀 본사가 나왔다. 헤드쿼터, 국제관, 커뮤니티센터, 어린이집을 골고루 돌아보도록 코스가 구성되어 있었다. 그곳을 두 바퀴나 돌면서 삼성전자 평택공장이 아닌 것에 감사한 마음이 들었다. 그렇게 후원사 투어를 겸해 총 21.08km 를 달렸다. 기록은 2시간 11분이었다.
러닝이 끝나는 곳에 Finish 라인이 있었다. 사람들의 환호를 받으며 레드카펫 위를 뛰었다. 파도를 뚫고 수영하던 모습, 도로에서 자전거를 타던 모습, 땡볕에서 달리던 모습이 주마등처럼 스쳐갔다. 순간 울컥했다. 아침 7시 10분에 물에 입수해서 오후 2시 30분이 되어서야 피니쉬 라인을 통과할 수 있었다. 진행자가 내 이름을 불러줬고 나는 결승선을 지나 아내와 아이들과 진한 포옹을 할 수 있었다.
사람들은 왜 투표를 하지 않을까. 이유가 여러가지 일 것이다. 정치가 싫어서, 아니면 그냥 관심이 없어서, 그것도 아니면 그냥 투표장에 가는 것이 귀찮아서 등등 다양할 것이다. 사람들은 정말 이런 저런 이유로 투표를 하지 않는다.
프랭클린 루즈벨트 Franklin D. Roosevelt 는 이렇게 말했다. “자기 자신 이외에 그 누구도 미국인들의 투표권을 빼앗은 적이 없다.” “Nobody will ever deprive the American people of the right to vote except the American people themselves and the only way they could do that is by not voting.”
맞다. 투표를 하는 것도 하지 않는 것도 결국 자신의 선택이다. 그렇다면 그러한 선택은 어떤 과정과 절차 및 이유로 결정되는 것일까.
이와 관련해서는 이론적으로 두 가지 설명이 가능하다. 첫째는 사회경제적 지위에 따라 투표 참여 가능성이 결정된다는 이론이고, 둘째는 인간이 합리적으로 투표 참여를 결정한다는 이론이다.
첫번째 이론은 이렇다. 유권자의 소득, 교육수준, 계층 등이 높을수록 투표에 참여할 가능성이 높아진다는 것이다. 다시 말해, 사회경제적 지위가 높을수록 선거정보를 획득할 수 있는 기회와 관심, 시간 등이 늘어남으로써 쉽게 투표에 참여할 수 있다는 것이다(Wolfinger and Rosenstone, 1980).
예를 들어, 소득이 높을수록 소위 “소득효과 income effect”가 발생한다. 더 많은 재화를 소비할 수 있고 더 많은 시간을 휴식할 수도 있다. 따라서 소득효과가 크면 투표에 참여하는 것도 쉬워지는 것이 당연하다. 하지만 동시에 “대체효과 substitution effect”가 발생할 수도 있다. 내가 하는 일들의 가치가 높고 내 일 대신에 다른 일(투표와 같은)을 하는 기회비용이 크기 떄문이다. 따라서 대체효과가 크면 투표에 참여하기 어려워진다. 마이클 조던 Michael Jordan 이 본인 집의 잔디를 깎지 않는 이유와 비슷하다.
따라서 첫번째 이론은 소득효과가 대체효과보다 더 클 것이라는 가정 하에 성립되는 이론이다. 가난한 사람들은 왜 부자에 비해 투표를 하지 않을까, 하는 것이 첫번째 이론에 따른 대표적인 연구질문이 될 것이다.
소득 외에 교육, 계층 등도 같은 논리로 진행된다. 물론 이 이론은 논리보다 여러 실험을 통해 그 결과가 입증되어 여전히 설명력이 높은 이론이다.
하지만 보다 일반화된 투표참여 이론은 바로 두번째인 합리적 선택 이론 rational choice theory 이다. 이는 투표를 인간의 합리적 선택행위로 본다. 앤서니 다운즈를 비롯한 여러 학자들은 투표를 그 효용과 비용을 고려한 고도의 계산적 행위로 바라본다(Downs, 1957; Riker & Ordeshook, 1968). 투표에 앞서 인간은 그들 투표의 편익 benefit과 비용 cost을 세심히 계산해 본 다음, 투표에 대한 편익이 비용보다 클 때 투표에 참여하게 된다는 것이다.
투표참여 이론을 수학적으로 풀면 다음과 같다.
