많은 사람들이 다수결을 민주주의의 핵심으로 오해한다. 다수결이 민주주의 내 결정의 정당성을 보장한다고 말하기도 한다. 하지만 이것은 큰 문제다.
다수결은 그 자체로 결정의 정당성을 보장하는 것이 아니다. 다수결이 정당성을 얻기 위해서는 전제조건이 있다. 바로 아래와 같은 “과정“이다.
결정에 있어 참가자들은 각자의 이유를 제시한다. 그리고 서로 비판하고 논쟁하면서 경쟁적으로 서로의 이유를 내세운다. 그러는 가운데 서로의 해법들에 대한 안목이 넓어지고 배움이 깊어진다. 그리고 최종적으로는 서로가 세련된 판단을 얻게 된다.
이러한 “과정” 속에서 서로가 양보하고 타협하면서 더 좋은 제 3의 대안이 도출되기도 하고, 비슷한 제안자들끼리 연합하여 세력을 결성하기도 한다.
만약 이러한 “과정“이 없다면 어떨까? 비판적 논의 없이 끝없는 비난 속에서 결정을 못하고 그저 결정을 위해 다수결이라는 수단을 사용하는 한계에 머물게 될 것이다. 그리고 그러한 결정은 또 다른 분쟁과 마찰을 야기할 것이다. 스스로는 결정의 정당성을 얻었다고 자부하겠지만 사실 아무것도 ‘완벽하게’ 결정된 것이 없게 되는 것이다.
요약하면, 합의를 위한 여러 이성적 노력을 다하고도 해법을 찾지 못했을 경우에 최후의 방법으로 참가자 다수의 지지를 받는 방안이 잠정적으로 좋은 방안이라고 받아들이는 것, 이것이 민주주의 다수결 원리일 것이다.
다수결로 결정했기 때문에 정당한 것이 아니라, 지난한 이성적 과정(비판, 논쟁 등)을 거칠 경우에만 다수결은 정당성을 인정받는 것이다.
물론 다수결에 의한 결정이 정답은 아니다. 임시적 결정에 지나지 않을 것이다. 추후에 상황이 변화하여 부적절한 선택으로 판명이 난다면 다시금 이성적 의사결정을 거쳐야만 한다. 따라서 다수결에 의한 결정은 수정 가능성을 늘 염두에 두고 있어야 한다.
무수하고 다양한 인간의 결정에 어떻게 완전무결한 것이 있을 수 있겠는가. 완전한 대안이 있을 수 없다면, 그 중에서 가장 결점이 적은, 그래서 많은 이들이 동의하는 대안으로 만족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그것이 다수결 원리이고 전술한 조건을 충족하는 다수결 원리 만이 결정의 정당성을 담보할 수 있을 것이다.
먼저, 합리성이다. 이에 따르면 정부조직 개편의 논리는 정부조직의 구조에 합리성이 결여되어 있다는 것이다. Salamon (1981)에 따르면, 합리성은 정부 조직의 능률성 및 경제성 그리고 정책효과성과 연결된다.
Burrell 과 Morgan (1979)에 따르면, 합리적 조직은 다음과 같은 특성을 갖는다.
첫째, 조직과 조직구성원은 공동의 목표를 공유하고 이를 구심점으로 하여 통합된 팀으로 작동한다.
둘째, 갈등은 드물고 일시적인 현상이다. 갈등은 제거되어야 할 부정적 요소이기 때문이다.
셋째, 조직 갈등 관리를 위한 권력과 정치의 역할은 미약하다.
요약하면, 합리성 논리 하에서 정부조직개편은 정부가 효과적이고 효율적인 도구가 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따라서 그 수단으로 효과적 관리, 기능적 합성, 예산 효율화, 조정과 협력, 부처 수의 감축 및 업무중복 최소화 등을 언급하는 것은 너무나 자연스러운 일이다. 이에 더하여 권한과 책임의 명확한 설정, 통솔범위, 최신의 관리기술의 활용, 공정하고도 효율적인 인적자원 활용 등이 주요 관심사가 될 것이다.
다음은, 정치성이다. 정부조직개편은 전쟁터에서 승리한 자에게 주어지는 전리품이다. 따라서 Morgan (2006)이 지적하듯이, 정치성은 합리성을 벗어나는 순간 반조직적이며 역기능으로 작용할 수 있어 부정적 평가의 대상이 될 수 있다.
정부조직개편에 정치가 작동하는 상황적 조건은 다음과 같다. (Ferris and King, 1991)
첫째, 희소한 자원이다.
둘째, 희소자원을 둘러싼 경쟁이다.
셋째, 불확실성이다.
정치성의 구체화는 다음과 같이 이루어진다.
첫째, 조직개편을 둘러싼 다양한 행위자가 있고 그들의 목표가 반드시 일치하는 것은 아니다. 따라서 자신의 원하는 방향으로 논의를 끌고 가기 위하여 다양한 정치적 담론을 형성하고 구체적인 정치행위를 할 수밖에 없게 된다.
둘째, 정부조직개편의 높은 가시성은 정치적 활용도를 더욱 높여준다. 새로운 정권 출범 초기에는 이러한 카드가 매력을 더하는데 국민들이 새 정부 개혁에 높은 관심을 갖기 때문이다.
셋째, 정부조직개편은 진보의 환상(illusion of progress) 을 만든다. 조직개편은 긍정적인 효과를 전제한다. 미래를 예측할 수 없기에 사람들은 더더욱 조직개편에 따른 개선, 진보에 환상을 갖게 된다.
요약하면, 일반적인 조직이론은 합리성에 따른 개편을 전제하지만, 실제 현실은 정치성에 따라 작동한다. 정치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기 때문이다. 따라서 정부조직개편 논리에서 정치성을 제외하는 것은 비현실적인 논의가 될 수 있다. 정부조직개편이 역동적이고 복잡한 이유이기도 하다.
사람들은 왜 투표를 하지 않을까. 이유가 여러가지 일 것이다. 정치가 싫어서, 아니면 그냥 관심이 없어서, 그것도 아니면 그냥 투표장에 가는 것이 귀찮아서 등등 다양할 것이다. 사람들은 정말 이런 저런 이유로 투표를 하지 않는다.
프랭클린 루즈벨트 Franklin D. Roosevelt 는 이렇게 말했다. “자기 자신 이외에 그 누구도 미국인들의 투표권을 빼앗은 적이 없다.” “Nobody will ever deprive the American people of the right to vote except the American people themselves and the only way they could do that is by not voting.”
맞다. 투표를 하는 것도 하지 않는 것도 결국 자신의 선택이다. 그렇다면 그러한 선택은 어떤 과정과 절차 및 이유로 결정되는 것일까.
이와 관련해서는 이론적으로 두 가지 설명이 가능하다. 첫째는 사회경제적 지위에 따라 투표 참여 가능성이 결정된다는 이론이고, 둘째는 인간이 합리적으로 투표 참여를 결정한다는 이론이다.
첫번째 이론은 이렇다. 유권자의 소득, 교육수준, 계층 등이 높을수록 투표에 참여할 가능성이 높아진다는 것이다. 다시 말해, 사회경제적 지위가 높을수록 선거정보를 획득할 수 있는 기회와 관심, 시간 등이 늘어남으로써 쉽게 투표에 참여할 수 있다는 것이다(Wolfinger and Rosenstone, 1980).
예를 들어, 소득이 높을수록 소위 “소득효과 income effect”가 발생한다. 더 많은 재화를 소비할 수 있고 더 많은 시간을 휴식할 수도 있다. 따라서 소득효과가 크면 투표에 참여하는 것도 쉬워지는 것이 당연하다. 하지만 동시에 “대체효과 substitution effect”가 발생할 수도 있다. 내가 하는 일들의 가치가 높고 내 일 대신에 다른 일(투표와 같은)을 하는 기회비용이 크기 떄문이다. 따라서 대체효과가 크면 투표에 참여하기 어려워진다. 마이클 조던 Michael Jordan 이 본인 집의 잔디를 깎지 않는 이유와 비슷하다.
