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로 5년째 철인3종 경기 완주다. 매 겨울마다 대회 참가 신청하고 6개월 정도 훈련하는 것이 어느새 루틴이 되었다.
1년 내내 체중조절하고 꾸준히 운동도 하다보면 내가 프로 운동선수인건 아닐까 헷갈릴 때도 있지만, 사실 그건 좀 오바고 좀 더 몸 관리에 신경쓴다 정도는 될 것 같다.
6:26:20
올해 기록이다. 작년보다 2분 35초 단축했는데 별 것 아닌 것 같아도 운동을 작년보다 더 하고 몸도 더 잘 만들었기에 가능한 일이다.
등록한 남자 40-44세 195명 중 127등이니 엄청 좋은 기록은 아니다. 그렇다고 나쁜 기록으로 보기도 어려운 것이 대회 도전을 결정하기에 허들이 만만치 않고 (소위 입구컷이 높다), 온갖 굇수(라고 쓰고 운동에 미친 넘이라고 읽는다)들이 넘쳐나는 곳에서 중간 언저리만 가도 그게 어딘가 싶다.
출전하여 수영, 자전거, 달리기를 하다보면 사점(死點)이 온다. 중학교 체육시간에 나왔던 용어인데 말그대로 죽을 것 같은 순간이다. 내 기준 대충 바다수영 300미터 지점, 자전거 70킬로미터 지점, 달리기 1킬로미터 지점에서 오는 것 같다.
“정말 못하겠다, 한계가 왔다”의 느낌보다는 그냥 “못해먹겠다, 더 이상 하기 싫다” 정도가 맞을 것 같다. 숨도 턱 막히고 근육통도 심해져서 진짜 딱 멈추고 그만두고 싶어지는 순간이다.
하지만 알다시피 거기서 멈추면 끝이다. 기록도 날라가고 완주의 꿈도 접어야 한다. 올 리셋인 것이다. 따라서 대회 나오기 위한 그동안의 고생과 지금 당장의 고통을 비교형량하여 더 할지 말지 결론을 내려야 한다. 뭐 당연히 결론은 하나다. 버텨야 한다. 방법이 없다. 그냥 버티는 것이다.
죽을 것 같아도 나 몰라 하는 생각으로 나아가는 것이다. 숨이 턱턱 막히고 허벅지가 터질 것 같아도 그냥 나아가는 것이다. 아무 생각 없이 1미터 2미터 짓쳐 나아가다보면 어느새 사점이 지나간다. 그리고 다시 몸과 마음에 평온이 찾아온다.
너무나 순식간에 일어나는 일이라 명확히 구분되지는 않지만 분명 그러한 변화가 몸과 마음에서 일어난다.
물론 그 지점에서 포기자가 많이 생긴다. 수영을 멈추고 구명보트에 오르거나, 자전거에서 내려 걷거나, 달리다가 걷다가 결국 그 자리에서 멈추는 것이다. 그렇게 되는 순간 게임은 종료된다. 더 나아갈 수 없게 되고 출발점으로 터덜터덜 다시 돌아가야 한다.
사실 인생에서도 버텨야 할 일이 많다. 주기적인 고난을 마주칠 때마다 인내심을 가지고 버텨야 하고, 어려운 미션에도 실패를 거듭하면서도 버텨야 한다. 한 번에 성공하는 경우는 있지만 매번 성공하는 경우는 없다. 그럴 때마다 다음 기회를 생각하며 버텨야 한다.
매년 철인3종을 준비하고 완주하면서 느끼는 점이 달라지는 듯 하다. 처음에는 체력적 훈련으로 접근했는데 5년이 지난 지금은 오히려 정신적 숙련에 더 가까운 듯 하다. “건강한 신체에 건전한 정신이 깃든다”와 같은 오랜 경구가 더 마음에 다가오는 것이다.
올해 상반기는 여러 복잡한 업무로 스트레스가 상당했는데 그 때마다 단단하게 버틸 수 있었던 것은 체력과 더불어 마음의 강건함이 있었기 때문으로 보인다. 말로만 버텨야지가 아니라 몸과 마음으로 묵묵히 그저 버틸 수 있게 된 것이다.
바다에서, 자전거 위에서, 도로에서 때마다 마주치는 사점(死點)을 극복하면서 그리고 스스로의 한계와 싸워내면서 버티고 버틴 몸과 마음의 힘이 어느새 강해져 여러 장애를 극복하는 인생의 근육이 된 느낌이다.
대회 후유증으로 팔, 다리, 목, 어깨는 시커멓게 타서 살갛이 벗겨지고 있고 근육통도 여전하지만 아마도 다음주 저녁부터는 또 수영장에 가고 자전거를 타고 러닝을 시작하게 될 것 같다. 겨울에는 다시 대회 등록을 하고 내년 여름에는 또 땡볕에서 새까맣게 뛰고 있을 것이다.
