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민의 정치참여 욕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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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민의 정치참여 욕구는 특정 시대나 장소에 국한되지 않는다. 고대 아테네는 모든 시민이 민회에 직접 참여해 입법과 정책을 결정하는 직접민주주의였다. 직접민주주의가 비효율적임에도 불구하고 꽤 오랜 기간 유지되었는데, 이는 시민들이 통치의 주체가 되고자 하는 강한 욕구를 지니고 있었기 때문이다.

고대 로마 역시 마찬가지였다. 초기 로마의 왕은 세습이 아닌 선거를 통해 정당성을 확보했다. 그리고 이러한 정당성 확보는 로마가 시민 참여, 권력 견제 등 현대 민주주의 원리들을 두루 포섭하여 안정적으로 국가를 운영할 수 있는 계기가 되었다. 왕정 타도를 이끈 루키우스 유니우스 브루투스(초대 집정관)는 왕을 추방한 직후에 포로 로마노에 모인 시민들에게 앞으로 어떤 인물도 로마 시민의 자유를 침해하는 것을 허용하지 않겠다고 맹세했다고 한다. 그리고 로마의 집정관 선거는 그 이후에도 지속적으로 시민의 투표를 통해 이어져 나갔다.

근대 미국 독립혁명(1776)에서 식민지 주민들은 단순한 자치를 넘어서 자신들의 대표를 직접 선출할 권리를 요구했다. “대표 없는 과세 없다 No taxation without representation” 구호는 정치적 대표성과 투표권에 대한 요구로 자연스럽게 이어졌고 이는 이후 보통선거권 확대의 흐름으로 발전하게 되었다. 이어 일어난 프랑스혁명(1789) 역시 정치적 의사결정에서 배제되어 있던 시민들의 참여 요구가 분출된 사건이었다. 이처럼 두 혁명은 서로 맞물리며 근대 민주주의의 토대를 형성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했다.

현대 사회에 있어서도 시민들의 정치참여 욕구는 여전히 강력하다. 1987년 6월 민주 항쟁 당시 한국 시민들은 대통령 직선제를 요구하며 거리로 나섰다. 서슬 퍼런 군부독재 하에서도 위험을 무릅쓰고 적극적으로 나설 수 있었던 것은 내 손으로 대표를 직접 선택하겠다는 집단적 의지의 표현이었다. 6월 민주항쟁은 단순히 선거제도를 바꾼다는 것보다는 시민으로서의 존엄을 되찾겠다는 큰 의미가 있었던 것이다.

로마 초대 황제인 아우구스투스는 이러한 고대와 현대를 아우르는 시민의 정치참여 욕구를 그 시절(기원전 30년 무렵)에도 분명히 통찰하고 있었다. 시민들의 정치참여 욕구가 적절히 해소되지 않을 경우 작은 계기만으로도 사회적 불만이 한꺼번에 분출될 수 있다는 점을 그는 잘 알고 있었다. 공화정에서 황제의 통치인 제정으로 바뀌어가는 과도기에 있어 그러한 불만 표출은 국가적인 위기상황을 결과할 수도 있었기에 그의 고민은 깊었을 것이다.

이에 아우구스투스는 행정개편을 통해 주(州) 제도를 확립함으로써 주 내부의 정치는 그 주에 사는 시민, 즉 유권자에게 맡기기로 했다. 현대에 발굴된 폼페이 유적의 벽면에는 당시의 선거 포스터가 다수 남아 있는데 이는 지방의 중소도시에 불과했던 폼페이에서도 선거 활동이 매우 활발하게 전개되었음을 보여준다. (고대 로마의 선거 방식은 기본적으로는 미국 대통령 선거와 비슷하다. 유권자의 표를 한꺼번에 집계하여 당선자를 결정하는 것이 아니라, 각 주와 각 구의 표를 집계하여 많은 표를 얻은 사람이 그 주나 구의 ‘표’를 독점한다.)

그는 행정개편을 통해 권력을 황제에게 집중시키면서도 동시에 선거와 지방자치를 통해 시민들이 여전히 정치에 참여하고 있다는 감각을 느끼도록 한 것이다. 일종의 정치효능감이었던 것이다. 로마 공화정이 제정으로 전환되더라도 이는 정치적 안정을 위한 것이며 시민들의 정치적 참여를 억압하지 않겠다는 것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것으로 아우구스투스가 시민들의 정치참여 욕구에 대한 이해가 높았음을 암시하는 것이다.

나아가 인간의 정치참여 욕구는 단순히 투표나 선거 절차에 참여하려는 욕망뿐 아니라 공동체의 운명에 영향을 미치는 주체가 되고자 하는 사회적 욕구에 가깝다. 미국 심리학자 Maslow는 인간에게 동기를 부여하는 기본욕구를 5단계로 분류하고 그 중 ‘자아실현 욕구’를 가장 높은 단계로 지정하고 있었는데 이를 통해 볼 때 고대나 현대나 인간이라는 존재에 대한 인식은 크게 다르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시민들은 자신들의 선호와 이해관계를 정책 결정에 반영하기를 원하며, 투표는 이러한 요구를 제도적으로 표출하는 핵심적 수단이다. 만약 이러한 투입이 제도적으로 정책에 흡수되지 못할 경우 체제 불안정을 야기할 수 있다. 아우구스투스는 시민의 투표 욕구를 억압하기보다 행정 단위로 세분화하고, 각 단위에서 선거를 실시하게 함으로써 시민들이 정치 과정에 참여하고 있다는 인식을 유지하도록 함으로써 체제안정을 유지하였다.

결국 정치 체제의 안정성은 권력의 집중 여부보다, 시민의 참여 욕구를 얼마나 정교하게 흡수하고 제도화하느냐에 달려 있다. 로마 제국, 아테네 민주정, 근대 혁명, 그리고 현대 민주주의에 이르기까지 반복되는 역사적 경험은 하나의 사실을 보여준다. 인간은 단순히 잘 통치되기를 원하는 존재가 아니라, 스스로 통치에 참여하기를 원하는 존재라는 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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