따라서 첫번째 이론은 소득효과가 대체효과보다 더 클 것이라는 가정 하에 성립되는 이론이다. 가난한 사람들은 왜 부자에 비해 투표를 하지 않을까, 하는 것이 첫번째 이론에 따른 대표적인 연구질문이 될 것이다.
소득 외에 교육, 계층 등도 같은 논리로 진행된다. 물론 이 이론은 논리보다 여러 실험을 통해 그 결과가 입증되어 여전히 설명력이 높은 이론이다.
하지만 보다 일반화된 투표참여 이론은 바로 두번째인 합리적 선택 이론 rational choice theory 이다. 이는 투표를 인간의 합리적 선택행위로 본다. 앤서니 다운즈를 비롯한 여러 학자들은 투표를 그 효용과 비용을 고려한 고도의 계산적 행위로 바라본다(Downs, 1957; Riker & Ordeshook, 1968). 투표에 앞서 인간은 그들 투표의 편익 benefit과 비용 cost을 세심히 계산해 본 다음, 투표에 대한 편익이 비용보다 클 때 투표에 참여하게 된다는 것이다.
투표참여 이론을 수학적으로 풀면 다음과 같다.
R = pB – C + D
R : 투표로 얻는 최종 보상 reward
B : 지지후보가 승리함으로써 얻게 되는 혜택 benefit
p : 혜택 B를 얻을 확률 probability
C : 투표를 위해 지불하는 비용 cost
D : 시민적 의무 duty
복잡해보이는 것 같지만 단순하다. 투표로 얻는 최종 보상 reward이 0보다 크면 투표를 하고 0보다 작으면 투표를 안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최종 보상이 0보다 크기 위해서는 확률 probability을 고려한 혜택 benefit과 시민적 의무 duty를 합한 값이 투표를 위해 지불하는 비용 cost보다 커야 한다는 것이다. 더 간단히 말하면, 투표로 인한 혜택이 드는 비용보다 더 커야 투표를 하러 간다는 것이다.
어려운 것 같지만 사실 이 공식 하나만 있으면 여러 가지 현상이 쉽게 설명된다.
먼저, 내 주위에 시민적 의무감이 제일 강한 한 사람을 떠올려보자. 길거리에 떨어진 쓰레기를 자발적으로 줍거나 어려운 사람을 위해 자원봉사를 게을리하지 않는 사람 말이다. 그는 D가 무척 강한 사람일 것이다. 그는 투표를 위해 지불하는 비용 C가 제 아무리 크더라도 투표장으로 향할 것이다. 비용을 제한 보상 R이 여전히 0보다 클 것이기 때문이다.
다음으로, 도무지 정치에 무관심한 사람 한 사람을 떠올려보자. 지금 대한민국 대통령이 누군지 현재 무슨 정당이 있는지 전혀 모르는 사람 말이다. 그에게 있어 지지후보가 승리함으로써 얻게 되는 혜택 B는 0에 수렴할 것이다. 따라서 그에게 투표는 얻는 것 없이 비용만 드는 귀찮은 것으로 판단될 것이고 당연히 투표를 하지 않을 것이다.
또, 호주 국민을 생각해보자. 호주의 경우 법으로 투표를 강제하는 의무투표제 compulsory voting가 시행되고 있다. 투표를 하지 않을 경우, 20 호주달러를 벌금으로 내야 한다. 따라서 압도적으로 높은 비용 C을 마주하게 되는 호주 국민들은 거의 대부분이 투표장으로 향하게 된다. 호주의 투표율은 항상 90%를 상회한다.
끝으로, 평균적인 시민적 의무감과 정치에 대한 관심을 가진 일반적인 사람을 한 명 상정해보자. 그는 언제나 투표장에 가서 투표권을 행사하는 사람이었다. 그런데 이번 선거는 본인이 지지하는 후보가 도무지 이길 가능성 p이 없어보였다. 이 경우 p가 만약 거의 0에 수렴한다면 그는 혜택 B를 받을 가능성이 없을 것이고 따라서 그의 시민적 의무감 D가 비용 C보다 크지 않을 경우 그는 보상 R이 0보다 작게 되어 투표를 포기할 것이다.
이렇게 하나하나 따져보니 다운즈를 위시한 정치학자들이 당연한 말을 너무 어렵게 하는게 아니고, 어려운 현상을 정말 쉬운 공식으로 잘 정리해 놓은 것 같다.
내 기억 속 대통령 선거일은 항상 겨울이었다. 후보들은 언제나 두꺼운 방한점퍼 차림이었다. 그들은 거리에서 하얀 입김 홀홀 내뱉으며 유세를 하곤 했다. 그 주위에는 언 손 호호 녹여가며 후보의 기호를 연호하는 선거운동원들이 있었다. 5년마다 12월이면 반복되던 풍경이었다.
그런데 언제부터인지 그런 모습을 찾아보기 힘들어졌다. 문득 궁금해졌다. 추운 날 하던 대통령 선거운동은 어디로 간걸까? 지구 온난화 때문에 우리의 겨울이 더 이상 춥지 않기 때문인걸까? 물론 아니다. 그 이유는 대통령 선거일이 변경되어 이제는 더 이상 12월에 선거를 치르지 않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왜 그렇게 되었을까?
궁금증을 해결하기 위해서는 우선 1987년 헌법개정으로 돌아가야 한다.
1987년 당시 대한민국은 민주화 열망으로 가득차 있었다. 군부독재의 4.13 호헌선언에 맞서 국민들은 6월 항쟁을 통해 민주화 열망을 표출하였다. 국민과 야당은 직선제 개헌을 거세게 요구하였고, 결국 민정당 노태우 대표가 6.29 선언을 통해 직선제 개헌에 합의하게 되었다. 당시 개정 헌법은 개헌 이후 최초 대통령 선거에 관하여 다음과 같이 부칙에서 규정하고 있었다.
헌법 부칙
제1조 이 헌법은 1988년 2월 25일부터 시행한다.
제2조 ①이 헌법에 의한 최초의 대통령선거는 이 헌법시행일 40일 전까지 실시한다.
②이 헌법에 의한 최초의 대통령의 임기는 이 헌법시행일로부터 개시한다.
이에 따라 제13대 대통령선거는 1987년 12월 16일 실시하게 되었다. 이 선거에서 민정당의 노태우 후보는 36.64% 득표율로 김영삼, 김대중 후보를 누르고 대통령에 당선되었다. 그리고 1988년 2월 25일 대통령에 취임하였다.
그리고 5년 후 제14대 대통령선거는 헌법 본문에 따라 진행되었다.
헌법
제68조 ①대통령의 임기가 만료되는 때에는 임기만료 70일 내지 40일전에 후임자를 선거한다.
이에 따라 제14대 대통령선거는 임기만료 68일 전인 1992년 12월 18일에 실시하게 되었다. 이 선거에서 민주자유당의 김영삼 후보는 41.96% 득표율로 김대중 후보를 누르고 대통령에 당선되었다. 그리고 1993년 2월 25일 대통령에 취임하였다.
사실 이때까지만 해도 아직 선거법이 제정되기 전이어서 헌법 외에는 선거일 관련 규정이 없었다. 하지만 1994년 ‘공직선거및선거부정방지법’이 제정되며 선거일을 특정일로 미리 정한 ‘선거일 법정주의’가 도입되었다. 그리고 제15대 대통령 선거는 아래의 규정에 따라 진행되었다.