R = pB – C + D
R : 투표로 얻는 최종 보상 reward
B : 지지후보가 승리함으로써 얻게 되는 혜택 benefit
p : 혜택 B를 얻을 확률 probability
C : 투표를 위해 지불하는 비용 cost
D : 시민적 의무 duty
복잡해보이는 것 같지만 단순하다. 투표로 얻는 최종 보상 reward이 0보다 크면 투표를 하고 0보다 작으면 투표를 안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최종 보상이 0보다 크기 위해서는 확률 probability을 고려한 혜택 benefit과 시민적 의무 duty를 합한 값이 투표를 위해 지불하는 비용 cost보다 커야 한다는 것이다. 더 간단히 말하면, 투표로 인한 혜택이 드는 비용보다 더 커야 투표를 하러 간다는 것이다.
어려운 것 같지만 사실 이 공식 하나만 있으면 여러 가지 현상이 쉽게 설명된다.
먼저, 내 주위에 시민적 의무감이 제일 강한 한 사람을 떠올려보자. 길거리에 떨어진 쓰레기를 자발적으로 줍거나 어려운 사람을 위해 자원봉사를 게을리하지 않는 사람 말이다. 그는 D가 무척 강한 사람일 것이다. 그는 투표를 위해 지불하는 비용 C가 제 아무리 크더라도 투표장으로 향할 것이다. 비용을 제한 보상 R이 여전히 0보다 클 것이기 때문이다.
다음으로, 도무지 정치에 무관심한 사람 한 사람을 떠올려보자. 지금 대한민국 대통령이 누군지 현재 무슨 정당이 있는지 전혀 모르는 사람 말이다. 그에게 있어 지지후보가 승리함으로써 얻게 되는 혜택 B는 0에 수렴할 것이다. 따라서 그에게 투표는 얻는 것 없이 비용만 드는 귀찮은 것으로 판단될 것이고 당연히 투표를 하지 않을 것이다.
또, 호주 국민을 생각해보자. 호주의 경우 법으로 투표를 강제하는 의무투표제 compulsory voting가 시행되고 있다. 투표를 하지 않을 경우, 20 호주달러를 벌금으로 내야 한다. 따라서 압도적으로 높은 비용 C을 마주하게 되는 호주 국민들은 거의 대부분이 투표장으로 향하게 된다. 호주의 투표율은 항상 90%를 상회한다.
끝으로, 평균적인 시민적 의무감과 정치에 대한 관심을 가진 일반적인 사람을 한 명 상정해보자. 그는 언제나 투표장에 가서 투표권을 행사하는 사람이었다. 그런데 이번 선거는 본인이 지지하는 후보가 도무지 이길 가능성 p이 없어보였다. 이 경우 p가 만약 거의 0에 수렴한다면 그는 혜택 B를 받을 가능성이 없을 것이고 따라서 그의 시민적 의무감 D가 비용 C보다 크지 않을 경우 그는 보상 R이 0보다 작게 되어 투표를 포기할 것이다.
이렇게 하나하나 따져보니 다운즈를 위시한 정치학자들이 당연한 말을 너무 어렵게 하는게 아니고, 어려운 현상을 정말 쉬운 공식으로 잘 정리해 놓은 것 같다.
내 기억 속 대통령 선거일은 항상 겨울이었다. 후보들은 언제나 두꺼운 방한점퍼 차림이었다. 그들은 거리에서 하얀 입김 홀홀 내뱉으며 유세를 하곤 했다. 그 주위에는 언 손 호호 녹여가며 후보의 기호를 연호하는 선거운동원들이 있었다. 5년마다 12월이면 반복되던 풍경이었다.
그런데 언제부터인지 그런 모습을 찾아보기 힘들어졌다. 문득 궁금해졌다. 추운 날 하던 대통령 선거운동은 어디로 간걸까? 지구 온난화 때문에 우리의 겨울이 더 이상 춥지 않기 때문인걸까? 물론 아니다. 그 이유는 대통령 선거일이 변경되어 이제는 더 이상 12월에 선거를 치르지 않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왜 그렇게 되었을까?
궁금증을 해결하기 위해서는 우선 1987년 헌법개정으로 돌아가야 한다.
1987년 당시 대한민국은 민주화 열망으로 가득차 있었다. 군부독재의 4.13 호헌선언에 맞서 국민들은 6월 항쟁을 통해 민주화 열망을 표출하였다. 국민과 야당은 직선제 개헌을 거세게 요구하였고, 결국 민정당 노태우 대표가 6.29 선언을 통해 직선제 개헌에 합의하게 되었다. 당시 개정 헌법은 개헌 이후 최초 대통령 선거에 관하여 다음과 같이 부칙에서 규정하고 있었다.
