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 노동당, 비례대표제 도입 논쟁

노동당의 알렉스 소벨(Alex Sobel) 의원이 대표 발의한 신설조항 NC31은 법률 통과 후 3개월 안에 정부가 ‘국가 선거제도 개혁위원회(National Commission on Electoral Reform)’ 설치 가능성을 검토해 의회에 보고하도록 요구하고 있다. 위원회가 출범할 경우에는 정부로부터 독립해 전문가와 시민의 의견을 듣고, 12개월 이내에 최종 권고안을 발표하도록 규정하고 있다.[2]

정부의 공식 입장은 무엇인가?

영국 정부의 공식 입장은 아직 ‘현행 유지’에 가깝다. 노동당의 2024년 총선 공약은 16·17세 투표권, 유권자 등록 개선, 유권자 신분증 규정 보완, 정치자금 규제 강화 등이었으며, 하원 선거방식 변경의 경우에는 공약내용에는 없었다.[3]

현재 심의 중인 국민대표법안(Representation of the People Bill)도 투표연령, 자동 유권자 등록, 유권자 신분증, 정치자금, 선거관리위원회 권한 등을 폭넓게 다루지만 소선거구 단순다수제(First Past the Post, FPTP)의 폐지는 정부안에 포함하지 않았다.[4]

앤디 버넘(Andy Burnham) 현 영국총리도 오랫동안 비례대표제를 지지해 왔다. 그러나 총리실은 차기 노동당 총선 공약에서 선거제도 개혁을 다루겠다는 입장을 밝히면서도, 당장 국가위원회 설치를 지지한다고 명시하지는 않았다.[5]

따라서 현재 상황은 정부가 개혁안을 추진하는 단계라기보다는 노동당 의원들이 정부에 공식 검토 절차를 열라고 압박하는 단계로 보는 것이 맞을 것이다.

선거제 개혁 압박이 커진 이유

첫째, 노동당 의원 구성이 달라졌다. 2024년 총선으로 처음 입성한 의원들 가운데에는 노동당이 승자독식 경쟁에만 의존하기보다 다당제 현실에 맞는 선거제도를 선택해야 한다고 보는 사람이 많아졌다.

둘째, 2024년 총선이 득표율과 의석률의 큰 차이를 드러냈다. 노동당은 전국 득표율 33.7%로 하원 650석 중 411석, 즉 전체 의석의 63.2%를 차지했다. 반면 개혁당(Reform UK)은 14.3%를 득표했지만 5석, 녹색당 계열은 6.7%를 득표했지만 4석에 그쳤다.[6]

셋째, 2024년 총선은 네 개 정당이 각각 10%가 넘는 득표율을 기록하고, 다섯 개 정당이 각각 5%가 넘는 득표율을 기록한 최초의 선거였다. 노동당과 보수당의 합산 득표율은 보통선거 역사상 최저 수준인 57.4%를 기록했으며, 그 밖의 정당들과 무소속 후보들이 전체 표의 40% 이상을 차지했다.

소선거구 단순다수제는 양당제를 위해 설계된 선거제도이므로 2024년 총선처럼 유권자들이 여러 정당에 걸쳐 선택을 분산시키는 경우에는 승자의 득표율이 낮아지게 된다. 그 결과 당선 후보들은 과반에 못 미치는 득표율로 당선되는 경우가 빈번하며 때로는 해당 선거구 유권자 지지의 3분의 1에도 미치지 못한 채 당선되기도 한다.[7]

넷째, 의회 안의 조직적 압박이 커졌다. 8월 25일 가디언 보도 기준으로 NC31에는 노동당 의원 98명을 포함해 8개 정당과 무소속 의원 185명이 이름을 올렸다. 아울러, 유고브(YouGov)가 하원의원들을 대상으로 실시한 여론조사에 따르면 조사에 응한 의원 가운데 53%는 현행 투표제도인 최다득표자 당선제에 대한 검토를 지지한다고 답한 것으로 알려졌다.

선거제 개혁으로 해결할 수 있는 문제들

선거제 개혁으로 해결하려는 문제는 다음과 같이 정리할 수 있다.

  1. 전략투표 압력: 가장 선호하는 후보보다 당선 가능성이 있는 차선 후보에게 표를 주는 상황에 대한 변경 필요
  2. 특정 정당이 유리한 지역구의 고착: 경쟁이 약한 지역에서도 유권자의 선택이 의석 구성에 반영될 필요
  3. 소수 득표 다수정부: 전국 유권자의 과반 지지 없이 한 정당이 하원 절대다수를 차지하는 현상 완화 필요
  4. 다당제와 제도의 불일치: 양당 경쟁을 전제로 작동해 온 제도를 실제 정당 구도에 맞출 필요

여기에는 노동당의 현실적인 이해관계도 섞여 있다. 개혁당 지지율이 30% 안팎까지 올라간 상황에서 단순다수제가 유지되면, 개혁당이 과반에 못 미치는 전국 득표로도 큰 의석 보너스를 얻을 수 있다는 우려가 존재한다.