공직선거및선거부정방지법
제34조 (선거일) ①임기만료에 의한 선거의 선거일은 다음 각호와 같다.
1. 대통령선거는 그 임기만료일전 70일이후 첫번째 목요일
②제1항의 규정에 의한 선거일이 국민생활과 밀접한 관련이 있는 민속절 또는 공휴일인 때와 선거일전일이나 그 다음날이 공휴일인 때에는 그 다음 주의 목요일로 한다.
이제부터는 계산이 필요하다. 김영삼 대통령 임기만료일은 1998년 2월 24일이었다. 따라서 그 임기만료일전 70일은 1997년 12월 16일이고, 그 후 첫번째 목요일은 12월 18일이 된다. 이에 따라 제15대 대통령선거는 1997년 12월 18일에 실시하게 되었다. 이 선거에서 새정치국민회의 김대중 후보는 40.27% 득표율로 이회창, 이인제 후보를 누르고 대통령에 당선되었다. 그리고 1998년 2월 25일 대통령에 취임하였다.
해당 선거법은 2004년 3월 까지 유지되다가 개정되었다. 개정된 공직선거법은 현재까지 유지되고 있는데 규정은 다음과 같다. 선거일이 목요일에서 수요일로 변한 것이 전부다.
공직선거법
제34조(선거일) ①임기만료에 의한 선거의 선거일은 다음 각호와 같다.
1. 대통령선거는 그 임기만료일전 70일 이후 첫번째 수요일
②제1항의 규정에 의한 선거일이 국민생활과 밀접한 관련이 있는 민속절 또는 공휴일인 때와 선거일전일이나 그 다음날이 공휴일인 때에는 그 다음주의 수요일로 한다.
따라서 민주화 이후 실시된 모든 대통령선거는 모두 12월에 치러졌다. 그런데 2017년 3월 10일, 헌법재판소가 박근혜 대통령에 대한 탄핵을 인용하면서 선거일이 달라졌다. 헌법은 대통령 궐위시 60일 이내에 후임자를 선거한다고 규정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헌법
제68조 ②대통령이 궐위된 때 또는 대통령 당선자가 사망하거나 판결 기타의 사유로 그 자격을 상실한 때에는 60일 이내에 후임자를 선거한다.
여기서부터 또 계산이 필요하다. 2017년 3월 10일 탄핵일을 기준으로 60일째 되는 날은 5월 9일이 된다. 따라서 그 전에 실시해야 하는데, 공직선거법 제35조 1항에 따르면 “선거일은 늦어도 선거일 전 50일까지 대통령 또는 대통령권한대행자가 공고하여야 한다”고 명시되어 있어 4월 29일 전에는 선거 실시가 불가능한 상황이었다.
따라서 4월 29일부터 5월 9일 중 하루를 정해 대선을 실시해야 한다는 게 중앙선거관리위원회의 입장이었다. 이에 갑작스레 치르는 조기 대선인 만큼 선거 준비기간을 충분히 주어야 한다는 의견을 참고하여 탄핵선고 60일째 되는 날인 5월 9일에 제19대 대통령선거가 실시되었다. 따뜻한 5월에 실시된 선거라 ‘장미대선’이라는 별칭으로 불리기도 했다. 이 선거에서 더불어민주당 문재인 후보는 41.08% 득표율로 홍준표, 안철수 후보를 누르고 대통령에 당선되었다. 그리고 대통령의 임기는 2017년 5월 10일 공직선거법 제14조 1항 단서에 따라 중앙선거관리위원회 위원들이 전체회의를 열어 대통령 당선을 확인함으로써 곧바로 시작했다.
그렇다면, 이번 제20대 대통령선거는 왜 3월에 실시된걸까? 더이상 ‘장미대선’은 없는걸까?
여기서는 일반적인 대통령 선거이므로 현행 공직선거법에 따른다. 문재인 대통령 임기만료일은 2022년 5월 9일이었다. 따라서 그 임기만료일전 70일은 2월 28일이고, 그 후 첫번째 수요일은 3월 2일이 된다. 하지만 공직선거법 제34조 2항은 공휴일과 그 전후 일에는 선거가 불가한 것으로 규정하고 있다. 따라서 삼일절 다음날인 3월 2일은 선거가 치러질 수 없어, 그 다음주 수요일인 3월 9일이 선거일로 결정되었다.
여기까지가 왜 제20대 대통령 선거일이 3월 9일에 실시되었는지에 대한 답이 될 것 같다. 매번 12월에 했던 대통령선거를 5년 전에는 왜 5월에 했는지도, 그리고 지금은 또 왜 3월에 하는지도 이해가 되었을 것이다.
마지막으로 한 가지 더하자면, 2004년까지 목요일에 실시하던 선거를 왜 수요일로 옮겼을까?
그것은 2003년 ‘주5일 근무제’ 도입 때문이었다. 주5일제 시행으로 금요일 하루만 휴가내면 목, 금, 토, 일 4일 연휴로 쉴 수 있게 되었고, 그렇게 되면 투표율이 저조해질 확률이 높기 때문에 국회가 공직선거법을 개정하여 수요일로 선거일을 바꾼 것이다. 모든 일에는 다 이유가 있는 법이다.
위정자가 나무를 옮기는 데에서 본보기를 보여 백성을 믿게 한다. 백성을 속이지 않고 약속을 반드시 지킨다는 뜻이다. 쉬워보이지만 결코 쉽지 않은 자세다.
국민들이 후보자를 투표로 뽑는 행위를 선거라고 말한다. 후보자는 여러 가지 약속을 하면서 자신을 뽑아달라고 호소한다. 그 약속이 바로 “공약”이다. 선거에 승리하여 당선인이 되면 그 즉시 국민들은 계산서를 내놓는다. 그 계산서에는 당선인이 선거과정에서 약속했던 여러 공약들이 적혀있을 것이다.
사실 공약 이행은 쉽지 않다. 국가에서 시행하는 정책이라면 응당 법적 근거도 있어야 하고 조직, 예산도 있어야 하며 이해관계인 설득도 있어야 한다. 이 중 하나만 없어도 이루어지기 힘들어 지는 것이 보통이다. 그리고 이를 모두 갖추려면 여야, 정부, 시민단체, 국민 사이에 합의가 이루어져야 한다. 따라서 여러 이해관계인의 복잡한 다이내믹스를 하나의 결론을 향해 이끌어 내야 하는 어려움에 처하게 된다.
며칠 전 제20대 대통령선거으로 당선된 윤석열 후보의 공약을 살펴보자. 아래는 이행여부가 분명하게 드러나는 다섯가지를 뽑아본 것이다.
5년간 주택 250만호 이상 공급
여성가족부 폐지
촉법소년 연령 만 12세로 하향조정
사드 추가배치
초미세먼지를 국내환경기준 이하로 개선
우선, 두번째와 세번째 공약은 정부조직법과 소년법 개정이 각각 필요하다. 따라서 국회에서의 합의가 전제되어야 한다. 특히 촉법소년 연령 하향의 경우, 지난 20대 국회에서도 소년법 개정 또는 폐지를 논의했었지만 찬반 의견이 팽팽해 결국 합의를 이루지 못했던 사안이었다. 따라서 국회 논의부터 난관에 부딪힐 확률이 높아보인다.
다음으로, 첫번째 공약은 시민단체 및 국민 등 이해관계인에 대한 설득이 필요하다. 주택을 짓기 위해서는 토지가 필요하고 따라서 국가 소유 토지가 아닌 이상 원주민과의 협상이 필요하다. 이건 재건축, 재개발, 신도시개발 모두 마찬가지다. 역대정부가 150만호에서 200만호 정도 공급에 머물렀던 것은 의지가 부족했다기 보다는 실제로 시행을 위해서는 복잡한 과정을 겪어야 했기 때문인데 이러한 과정은 점점 더 어려워지는 추세다.