헌법 부칙
제1조 이 헌법은 1988년 2월 25일부터 시행한다.
제2조 ①이 헌법에 의한 최초의 대통령선거는 이 헌법시행일 40일 전까지 실시한다.
②이 헌법에 의한 최초의 대통령의 임기는 이 헌법시행일로부터 개시한다.
이에 따라 제13대 대통령선거는 1987년 12월 16일 실시하게 되었다. 이 선거에서 민정당의 노태우 후보는 36.64% 득표율로 김영삼, 김대중 후보를 누르고 대통령에 당선되었다. 그리고 1988년 2월 25일 대통령에 취임하였다.
그리고 5년 후 제14대 대통령선거는 헌법 본문에 따라 진행되었다.
헌법
제68조 ①대통령의 임기가 만료되는 때에는 임기만료 70일 내지 40일전에 후임자를 선거한다.
이에 따라 제14대 대통령선거는 임기만료 68일 전인 1992년 12월 18일에 실시하게 되었다. 이 선거에서 민주자유당의 김영삼 후보는 41.96% 득표율로 김대중 후보를 누르고 대통령에 당선되었다. 그리고 1993년 2월 25일 대통령에 취임하였다.
사실 이때까지만 해도 아직 선거법이 제정되기 전이어서 헌법 외에는 선거일 관련 규정이 없었다. 하지만 1994년 ‘공직선거및선거부정방지법’이 제정되며 선거일을 특정일로 미리 정한 ‘선거일 법정주의’가 도입되었다. 그리고 제15대 대통령 선거는 아래의 규정에 따라 진행되었다.
공직선거및선거부정방지법
제34조 (선거일) ①임기만료에 의한 선거의 선거일은 다음 각호와 같다.
1. 대통령선거는 그 임기만료일전 70일이후 첫번째 목요일
②제1항의 규정에 의한 선거일이 국민생활과 밀접한 관련이 있는 민속절 또는 공휴일인 때와 선거일전일이나 그 다음날이 공휴일인 때에는 그 다음 주의 목요일로 한다.
이제부터는 계산이 필요하다. 김영삼 대통령 임기만료일은 1998년 2월 24일이었다. 따라서 그 임기만료일전 70일은 1997년 12월 16일이고, 그 후 첫번째 목요일은 12월 18일이 된다. 이에 따라 제15대 대통령선거는 1997년 12월 18일에 실시하게 되었다. 이 선거에서 새정치국민회의 김대중 후보는 40.27% 득표율로 이회창, 이인제 후보를 누르고 대통령에 당선되었다. 그리고 1998년 2월 25일 대통령에 취임하였다.
해당 선거법은 2004년 3월 까지 유지되다가 개정되었다. 개정된 공직선거법은 현재까지 유지되고 있는데 규정은 다음과 같다. 선거일이 목요일에서 수요일로 변한 것이 전부다.
공직선거법
제34조(선거일) ①임기만료에 의한 선거의 선거일은 다음 각호와 같다.
1. 대통령선거는 그 임기만료일전 70일 이후 첫번째 수요일
②제1항의 규정에 의한 선거일이 국민생활과 밀접한 관련이 있는 민속절 또는 공휴일인 때와 선거일전일이나 그 다음날이 공휴일인 때에는 그 다음주의 수요일로 한다.
따라서 민주화 이후 실시된 모든 대통령선거는 모두 12월에 치러졌다. 그런데 2017년 3월 10일, 헌법재판소가 박근혜 대통령에 대한 탄핵을 인용하면서 선거일이 달라졌다. 헌법은 대통령 궐위시 60일 이내에 후임자를 선거한다고 규정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헌법
제68조 ②대통령이 궐위된 때 또는 대통령 당선자가 사망하거나 판결 기타의 사유로 그 자격을 상실한 때에는 60일 이내에 후임자를 선거한다.
여기서부터 또 계산이 필요하다. 2017년 3월 10일 탄핵일을 기준으로 60일째 되는 날은 5월 9일이 된다. 따라서 그 전에 실시해야 하는데, 공직선거법 제35조 1항에 따르면 “선거일은 늦어도 선거일 전 50일까지 대통령 또는 대통령권한대행자가 공고하여야 한다”고 명시되어 있어 4월 29일 전에는 선거 실시가 불가능한 상황이었다.
