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0년대 한국은 민주화를 염원하는 기운이 세상을 가득 채우던 시기였다. 시민들은 경찰의 최루탄 가스에 눈물을 흘렸지만 실제 더 슬펐던 것은 군부독재의 서슬 퍼런 자유 억압이었다. 시민들이 분노하며 광장으로 뛰쳐나온 덕에 1987년 6·29 선언을 이끌어내었고 권위주의 체제가 막을 내릴 수 있었다. 민주주의로의 이행이 본격적으로 시작된 역사적 전환점을 시민들이 만들어낸 것이다.
이후 직선제 개헌을 통해 절차적 민주주의가 제도화되었고 문민정부의 출범과 평화적 정권교체 등 민주주의 공고화를 위한 노력들도 차례로 성과를 거두었다. 그 결과 아담 쉐보르스키(Adam Przeworski)가 말한 것처럼 한국 민주주의는 “우리 동네의 유일한 게임(the only game in town)”으로 받아들여지는 단계에까지 이르게 되었다.
하지만 행복도 잠시 한국 민주주의는 지금 위기에 놓여있다. 정치는 거대 양당의 적대적 경쟁 속에 표류(漂流)하고 있고 유권자인 시민들은 그 사이에서 방황(彷徨)하고 있다. 거대 양당이 서로를 악마화하며 지지층 결집 몰두하는 동안, 관용(tolerance), 타협(compromise), 절제(forbearance)와 같은 민주주의의 핵심 가치들은 점차 힘을 잃은 낡은 경구(警句)가 되어가고 있다.
국회는 공공 문제 해결을 위한 숙의의 장이기보다는 상대를 공격하고 지지층을 결집시키는 정치적 전쟁터로 변하고 있다. 그 사이 시민들은 정치적 효능감을 잃어가고 있으며 국회라는 제도가 대의민주주의를 제대로 수행할 수 있는 능력과 의지가 있는지에 대한 의문이 제기되고 있다.
민주주의 주인인 시민의 목소리가 반영되지 않는 정치를 대의민주주의라고 볼 수 있을 것인가?
공직선거법을 둘러싼 정치개혁은 그것을 결정하는 주체인 국회의원이 동시에 그 규제의 대상자가 된다는 점에서 구조적 한계를 가지고 있다. 선거제도 개편 논의가 시작되면 각 의원은 개정안이 자신의 재선 가능성과 소속 정당에 어떠한 영향을 미칠지를 먼저 계산할 수밖에 없게 된다.
2020년 준연동형 비례대표제가 위성정당 창당으로 무력화된 사건은 이러한 현실을 극명하게 보여준다. 다당제와 비례성을 강화하겠다는 취지로 도입된 제도가 거대 정당들의 전략적 대응 속에서 사실상 왜곡된 결과를 가져오게 되었다. 이는 국회가 자기 이익에 반하는 정치개혁을 스스로 수행하기 어렵다는 사실을 상징적으로 드러낸 사건이었다.
따라서 공직선거법 및 정치자금법 개정과 같이 국회의원 스스로가 직접적인 이해당사자가 되는 입법 사안에 대해서는 국회가 이를 전적으로 담당하는 현행 방식에 대한 재검토가 필요하다. 우리 헌법에서 국회의원은 국가이익을 우선하여 양심에 따라 직무를 행한다고 규정하고 있지만(헌법 제46조제2항), 현실 속에서 그러기 쉽지 않기 때문이다.
이러한 한계를 극복할 대안으로 최근 주목받고 있는 것이 ‘시민의회(citizens’ assembly)’다. 시민의회는 무작위 추첨으로 선발된 일반 시민들이 충분한 정보 제공과 숙의 과정을 거쳐 공적 의사결정을 내리는 제도이다. 평범한 시민들이 전문가의 설명을 듣고 토론과 학습을 반복하며 공익적 관점에서 결론에 도달한다는 점에서 기존 대의민주주의의 한계를 보완하는 새로운 민주주의 모델로 평가받고 있다. 공론화 모델이기도 하다.
정치학자 로버트 달(Robert Dahl)은 전체 시민집단으로부터 무작위로 선발된 약 1,000명의 시민들이 특정 쟁점에 대해 일정 기간 숙의한 뒤 그 판단을 공표하는 ‘미니포퓰러스(minipopulus)’를 제안했다. 그는 이를 더 큰 전체 인구를 인구통계학적으로 대표하는 시민들의 집합체로서 특정 주제에 대해 배우고 숙의하기 위해 모여 여론과 의사결정에 정보를 제공하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고 설명하였다.