끝으로, 네번째와 다섯번째 공약은 국제사회와 연관된 문제이다. 사드 추가배치의 경우 지역선정 및 주민설득 등 국내문제는 차치하고서라도 중국과의 관계 문제에서 많은 논의가 필요할 것이다. 초미세먼지의 경우에도 중국발 영향을 무시할 수 없는 상황이어서 우리 스스로 자정노력 외에 국제적인 해결 노력이 더해져야 가능한 상황이다.
그렇다면 과거 우리 대통령들의 공약이행률은 어땠을까.
작년 5월, 공약체크 사이트인 <문재인미터 moonmeter.kr>는 문재인 대통령의 887개 공약에 대한 4년차 평가를 실시하였다. 참여연대, 환경운동연합 등 총 18개의 시민사회단체 및 기관이 평가에 참여했다. 그 결과 완료된 공약은 17.47%에 그친 것으로 나타났다. 문재인 대통령 임기의 80%가 지났음에도 완료된 대선 공약이 20%를 밑돌았다. 지체와 파기된 대선 공약은 20%를 넘는다. 집권여당이 180석을 확보했음에도 대선 공약 이행이 쉽지 않음을 보여주는 대표적인 사례라고 할 수 있다.
전 정권들도 어땠을까. 크게 다르지 않았다. <아래 그림 참고> 경실련 등의 자료에 따르면, 공약 이행률 50%를 넘긴 대통령은 아직까지 없는 실정이다. 가장 높았던 노무현 대통령의 경우에도 4년차 공약 이행률이 43.4%에 머물고 있었다. 당정청이 모두 노력했음에도 전부 다 지키기가 쉽지 않음을 보여준다고 할 수 있다.
전자신문 etnews.com
그렇다면 정치 선진국 미국은 어떨까.
버락 오바마 대통령은 2009년부터 2017년까지 미국 대통령으로 재직하였다. 그는 이 2번의 임기동안 533개의 공약을 발표하였다. 그리고 Politifact 라는 단체는 오바마의 재임기간(8년) 동안의 공약이행여부를 조사하였는데, 이를 오바미터(Obameter) 라고 했다. 이에 따르면, 오바마 대통령은 48%의 공약을 이행하였고, 28%의 공약은 타협하였으면, 24%의 공약은 파기했다고 한다. (보고서 링크)
오바마 대통령은 민주당이 상하원 모두 다수였던 2009년에는 오마바케어와 경기부양 관련 법안을 통과시키며 많은 공약을 이행할 수 있었다. 하지만 2010년 선거에서 민주당이 의회 다수당이 되는 것에 실패하면서 기후변화와 이민에 관한 법안이 통과되지 못했고, 이후 임기말까지 민주당이 의회권한을 확보하지 못하면서 어려운 싸움이 되었다고 한다.
노르베르토 보비오라는 이탈리아 정치사상가는 “민주주의란 투표할 수 있는 체제가 아니라 어디에 투표할지에 대한 딜레마를 해결해 주는 체제”라고 말한 바 있다. 그러기 위해서는 후보자는 실천가능한 공약을 유권자에게 제시하고 유권자는 정책을 보고 투표하는 민주주의 선순환이 필요하게 된다.
앞서 말한 것처럼 공약 이행은 쉽지 않다. 하지만 불가능한 것 또한 아니다. 정부가 강한 의지를 가지고 협치와 대화를 통해 차분하게 진행해 나간다면 모든 공약 이행이 가능해질 수도 있을 것이다. 다만, 그러기 위해서는 앞서 말한 “이목지신”보다 더 큰 노력을 해야할지도 모른다. 그것들은 아마도 나무를 옮기는 정도가 아닌 산을 옮기고 산맥을 이어야 하는 중차대한 문제들일 것이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공약을 지켜낸다면 국민들은 그 실행력에 감탄하며 남다른 신뢰를 쌓게 될 것이다.
사람들은 종종 사과문을 써야하는 상황에 부딪히게 된다. 어떤 사고가 일어났을 때, 혹은 개인 혹은 조직의 잘못이 일어났을 때 우리는 사과문을 써야 한다. 그렇다면 사과문은 어떻게 써야 하는가.
일반적으로 우리 사회에서는 사과하는 행위가 중요한 게 아니라, 저 사람이 얼마나 진심으로 반성하고 사과하는 마음을 가지고 있는지가 훨씬 더 중요하다고 한다.
실제로 어떤 사고가 일어났는데 바로 사과하지 않고 진상 규명을 다 거친 후에 한참 지나 사과를 하게 되면 진심이 보이지 않는다고 생각하여 사과를 받아들이지 않기도 한다. 잘잘못을 다 따진 후에 사과를 하면 진정성이 의심된다는 것이다.
심리학 연구결과에 따르면, 일반적으로 타인의 행동이 얼마나 의도된 것인가, 즉 우연이 아니라 개인적 의지가 반영된 행위인가를 가늠할 때, 사람들은 자동적으로 몇 가지를 고려한다고 한다.
첫째, 다른 행동을 할 선택의 여지가 있었느냐의 여부이다. 다른 행동을 선택할 수도 있었는데 결국 어떤 행동을 했다면, 그 행동은 더 의도적으로 보인다.
둘째, 어떤 행동을 하기 위한 어려움이 있었다고 판단되면 그 행동은 더 의도적이라고 판단된다. 쉬운 행동보다는 역경을 이겨낸 행동에 더 진심이 담겼다고 생각하는 원리이다.
셋째, 그 행동에 집중하고 있다고 느껴지면 더 의도적으로 느껴진다.
이러한 원리를 종합해보면, 어떤 사과가 진심이 담긴, 마음에서 우러난 사과인지를 가늠해볼 수 있다.
우선 굳이 안 해도 되는 사과를 하거나 기대보다 더 많은 사과를 할 때, 사과를 하지 않고 피할 수 있음에도 사과를 할 때 사람들은 그것을 진심으로 여긴다.
반대로, 몰릴 만큼 몰려서 더 이상 도망갈 길이 없어 보일 때 하는 사과는 해봤자 말짱 도루묵이다. 이왕이면 가기 어려운 곳에서 하기 어려운 형태로 하는 사과가 진심이 담긴 사과로 보인다.
이제 사과문을 쓰는 단계로 가보자. 사과문을 쓸 때 가장 처음 드는 생각은 일단 나를 변호하고 싶다는것이다. 잘못하긴 했지만 내가 한 잘못보다 더 많은 비난을 받을 때 사람들은 누구라도 변명을 하고 싶어진다.
사람들이 자신을 변호하며 사과하려고 할 때 그들은 딜레마에 빠진다. 사과는 후회의 감정을 전달하지만, 변호는 그런 감정을 경감하기 때문이다. 자기 변호를 계속 생각하다보면 본래의 사과를 경감해야 할 상황이 오기도 한다. 따라서 그처럼 지속적인 자기 변호는 본래의 사과를 진실하지 않거나 불완전한 것으로 만들 가능성을 높여 준다.
이러한 자기 변호가 심해지면 피해에 대해 사과하기를 거부하고 관련된 핑계만 대는 방식으로 사과가 변질되게 된다. 그러다 결국은 사과하는데 실패하고 사고에 대한 책임도 인정하지 않는 데까지 이르게 된다. 최악의 사과가 되는 것이다.
따라서 사과문을 잘 쓰기 위해서는 일단 자기 변호에 대한 생각은 머리 속에서 모두 지워야 한다. 그리고는 오직 자기가 무엇을 잘못했는지에 생각을 몰두해야 한다.