따라서 4월 29일부터 5월 9일 중 하루를 정해 대선을 실시해야 한다는 게 중앙선거관리위원회의 입장이었다. 이에 갑작스레 치르는 조기 대선인 만큼 선거 준비기간을 충분히 주어야 한다는 의견을 참고하여 탄핵선고 60일째 되는 날인 5월 9일에 제19대 대통령선거가 실시되었다. 따뜻한 5월에 실시된 선거라 ‘장미대선’이라는 별칭으로 불리기도 했다. 이 선거에서 더불어민주당 문재인 후보는 41.08% 득표율로 홍준표, 안철수 후보를 누르고 대통령에 당선되었다. 그리고 대통령의 임기는 2017년 5월 10일 공직선거법 제14조 1항 단서에 따라 중앙선거관리위원회 위원들이 전체회의를 열어 대통령 당선을 확인함으로써 곧바로 시작했다.
그렇다면, 이번 제20대 대통령선거는 왜 3월에 실시된걸까? 더이상 ‘장미대선’은 없는걸까?
여기서는 일반적인 대통령 선거이므로 현행 공직선거법에 따른다. 문재인 대통령 임기만료일은 2022년 5월 9일이었다. 따라서 그 임기만료일전 70일은 2월 28일이고, 그 후 첫번째 수요일은 3월 2일이 된다. 하지만 공직선거법 제34조 2항은 공휴일과 그 전후 일에는 선거가 불가한 것으로 규정하고 있다. 따라서 삼일절 다음날인 3월 2일은 선거가 치러질 수 없어, 그 다음주 수요일인 3월 9일이 선거일로 결정되었다.
여기까지가 왜 제20대 대통령 선거일이 3월 9일에 실시되었는지에 대한 답이 될 것 같다. 매번 12월에 했던 대통령선거를 5년 전에는 왜 5월에 했는지도, 그리고 지금은 또 왜 3월에 하는지도 이해가 되었을 것이다.
마지막으로 한 가지 더하자면, 2004년까지 목요일에 실시하던 선거를 왜 수요일로 옮겼을까?
그것은 2003년 ‘주5일 근무제’ 도입 때문이었다. 주5일제 시행으로 금요일 하루만 휴가내면 목, 금, 토, 일 4일 연휴로 쉴 수 있게 되었고, 그렇게 되면 투표율이 저조해질 확률이 높기 때문에 국회가 공직선거법을 개정하여 수요일로 선거일을 바꾼 것이다. 모든 일에는 다 이유가 있는 법이다.
위정자가 나무를 옮기는 데에서 본보기를 보여 백성을 믿게 한다. 백성을 속이지 않고 약속을 반드시 지킨다는 뜻이다. 쉬워보이지만 결코 쉽지 않은 자세다.
국민들이 후보자를 투표로 뽑는 행위를 선거라고 말한다. 후보자는 여러 가지 약속을 하면서 자신을 뽑아달라고 호소한다. 그 약속이 바로 “공약”이다. 선거에 승리하여 당선인이 되면 그 즉시 국민들은 계산서를 내놓는다. 그 계산서에는 당선인이 선거과정에서 약속했던 여러 공약들이 적혀있을 것이다.
사실 공약 이행은 쉽지 않다. 국가에서 시행하는 정책이라면 응당 법적 근거도 있어야 하고 조직, 예산도 있어야 하며 이해관계인 설득도 있어야 한다. 이 중 하나만 없어도 이루어지기 힘들어 지는 것이 보통이다. 그리고 이를 모두 갖추려면 여야, 정부, 시민단체, 국민 사이에 합의가 이루어져야 한다. 따라서 여러 이해관계인의 복잡한 다이내믹스를 하나의 결론을 향해 이끌어 내야 하는 어려움에 처하게 된다.
며칠 전 제20대 대통령선거으로 당선된 윤석열 후보의 공약을 살펴보자. 아래는 이행여부가 분명하게 드러나는 다섯가지를 뽑아본 것이다.
5년간 주택 250만호 이상 공급
여성가족부 폐지
촉법소년 연령 만 12세로 하향조정
사드 추가배치
초미세먼지를 국내환경기준 이하로 개선
우선, 두번째와 세번째 공약은 정부조직법과 소년법 개정이 각각 필요하다. 따라서 국회에서의 합의가 전제되어야 한다. 특히 촉법소년 연령 하향의 경우, 지난 20대 국회에서도 소년법 개정 또는 폐지를 논의했었지만 찬반 의견이 팽팽해 결국 합의를 이루지 못했던 사안이었다. 따라서 국회 논의부터 난관에 부딪힐 확률이 높아보인다.