“어떤 선진 민주주의 국가가 전체 데모스, 즉 전체 시민집단으로부터 무작위로 선발된 아마도 천 명가량의 시민들로 구성된 ‘미니포퓰러스’를 만든다고 가정해 보자. 그 임무는 아마도 1년 동안 하나의 쟁점에 대해 숙의하고, 그런 다음 자신들의 선택을 발표하는 것이 될 것이다… 미니포퓰러스는 국가, 주, 또는 지방 등 정부의 어느 수준에서든 존재할 수 있다. 그것은 학자들과 전문가들로 이루어진 자문위원회와 행정 직원들의 지원을 받을 수 있다. 그것은 청문회를 열고, 연구를 의뢰하며, 토론과 논의에 참여할 수 있다. 나는 미니포퓰러스라는 제도를 입법기관의 대체물이 아니라 보완물로 본다.”
– Robert Dahl, Democracy and its critics, 1989, p.340
현대 시민의회의 대표적 사례는 2004년 캐나다 브리티시컬럼비아주의 선거제 개혁 실험이다. 당시 브리티시컬럼비아주는 법률에 근거해 161명의 시민을 무작위로 선발하여 시민의회를 구성했고 이들은 약 1년 동안 다양한 선거제도를 학습하고 공청회를 거친 뒤 새로운 선거제 개혁안을 직접 작성했다. 최종 권고안은 주민투표에 부쳐졌다. 이는 세계 최초의 본격적 시민의회 사례로 평가받는다.
아일랜드는 시민의회를 통해 동성혼과 낙태처럼 첨예하게 갈린 사회적 갈등을 해결했다. 시민의회의 권고안은 의회 검토와 정부 논의를 거쳐 국민투표로 이어졌고, 결과적으로 사회적 합의 형성에 중요한 역할을 했다. 시민의회는 단순히 의견을 묻는 여론조사가 아니라, 충분한 숙의와 학습을 거친 공적 판단의 장이 될 수 있음을 보여준 사례였다.
아이슬란드 사례 역시 중요하다. 2008년 세계금융위기 이후 아이슬란드는 정치·경제 시스템에 대한 국민적 불신이 극에 달하자 시민의회를 통해 새로운 헌법 가치와 국가 운영 원칙을 논의하려 했다. 이는 시민의회가 단순한 정책 자문기구를 넘어 사회적 위기 이후 공동체의 방향을 재설정하는 민주적 장치로도 활용될 수 있음을 보여준다.
프랑스 역시 2019~2020년 기후 시민의회(Citizens Convention for Climate)를 시작으로 존엄사, 백신, 공교육 등 주요 현안을 시민의회 방식으로 논의하고 있다. 특히 파리시는 2021년부터 100명의 시민으로 구성된 세계 최초의 상설 대도시 시민의회를 운영 중이다.
이외에도 시민의회는 캐나다 온타리오, 벨기에, 네덜란드, 호주 등 여러 나라에서 도입되거나 실험되었다.
시민의회가 중요한 이유는 단순히 새로운 회의 형식이기 때문이 아니다. 그것은 기존 정치가 놓치고 있는 ‘숙고된 시민의 판단’을 제도 안으로 끌어들이기 때문이다. 정치학자들은 브렉시트 국민투표 역시 시민의회와 같은 숙의 과정이 사전에 있었다면 훨씬 다른 결과를 낳았을 가능성이 있다고 평가한다. 단순한 선동과 감정적 동원이 아니라 시민들이 실제 쟁점을 학습하고 토론할 기회를 가졌다면 영국 사회는 보다 신중한 판단을 내릴 수 있었을 것이라는 지적이다.
시민의회는 대의민주주의를 폐기하려는 시도가 아니다. 오히려 그 한계를 보완하려는 시도다. 시민의회는 일반 시민들이 실제 정책 문제를 학습하고 토론하며 공공적 판단 능력을 형성함으로써 직접민주주의와 대의민주주의 사이를 연결하는 징검다리 역할을 할 수 있는 것이다.
오늘날 세계 곳곳에서 기존 민주주의 체제는 심각한 위기를 겪고 있다. 미국과 유럽에서도 정치 양극화와 포퓰리즘이 심화되고 있으며 기존 제도권 정치가 시민들의 요구를 제대로 수용하지 못한다는 비판이 커지고 있다. 한국 역시 예외가 아니다. 이러한 상황 속에서 시민의회는 단순한 실험이 아니라 민주주의의 새로운 가능성을 모색하는 흐름으로 자리 잡고 있다는 점에서 그 도입을 진지하게 고민해 볼 필요가 있어 보인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