그렇다면 사과문에는 무엇을 반드시 담아야 할까.
첫째는, 자신의 행동이 왜 잘못되었는지를 본인이 확실하게 인지하고 있음을 써야 한다. 특히 상대방에게 자신이 어떤 행동을 했고 그 행동이 왜 잘못되었는지를 본인이 확실히 파악하고 있음을 분명하게 전달해야 한다.
둘째는, 그 행동이 피해자들에게 어떤 방향으로 나쁜 영향을 끼쳤는지를 적어야 한다. 두루뭉실하게 죄송하다고 해서는 안되고, 구체적으로 피해자는 누구이며 어떤 영향을 미쳤고 얼마나 피해를 받았는지 상세하게 적시해야 한다.
셋째는, 무조건적인 반성을 하고 있음을 알려야 한다. 조건을 다는 순간 사과가 변명으로 들릴 수 있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사과를 하면서 “누군가에게 상처를 줬다면” 또는 “누군가가 불편했다면” 하는 식의 조건을 단다면 피해를 받은 사람들에게 두 번 상처를 주는 결과가 될 수도 있다.
넷째는, 본인이 얼마나 많이 반성하고 있는지 상대방이 확실히 느낄 수 있도록 분명하게 사과문을 작성해야 한다. 단순히 “진심으로” 또는 “가슴 깊이” 라는 말을 쓰는 것보다는, 더 구체적으로 본인이 얼마나 많이 반성하고 있는지를 객관적 수치 등을 통해 구체적으로 알려줄 필요가 있다. (예를 들어, 24시간 비상근무, 피해 대표자와 12시간의 대화 등)
끝으로, 앞으로는 그러지 않겠다는 다짐을 담아야 한다. 다짐은 분명하고 구체적이어야 한다. 그리고 피해에 대한 구제책 혹은 대안이 있으면 앞으로 어떻게 할 것임을 분명히 밝히는 것이 좋다.
우리는 누구나 잘못을 한다. 하지만 그 뒷수습에 따라 잘못이 줄어들 수도 있고 오히려 늘어날 수도 있다. “말 한 마디가 천냥 빚을 갚는다”는 옛말이 괜히 있는 것이 아니다. 따라서 사과를 잘해야 한다. 제대로 된 사과를 통해 우리는 그 상황을 수습할 수 있을 뿐 아니라 오히려 반등의 기회로 삼을 수도 있기 때문이다.
사과문을 써야 하는 이들에게 이 글이 많은 참고가 되었으면 좋겠다.
끝으로, 잘 쓴 사과문으로 오랜기간 회자되고 있는 삼성전자 이재용 회장의 메르스 관련 대국민 사과문을 첨부한다.
여론조사의 홍수다. 하루가 멀다 하고 여론조사 결과가 공표된다. 대통령 국정지지도, 후보 적합도, 정당 지지도 등 종류도 많다. 내 생각만 따지던 시대에서 이제는 남의 생각이 더 중요한 시대로 변모하고 있는 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여론조사를 하는 이유는 간단하다. 모집단, 즉 정보를 얻고자 하는 대상, 의 숫자가 너무 많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전체 국민이 100명인 나라가 있다고 하자. 이럴 경우 굳이 표본을 추출하여 여론 조사를 할 필요가 없다. 직접 모집단 100명에게 의견을 물어보면 되기 때문이다.
하지만 세상에 그런 나라는 없다. 일반적인 경우 모집단이 어마어마하게 크다. 따라서 그들에게 일일이 의견을 물어보기에는 시간도 돈도 너무나 많이 든다. 결국 모집단이 아닌 적정 수의 표본 sample 을 뽑아 전체 의사를 예측하는 것이 가장 효율적인 선택이 된다.
이제 미국으로 가보자. 미국 선거여론조사의 역사는 그들의 민주주의 역사만큼이나 무척 오래되었다. 기록상으로는 1824년 대통령 선거가 그 시작이었다. 앤드류 잭슨 Andrew Jackson 과 존 애덤스 John Q. Adams 가 맞붙은 선거였는데, 노스캐롤라이나, 델라웨어 등 동부 연안 몇몇 주들을 중심으로 소규모로 실시되었다. 따라서 지역적 한계를 가지고 있었다.
그러던 1916년, 우드로 윌슨 Woodrow Wilson 과 에반스 휴즈 Evans Hughes 가 맞붙은 대통령 선거에서 드디어 처음으로 전국적인 선거여론조사가 실시되었다. 그리고 여기서 혜성처럼 한 주간지가 등장한다. 바로 The Literary Digest 다.
The Literary Digest 는 미국 역사상 처음으로 전 국민을 대상으로 대통령 선거여론조사를 실시하였다. 수백만 통의 설문조사 엽서를 사람들에게 보낸 후 회신된 답변을 카운팅하여 결과를 발표하였다. The Literary Digest 는 1916년 선거에서 우드로 윌슨이 대통령으로 당선될 것으로 예측하였고, 결과는 대성공이었다.
The Literary Digest 는 당시에 꽤 인기를 얻고 있었던 주간 신문이었다고 한다. 이 신문은 1890년에 이삭 펑크 Isaac K. Funk 라는 사람이 창간하였는데 1916년 선거여론조사 이후 더 큰 인기를 얻었다고 한다. 아마도 선거여론조사 결과예측 성공이 신문의 신뢰도를 높여주었기 때문으로 보인다. 실제로 1927년 주간지 발행부수가 100만 부를 넘었다고 하니 그 인기가 어마어마했을 것 같다.
The Literary Digest는 이후 4차례의 대통령 선거(1920 Warren Harding, 1924 Calvin Coolidge, 1928 Herbert Hoover, 1932 Franklin D. Roosevelt)에서 모두 당선자를 맞추는 신기를 보여주었다. 따라서 당대의 많은 사람들에게 선거여론조사는 곧 이 주간 신문을 생각할 정도였다고 한다. 그렇게 The Literary Digest 는 여론조사의 왕으로 근 20여 년을 군림하였다. 그리고 의기양양하게 1936년 선거를 맞이하게 된다.
1936년 대통령 선거는 민주당 소속의 현직 루즈벨트 Franklin D. Roosevelt 대통령과 공화당 소속의 랭던 Alfred Landon 이 맞붙은 선거였다. 지금 와서 생각해보면 FDR 로 불리며 미국인이 가장 존경하는 대통령 0순위로 꼽히는 루즈벨트가 압도적인 지지를 받고 있었을 것 같지만, 당시 선거 분위기는 그렇지 않았던 것으로 보인다. 따라서 사람들은 둘 중 누가 이길 것인가를 무척이나 궁금해했고, 당연히 The Literary Digest 가 그 답을 해줄 것으로 기대했다.
이러한 기대에 부응하듯 The Literary Digest 는 막대한 자금력을 동원하여 48개 주 1,000만 명을 대상으로 우편 여론조사를 실시하였다. 1,000명이 아니라 자그마치 10,000,000명이었다. 그들은 신문 구독자 리스트, 전화번호부, 그리고 자동차 등록부에 기초하여 1,000만 명의 표본을 추출하였고, 그들을 대상으로 설문지를 담은 우편을 발송하였다. 그리고 이에 약 227만 명이 설문을 작성하여 응답하였다. 그리고 선거를 3일 앞둔 1936년 10월 31일, The Literary Digest 는 본인들 신문 1면에 선거여론조사 결과를 공표하였다.
랭던 1,293,669 : 루즈벨트 972,897
The Literary Digest 는 57 : 43 으로 랭던의 승리를 예측하였다.
당시 The Literary Digest 신문 1면
그렇다면 결과는 어땠을까? 아시다시피 미국 역대 대통령 명단에 랭던은 없다. 다시 말해, The Literary Digest 는 결과 예측에 실패했다.