다음으로, 첫번째 공약은 시민단체 및 국민 등 이해관계인에 대한 설득이 필요하다. 주택을 짓기 위해서는 토지가 필요하고 따라서 국가 소유 토지가 아닌 이상 원주민과의 협상이 필요하다. 이건 재건축, 재개발, 신도시개발 모두 마찬가지다. 역대정부가 150만호에서 200만호 정도 공급에 머물렀던 것은 의지가 부족했다기 보다는 실제로 시행을 위해서는 복잡한 과정을 겪어야 했기 때문인데 이러한 과정은 점점 더 어려워지는 추세다.
끝으로, 네번째와 다섯번째 공약은 국제사회와 연관된 문제이다. 사드 추가배치의 경우 지역선정 및 주민설득 등 국내문제는 차치하고서라도 중국과의 관계 문제에서 많은 논의가 필요할 것이다. 초미세먼지의 경우에도 중국발 영향을 무시할 수 없는 상황이어서 우리 스스로 자정노력 외에 국제적인 해결 노력이 더해져야 가능한 상황이다.
그렇다면 과거 우리 대통령들의 공약이행률은 어땠을까.
작년 5월, 공약체크 사이트인 <문재인미터 moonmeter.kr>는 문재인 대통령의 887개 공약에 대한 4년차 평가를 실시하였다. 참여연대, 환경운동연합 등 총 18개의 시민사회단체 및 기관이 평가에 참여했다. 그 결과 완료된 공약은 17.47%에 그친 것으로 나타났다. 문재인 대통령 임기의 80%가 지났음에도 완료된 대선 공약이 20%를 밑돌았다. 지체와 파기된 대선 공약은 20%를 넘는다. 집권여당이 180석을 확보했음에도 대선 공약 이행이 쉽지 않음을 보여주는 대표적인 사례라고 할 수 있다.
전 정권들도 어땠을까. 크게 다르지 않았다. <아래 그림 참고> 경실련 등의 자료에 따르면, 공약 이행률 50%를 넘긴 대통령은 아직까지 없는 실정이다. 가장 높았던 노무현 대통령의 경우에도 4년차 공약 이행률이 43.4%에 머물고 있었다. 당정청이 모두 노력했음에도 전부 다 지키기가 쉽지 않음을 보여준다고 할 수 있다.
그렇다면 정치 선진국 미국은 어떨까.
버락 오바마 대통령은 2009년부터 2017년까지 미국 대통령으로 재직하였다. 그는 이 2번의 임기동안 533개의 공약을 발표하였다. 그리고 Politifact 라는 단체는 오바마의 재임기간(8년) 동안의 공약이행여부를 조사하였는데, 이를 오바미터(Obameter) 라고 했다. 이에 따르면, 오바마 대통령은 48%의 공약을 이행하였고, 28%의 공약은 타협하였으면, 24%의 공약은 파기했다고 한다. (보고서 링크)
오바마 대통령은 민주당이 상하원 모두 다수였던 2009년에는 오마바케어와 경기부양 관련 법안을 통과시키며 많은 공약을 이행할 수 있었다. 하지만 2010년 선거에서 민주당이 의회 다수당이 되는 것에 실패하면서 기후변화와 이민에 관한 법안이 통과되지 못했고, 이후 임기말까지 민주당이 의회권한을 확보하지 못하면서 어려운 싸움이 되었다고 한다.
노르베르토 보비오라는 이탈리아 정치사상가는 “민주주의란 투표할 수 있는 체제가 아니라 어디에 투표할지에 대한 딜레마를 해결해 주는 체제”라고 말한 바 있다. 그러기 위해서는 후보자는 실천가능한 공약을 유권자에게 제시하고 유권자는 정책을 보고 투표하는 민주주의 선순환이 필요하게 된다.
앞서 말한 것처럼 공약 이행은 쉽지 않다. 하지만 불가능한 것 또한 아니다. 정부가 강한 의지를 가지고 협치와 대화를 통해 차분하게 진행해 나간다면 모든 공약 이행이 가능해질 수도 있을 것이다. 다만, 그러기 위해서는 앞서 말한 “이목지신”보다 더 큰 노력을 해야할지도 모른다. 그것들은 아마도 나무를 옮기는 정도가 아닌 산을 옮기고 산맥을 이어야 하는 중차대한 문제들일 것이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공약을 지켜낸다면 국민들은 그 실행력에 감탄하며 남다른 신뢰를 쌓게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