다만, 반대 논리도 있다. 단순다수제 지지자는 한 지역구와 한 의원의 직접적인 책임관계, 신속한 정부 구성, 유권자가 명확하게 심판할 수 있는 단독정부를 장점으로 든다. 비례대표제가 연립정부 협상을 일상화하고, 정당 지도부가 명부 순위를 통제하는 모델에서는 개별 후보에 대한 유권자의 선택권을 약화할 수 있다는 우려도 있다.[8]

결국 쟁점은 비례성과 지역대표성, 합의정치와 책임정치, 제도적 공정성과 정부 구성의 효율성 사이에서 어떤 균형을 선택할 것인가일 것이다.

비례대표제를 도입하면 달라지는 점

2024년 총선의 득표를 완전비례 방식에 단순 대입하면 노동당의 33.7%는 단독 과반 326석에 크게 못 미친다. 노동당 정부가 구성되더라도 자유민주당, 녹색당 또는 다른 정당과의 연립·협력·신임공급 협정이 필요했을 가능성이 높다.

다만, 이를 실제 의석 예측으로 받아들이면 안 된다. 제도가 바뀌면 ‘사표가 될 수 있다’는 우려가 줄어 유권자의 선택과 정당의 후보 공천, 선거운동 전략도 함께 달라질 가능성이 높다. 선거구 규모와 봉쇄조항에 따라서도 결과가 달라지므로, 2024년 표를 그대로 재배분한 수치는 설명을 위한 가정일 뿐이다.

정부 구성 방식도 달라질 수 있다. 비례성이 높은 제도는 거대 단독 과반의 가능성은 줄어들고 정당 간 협상이 늘어날 가능성이 커질 것이다. 이에 정부 구성 시한, 공무원의 협상 지원, 과도정부 원칙 등을 함께 정비할 필요가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실제로 선거제 개혁이 가능할까?

다음 총선 전 선거제도 변경 가능성은 낮다. 버넘 총리는 2024년 공약에 없는 선거제도 변경을 다음 총선 전에 추진하지 않겠다고 선을 그었기 때문이다. 총리실도 개혁을 차기 공약의 문제로 설명하고 있다.

현실적인 경로는 다음과 같다.

  1. 하원에서 국가 선거제도 개혁위원회에 관한 정치적 합의를 만든다.
  2. 독립위원회가 비례성, 지역대표성, 유권자 선택권, 정부 구성 안정성 등을 기준으로 대안을 검토한다.
  3. 노동당이 권고안 또는 개혁 원칙을 다음 총선 공약에 포함한다.
  4. 노동당이 다시 집권하고 의회가 관련 법률을 통과시킨다.

하지만 노동당 내 계산은 복잡할 수밖에 없다. 장기적으로는 중도·진보 정당과 협력해 집권 가능성을 높일 수 있지만, 단기적으로는 2024년에 얻은 거대한 단독 과반의 이점을 스스로 포기하는 선택이 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현재로서는 독립위원회 논의가 시작될 가능성은 이전보다 높아졌지만 확정되지 않았고, 다음 총선 전 선거방식이 바뀔 가능성은 낮다고 보는 것이 맞을 것이다. 다만, 위원회의 권고 또는 비례대표제 원칙이 노동당의 다음 총선 공약에 들어갈 가능성은 이전보다 커졌다는 점이 희망이라면 희망일 것이다.

참고자료

  1. The Guardian, 「Why do some Labour MPs want electoral reform and will it happen?」, 2026년 8월 25일.
  2. UK Parliament, 「Amendment NC31 to Representation of the People Bill」, 2026년.
  3. The Guardian, 「Labour to bring in automatic voter registration under plans to boost franchise」, 2024년 6월 26일.
  4. House of Commons Library, 「Representation of the People Bill: progress of the bill」, 2026년 7월 20일.
  5. The Guardian, 「Labour MPs will push Burnham to back voting reform in first 100 days」, 2026년 8월 25일
  6. House of Commons Library, 「2024 general election: Performance of Reform and the Greens」, 2024년 8월 16일.
  7. Electoral Reform Society, 「Briefing on Proportional Representation」, 2026년 2월 26일.
  8. Institute for Government·Bennett Institute for Public Policy, 「Electoral reform and the constitution」, 2023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