자신만만했던 The Literary Digest 의 선거여론조사 결과와 달리 랭던은 루즈벨트에게 완패를 당했다. 루즈벨트는 메인주와 버몬트주를 제외한 46개 주에서 모두 승리를 가져왔고 득표율은 62 : 38 로 압도적이었다. The Literary Digest 는 막대한 돈을 투자하여 무려 1000만 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실시하고도 결과 예측에 완벽히 실패하고 말았다.
기대가 크면 실망도 큰 법이었다. 많은 사람들은 The Literary Digest 에 대한 믿음을 접기 시작했고 결국에는 전체 신문이 신뢰를 잃어 결국 2년도 채 지나지 않은 1938년 신문은 폐간하게 되었다.
그렇다면 왜 The Literary Digest 는 예측에 실패했을까. 무려 1,000만명을 조사했는데도 말이다. 가장 큰 이유는 잘못된 표본추출 방식 sampling 에 있었다. 쉽게 말해, The Literary Digest 는 나이, 성별, 지역, 인종, 소득 등 모집단의 인구통계학적 특성을 전혀 고려하지 않은 채 단순히 신문 구독자 리스트, 전화번호부, 그리고 자동차 등록부에서 1,000만 명의 표본을 추출한 것이다.
그런데 잘 생각해보자. 때는 1936년이다. 대공황 the great depression 의 여파가 진하게 남아있을 때이다. 실업이 빈번한 그 때 편안히 신문을 구독해서 볼 수 있는 여유 있는 사람이 얼마나 되었겠는가. 아울러 그 시절에 개인 전화와 개인 자동차를 소유하는 이는 또 얼마나 되었겠는가. 결국 표본에 들어갈 수 있는 사람들은 평균 시민들보다 훨씬 소득이 많은 사람들 뿐이었고 따라서 모집단을 대표하지 못하는 편향된 biased 표본추출로 인해 잘못된 결과를 얻고 말았던 것이다.
결과적으로, The Literary Digest 는 공화당을 지지할 가능성이 높은 부자들만을 대상으로 여론조사를 실시한 꼴이 되었고, 당연히 부자들이 주로 지지하는 공화당 후보인 랭던에게 유리한 결과를 얻을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The Literary Digest 는 1936년 대통령 선거 예측 실패로 폐간되었다. 그렇다면 이후 선거여론조사는 종말을 맞았을까? 그랬다면 요즘 같은 때 선거여론조사 전화로 시달리지 않을 수도 있었겠지만, 우리가 여전히 하루 몇 통씩 걸려오는 여론조사전화를 받는 걸 보면 선거여론조사는 아직까지는 건재한 것 같다. 그렇다면 그 건재함을 이끌어낸 이는 누구였을까?
1936년 The Literary Digest 는 예측을 실패했지만, 같은 선거에 혜성같이 등장하여 루즈벨트의 당선을 예측한 이가 있었다. 그는 바로 죠지 갤럽 George Gallup 이었다.
바로 이 아저씨다
죠지 갤럽은 현재 여론조사의 대명사로 불리는 갤럽 Gallup 을 만든 장본인이다. 본인의 이름을 따 설립한 갤럽은 The Literary Digest 가 잘못 예측한 1936년 선거를 정확히 예측하면서 미국 내에서 큰 명성을 얻게 되었다. 사실 그는 The Literary Digest 가 뉴딜 정책으로 인해 루즈벨트 지지로 돌아선 저소득 유권자들을 표본에서 제외하고 있음을 미리 알고 있었다. 따라서 The Literary Digest 가 비참한 결론을 얻게 될 것임을 사전에 예견하고 있었다고 한다.
당시 갤럽은 겨우 5만 명을 대상으로 여론조사를 실시하였는데 루즈벨트가 56% 득표하여 승리할 것으로 예측하였다. 그리고 실제로 루즈벨트는 62%를 득표하여 승리하였다. 그러면서 선거여론조사의 제왕 자리는 The Literary Digest 에서 갤럽으로 이양되었다.
그렇다면 갤럽은 어떻게 적은 표본으로 결과를 정확하게 예측할 수 있었을까. 그에게는 할당표본추출 quota sampling 이라는 강력한 무기가 있었다. 즉, 설문대상을 인구구성비율에 맞도록 할당 quota 하여 표본을 추출한 것이다. 예를 들어, 전체 표본이 5만 명이라면, 2.5만 명은 남성, 2.5만 명은 여성에게 할당하는 방식이다. 추가로, 전체 남성 인구 중 60세 이상이 30%라면 7,500명은 60세 이상 남성에 할당하고 전체 남성 인구 중 20대가 20%라면 5,000명은 20대 남성에 할당하는 방식이다. 이렇게 나이, 성별, 지역, 인종, 소득 등을 세분화하여 할당한다면 전체 사회를 균형 있게 대표하는 표본을 얻을 수 있게 된다. 그리고 모집단에 대한 대표성은 자연스럽게 상승하게 된다.
갤럽은 이러한 과학적 표본추출을 통해 1936년 대통령 선거 결과를 성공적으로 예측할 수 있었다. 그리고 갤럽의 성공은 이후 여론조사 기술의 발전과 더불어 근대 과학적 여론조사 시대를 여는 출발점으로 자리 잡게 되었다.
그렇다면 갤럽의 과학적 여론조사 기법은 계속적으로 성공했을까. 갤럽은 1936년 대통령 선거 이후 말 그대로 승승장구했다. 정확한 예측으로 신뢰를 쌓아갔다. The Literary Digest 의 폐간으로 적수도 없었다. 미국 여론조사의 왕은 갤럽이었다. 따라서 1948년 트루먼 Harris S. Truman 과 듀이 Thomas E. Dewey 가 붙었던 대통령 선거에서도 사람들은 당연히 갤럽이 확실한 답을 해줄 것으로 기대했다.
당시 갤럽은 3,250명의 응답자를 할당표본추출 quota sampling 을 통해 선정해서 대면 인터뷰 in-person interview 를 진행하였다. 갤럽은 전문적인 인터뷰어를 고용하여 무응답으로 인한 오류를 최소화하는 등 정성을 다해 여론조사를 진행하였다. 그리고 수장인 죠지 갤럽이 직접 TV에 출현하여 선거여론조사 결과를 발표하기까지 했다.
TV에 나와 대통령 선거 여론조사 결과를 발표하는 죠지 갤럽의 모습
갤럽은 공화당 후보인 듀이가 승리할 것으로 예측했다. 그들은 듀이가 50 : 44 로 트루먼을 이길 것으로 판단했다. 당시 시카고 트리뷴 The Chicago Daily Tribune 은 개표가 완료되기도 전에 “듀이가 트루먼을 이겼다 DEWEY DEFEATS TRUMAN” 라는 확정적 헤드라인이 담긴 초판을 인쇄하여 판매하기도 하였다.
그렇다면 결과는 어땠을까. 모두 알다시피 세계 2차 대전을 승리로 이끌고 한국전쟁에 미군을 파병해 준 고마운 대통령의 이름은 듀이가 아닌 트루먼이었다. 갤럽은 틀렸다. 심지어 결과는 정반대였다. 50 : 45 로 트루먼의 승리였다. 라디오 코미디언 프레드 알렌 Fred Allen 은 “트루만이 갤럽에서 지고 실제로는 이긴 최초의 대통령”이라고 말하기도 했다.
마치 비웃듯이 시카고 트리뷴 신문을 들고 활짝 웃고 있는 트루먼 당선인
“듀이가 트루먼을 이겼다 DEWEY DEFEATS TRUMAN”라고 쓰인 시카고 트리뷴을 들고 활짝 웃고 있는 트루먼의 모습은 여전히 많은 미국인들에게 회자되는 장면이기도 하다. 사실 시카고 트리뷴은 2판에서 해당 헤드라인을 수정하였다. 하지만 트루먼은 초판을 가지고 있었기에 시카고 트리뷴에 한 방 먹일 수 있었다. 물론 이 장면은 시카고 트리뷴 기자들에게는 악몽 같은 장면이겠지만, 해당 카피는 150년 역사의 시카고 트리뷴 헤드라인 중 가장 유명한 것이 되고 말았다.
그렇다면 과학적 기법이라는 할당표본추출 quota sampling 을 사용한 갤럽은 왜 정반대의 결과를 얻게 되었을까. 나이, 성별, 지역, 인종, 소득 등을 할당하여 전체 사회를 균형 있게 대표하는 표본을 추출한다는 생각은 표면적으로 문제가 없어 보인다. 오히려 좋아 보인다. 하지만 깊숙이 들여다보면 두 가지 의문이 생긴다.
하나는 할당의 문제이다. 할당을 어떻게 할 것인가. 소득은 5,000불로 묶을 것인가 10,000불로 묶을 것인가. 나이대는 어떻게 할당할 것인가. 그렇게 정한 할당 기준이 전체 인구를 대표하는 결과를 가져올 것인가. 나이, 성별, 지역, 인종, 소득 외에 투표에 영향을 주는 다른 변수는 과연 없는가.
두 번째는, 선택의 문제이다. 갤럽은 할당된 그룹 안에서 인간이 직접 표본을 선택하는 방법을 택하였다. 따라서 무작위 표본추출 random sampling 이 아니라 인간의 선택이라는 인위적 개입이 존재하였다. 그리고 그것이 오류 bias 를 발생시킬 수 있는 토양이 되었다.
결론적으로 1948년 갤럽의 선거여론조사는 표본이 인간에 의해 확률적으로 추출되지 않았을 때 결과가 잘못될 수 있음을 보여준 중요 사례가 되었고, 이후 무작위표본추출 random sampling 이 업계표준으로 자리 잡는데 중요한 역할을 하였다.
보통 정치를 “가치의 권위적 배분”으로 정의한다(David Easton). 세상에는 많은 가치가 있다. 모두가 가치를 얻고 싶어한다. 따라서 가치를 “잘” 배분하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 그런데 누가 그것을 배분해야 하는가. 이에 우리는 선거를 통해 대표자(대통령, 국회의원 등)를 선출하고 그들로 하여금 가치를 권위적으로 “잘” 배분하도록 위임한다.
그런데 대표자가 어느 한 쪽에 치우치면 가치를 “잘” 배분하기 힘들어진다. 가령 백인이 대표자의 대부분을 차지한다면 흑인을 위한 가치 배분은 소홀해지기 쉽다. 특정 종족이 대표자의 대부분을 차지한다면 다른 종족들을 위한 가치 배분은 역시 쉽지 않을 것이다.
여성 또한 마찬가지이다. 대표자의 대부분을 남성이 차지한다면 여성을 위한 가치 배분은 녹록치 않을 것이다.
남녀 비율이 50:50 이라면 그 비율에 맞는 대표자를 선출해야 가치를 “잘” 배분하기에 용이할 것이다. 이를 정치학에서는 “대표성의 확보”라 한다.
– 그렇다면 현실은 어떨까.
역시 녹록치 않다. 제20대 총선에서 여성은 총 300명 중 51명이 당선되어 전체 17%이다. 국제의회연합(IPU)가 낸 통계에서 한국은 여성국회의원 수 세계 115위이다. 상당히 낮은 수치다. 물론 미국도 19.4%로 전체 99위이고 일본은 10.1%로 전체 157위이다. 정치적 성숙도보다는 정치 제도와 문화가 상당히 많은 영향을 주는 것으로 보인다.
그렇다 하더라도 국회의 여성 대표성이 낮다는 것을 부인하기는 어렵다. 이는 분명한 사실이다. 여성은 가치를 배분받는데 있어 불이익을 받을 가능성이 높은 것이다. 이에 많은 학자들이 여성의 정치참여를 높일 방안을 강구하고 있다.
– 정치참여를 높일 방법에는 어떤 것이 있을까.
대안으로 여성 공천 확대를 위한 정치관계법 개정, 여성 비례대표 비중을 높이기 위한 선거제도 개선, 정당의 여성할당제 적극 실천, 여성추천보조금 확대 등이 있을 것이다. <기사 참고> 모든 것이 다 제도와 예산의 문제로 귀결되기 때문에 당장 실행하기 어려운 문제점이 있다.
– 실행이 된다하더라도 위 대안들만으로는 근본적해결이 어려워 보인다. 왜 그럴까.
제시된 대안들이 모두 하향식 Top-Down 이기 때문이다. 사회가 자생적으로 발전하여 나온 결과물이 아니라 제도를 통해 이상점과 사회의 현실을 인위적으로 맞추려고 하고 있기 때문에 임시방편적으로 보인다.
물론 비뚤어진 운동장을 단숨에 평평한 운동장으로 만들기 어렵기 때문에 초기에 어느정도 인위적인 부양책이 필요한 것은 사실이다. 저러한 대안들이 마중물처럼 여성의 정치참여 증가를 이끌어낼 수도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지속성이 문제다. 선순환이 이루어진다면 더할 나위 없이 좋겠지만 현재와 같은 남성 중심 사회 현실에서는 오히려 현실과의 괴리만 증가시키는 결과를 낳을 가능성이 높다. 형식적인 대표성만 지니고 실질적인 대표 활동은 제약되는 것이다.
– 대표적인 사례가 있는가.
르완다가 그 예가 될 수 있다. 앞서 제시한 여성국회의원 수 전세계 1위는 르완다이다. 여성의원 비율 61.3%로 80명 중에 49명이 여성이다. 굉장히 높은 수치다. 아마도 여성의 사회적 지위도 높을 것으로 기대된다. 하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다.
이유는 단순하다. 하향식으로 만들어낸 제도이기 때문이다. 남녀 평등에 대한 요구는 수천명의 여성에 의해서가 아니라 한 남자에 의해서 이루어졌다. 바로 르완다 대학살 genocide 을 종식시킨 폴 카가메 Paul Kagame 대통령이다. 카가메 대통령은 2003년 새 헌법을 제정해 국회 여성의원 비율을 30%로 의무화하였다. 국가와 정부는 카가메의 정책을 잘 따랐다. 그가 군대를 통솔하는 강력한 대통령이기 때문이다.
카가메가 만약 새롭게 헌법을 개정해서 여성의무 비율을 없애버린다면 다음 선거에서 여성 국회의원 비율이 0%가 된다고 해도 그리 이상한 일이 아닐 것이다. (아마 여성들도 극렬하게 저항하지 않고 담담히 받아들일 수도 있어 보인다. 남성들이 그랬듯이)
–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할까.
투트랙 전략이 필요하다. 단기적으로는 하향식 정책이 효과적일 것이다. 하지만 그것은 임시적이다. 따라서 장기적인 전략인 상향식 정책 bottom-up 을 같이 진행해야 한다. 바로 사회적 참여이다.
미국의 “리벳공 로지 Rosie the Riveter” 가 그 예가 될 수 있다. 제2차 세계대전 동안 남성들은 대부분 전쟁에 참가했다. 따라서 군수물자를 생산하는 방위산업체에 어쩔 수 없이 여성이 들어가 일하게 되었다. 하지만 여성의 경제적, 사회적 참여가 늘어나자 이는 곧 정치적 참여로 연결되기 시작했다. 여성들이 정치 영역에서 목소리를 내기 시작한 것이다. (물론 전쟁의 종료와 더불어 방위산업체에 종사했던 여성들이 갑자기 직장을 떠나야 했던 점을 지적하는 반대의견도 존재한다)
J. Howard Miller’s “We Can Do It!” poster from 1943
여성이 사회적 참여 증가가 정치적 참여 증가로 이어진 다른 사례도 있다. 바로 북유럽이다.
노르웨이는 55%에 머물렀던 여성의 노동참여를 최근 70%대로 끌어올리면서 여성의 경제활동에도 적극적 지원을 하고 있다. 노르웨이를 비롯한 스웨덴, 핀란드, 덴마크 등 다른 북유럽 국가들도 기업의 여성 이사나 임원 비율 쿼터제를 운영하고 있다.
노르웨이 정부는 공적 영역에서 여성의 활동이 가능하려면 가정 내 여성의 역할이 변화해야 한다는 것을 이해하고 있었다. 노르웨이 정부는 1세부터 5세까지 유아를 돌보는 어린이집을 50년 사이 250곳에서 6000곳 이상으로 늘렸고 국가가 양육비 전액을 부담하고 있다. 이 결과 노르웨이에서는 90% 이상의 어린이는 이러한 시설에서 유아교육을 받고 있다. <기사 참고>
노르웨이 여성 국회의원은 70명으로 전체 169명 중 41.40%을 차지하고 있으며 전 세계 10위이다. (스웨덴은 43.6%로 5위를, 핀란드는 42%로 7위를 차지하고 있다)
물론 여성들의 사회참여가 먼저인지 정치참여가 먼저인지 분명하지 않을 수는 있다. 하지만 노르웨이의 경우 1970년 이후 여성 경제참여율이 폭발적으로 증가했고(당시 44%에서 현재 70%대로 증가), 1973년에 15.48%였던 여성 국회의원 비율이 약간의 시차를 두고 1985년 34.40%, 1993년 39.39%로 증가한 것을 보면 사회참여가 정치참여를 견인했다고 보는 것이 합리적일 듯 하다.
– 요약한다면.
여성의 낮은 정치참여는 분명 문제다. 가치의 배분에서 여성이 외면될 수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정치 영역에서의 여성 대표성 확보가 필요하다. 다만 제도와 예산으로 하는 하향식 방법만 추진하지 말고 장기적으로 사회참여를 늘리는 방법을 고려해야 한다. 미국과 노르웨이 사례를 참고할 필요가 있다.
4차 산업혁명 시대, 몇 가지 핵심 기술 중 하나가 빅데이터 big data 분석이다. 세상에 나와있는 여러 데이터들(온오프라인 모두)로부터 가치를 추출하고 결과를 분석하는 기술이다.
빅데이터 분석이 등장한지는 그리 오래되지 않았지만 정치, 경제, 사회, 문화, 기술 등 전 영역에 걸쳐 가치 있는 정보를 제공할 수 있는 가능성을 제시하며 그 중요성이 부각되고 있다. 선거에서의 지지율 분석, 광고 호감도 조사, 범죄 조사에서의 프로파일링, 야구의 세이버메트릭스 등등 여러 영역에서 이미 핵심 역할을 맡고 있기도 하다.
물론 분석 대상자(객체)의 입장에서는 분석을 당한다는 것이 그리 기분 좋은 일이 아닐 것이다. 주체와 (분석당하는) 객체가 분명하고, 객체가 주체에게 (본인이 원하지 않는) 유용한 정보를 제공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분석을 당하지 않기 위해 객체는 많은 노력을 기울일 것이다.
그럼에도 각종 (빅데이터를 포함한) 분석들이 객체의 의도와 달리 늘어나는 이유는 무엇일까? 아무리 막으려 해도 막지 못하고 분출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그것은 그러한 분석이 새로운 가치를 창출하기 때문이다. 정보를 가공하여 새로운 정보를 얻고 그것을 다른 영역에 활용하는 동안 여러 번의 가치 창출이 일어나게 되고, 1차 가공뿐만 아니라 2차, 3차에 이르는 많은 정보가 생겨나며 최종 활용에 이르게 되면 새로운 통찰력까지 얻게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여러 사례가 있지만 “소리“와 관련한 두 가지 특별한 사례가 있어 설명을 위해 첨부해본다.
제2차 세계대전 당시 BBC 뉴스는 나치 점령 하의 유럽에 방송을 내보냈다. 모든 뉴스 프로그램은 첫머리에 영국 국회의사당 시계탑의 시계 소리를 생방송으로 들려주었다. 이것은 자유를 상징하는 마법의 소리였다. 독일의 천재 물리학자들은 생방송에 나오는 딩동 소리의 톤이 날씨에 따라 미세한 차이가 난다는 점에 착안하여 이를 토대로 런던의 기상상황을 파악하는 방법을 알아냈다. 그 정보는 독일 공군에게 귀중한 도움이 되었다. 영국 정보부는 뒤늦게 이 사실을 알고 그 유명한 시계 소리를 녹음 방송으로 바꿨다.
<사피엔스, 500~501페이지>
독일 공군은 단순히 런던 날씨가 궁금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궁극적 목적은 소리라는 데이터를 분석하여 날씨라는 1차 데이터를 가공하고, 그것을 통해 공습 시점, 장소, 성공률 등 분석에 활용하기 위해서였을 것이다.
음성 분석 전문가인 충북도립대 조동욱(59·의료전자기기과) 교수는 지난 1월 1일 김정은 북한 노동당 위원장의 신년사 발표 음성을 분석해 김정은 위원장의 신장 기능이 좋지 않을 수 있다는 주장을 제기했다.
이번 연구는 심장은 혓소리(ㄴ·ㄷ·ㄹ·ㅋ), 폐는 잇소리(ㅅ·ㅈ·ㅊ), 신장은 입술소리(ㅁ·ㅂ·ㅍ)와 관련 있다는 한의학의 청진(聽診) 이론을 토대로 이뤄졌다. 신년사에서 해당 발음이 담긴 음원 10개씩을 끄집어내 분석해보니 입술소리의 음성 에너지(71.657㏈)가 혓소리(76.077㏈)나 잇소리(74.232㏈)에 비해 상대적으로 낮았다. 반면 발음의 정확도를 나타내는 주파수 변동률(%)과 진폭 변동률(㏈)은 입술소리가 가장 높았다. 목소리의 조화로움을 나타내는 NHR(noise to harmonics ratio·%)도 입술소리가 월등히 높게 측정됐다. 주파수 변동률과 진폭 변동률은 낮을수록 발음이 정확하다는 얘기다. NHR도 작을수록 잡음 없고 조화로운 목소리로 평가된다.
조 교수는 “입술소리의 음성 에너지가 낮고, 발음이 부정확하다는 것은 신장기능이 그만큼 약하다는 증거”라며 “일반적으로 체중이 급격히 불어나면 당뇨와 고혈압 등이 생기고, 이로 인해 신장기능은 나빠질 수 있다”라고 설명했다. 이어 “음성만으로 건강상태를 정확히 진단하기는 힘들지만, 그의 뚱뚱한 체형에 미뤄볼 때 신장기능에 문제가 생길 가능성이 높다”라고 덧붙였다.
<연합뉴스, 2018년 1월 8일>
김정은 위원장의 목소리 데이터를 분석하여 건강상태라는 1차 데이터를 가공했다. 이러한 데이터는 차후에 남북관계 등에 활용될 것이다.
우리는 정보의 홍수 속에 살고 있다. 온오프라인을 막론하고 주위에 다양한 데이터들이 떠다닌다. 분석을 통해 가공하고 활용하고 통찰력을 얻는 것이 역량의 핵심이 될 것이다. 이를 빅데이터 역량이라고 한다. 이를 키우려는 노력이 미래 준비에 우선순위를 차지해야 하지 않을까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