책의 회독수가 늘어날수록 책을 더 잘 이해할 수 있듯이, 철인3종 완주 횟수의 증가도 인생에서 같은 의미가 되지 않을까 생각하면서 말이다.
2021년부터 4년 연속 철인3종 대회에 출전하고 있다. 첫 해는 미국 시카고에서, 두 번째 해는 미국 미시간에서, 작년에는 한국 고성에서 완주했다. 올해는 작년에 이어 한국 고성에서 한 번 더 출전했다.
대회가 가까워 오면 몸관리를 해야 한다. 체중도 조금 줄이고 술이나 탄산, 카페인도 멀리하면서 대회에 적당한 몸을 만든다. 그러다 보면 술 때문이든 음식 때문이든 주위 사람들에게 대회출전을 말해야 하는 상황이 만들어지기도 한다. (원래는 개인적인 일 주변에 말 안 하는 성격이다) 그때마다 사람들의 반응은 매 한 가지다.
“힘들 텐데 그거 왜 하세요?”
도대체 왜 바다수영 1.9km, 자전거 90km, 달리기 21km를 하냐는 거다. 무슨 목적으로 혹은 무슨 이유로?
물론 내 답은 정해져 있다.
“지금 몸매랑 체력을 유지하는 게 좋아서요.”
선문답 같지만 진심이다. 그러면 상대방은 더 이해 안 간다는 표정이다. “그건 다른 방법으로도 가능할 텐데.. 꼭 그렇게까지 극한으로 해야만…” 같은 이야기가 하고 싶을 것이다. 하지만 그쯤 되면 이미 화제는 다른 곳으로 향한다. 당사자가 자발적으로 고생하겠다는데 뭐 다른 이야기가 필요할까.
사실 지난 4년 동안 체력이 철인3종 도전 전에 비해 월등하게 좋아졌다. 근력은 물론 기본체력도 눈에 띄게 좋아졌다. 점심에 5km/30분 러닝 뛰고 당일 저녁에 2km/50분 수영하는 건 일주일에 몇 번씩 하는 일이고, 주말에는 45km/1시간 40분 자전거 타고 와서 바로 10km/1시간 러닝 뛰는 것도 어렵지 않게 한다.
거기에 몸매도 4년째 거의 그대로다. 원래도 살찐 체형은 아니었지만 철인3종에 도전하고나서 3-4킬로 빠지더니 그대로 쭉 유지되고 있다. 잔근육이 많아져 더 날씬한 체형이 되어 자존감(!)이 높아진 것도 사실이다. 옷을 입을 때마다 기분이 좋으니 이걸 포기하고 예전으로 되돌아가기 싫어진다.
이렇게 준비하는 과정에서 만족감이 크다 보니 실제 대회는 약간 보너스처럼 느껴진다. 선두권에 진입해서 입상할 실력도 안되고 그저 참가해서 안전하게 완주하면 된다는 느낌이라 말 그대로 보너스인 것이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대회를 설렁설렁 대충 하는 것은 아니다. 대회라는 명분이 유지되는 한 최선을 다해야 한다.
아이언맨 대회에 이번이 세 번째지만 지난 대회까지 7시간 벽을 깨지 못했다. 재작년 기록이 07:20:16였고, 작년 기록이 07:03:34였다. 올해는 7시간을 깨고 6시간대로 들어가 보자는 생각으로 훈련에 매진하였다. 트랜지션 구역에서 빠르게 전환하는 훈련을 하고 자전거에서 달리기로 전환하는 훈련도 많이 했다.
작년 대비해서 고작 3분 34초 줄이는 거 뭐 어렵겠어할지 모르지만 땡볕 아래에서 7시간 남짓 도로 위에 있다 보면 몸이 생각을 따라가기 힘든 상황이 된다. 천근만근 몸을 이끌고 조금 더 빠르게 해 보자는 외침은 그야말로 고요 속에 외침에 그치게 된다. 결국 여러 훈련을 통해 몸이 그 상황에 적응할 수 있도록 노력했다.
철인3종 준비는 평상시가 중요하다. 늘 운동을 게을리하지 않아야 하고 체중과 체력도 일정하게 유지해야 한다. 그렇게 일 년을 관리하고 노력하다 보면 어느새 완주할 몸이 완성되게 된다. 매년 느끼지만 대회 일주일 전에 샤워 후 맨몸을 보면 철인3종을 할 수 있는지 없는지가 바로 느껴진다. 준비가 전부가 된다.
대회 일주일 전부터는 휴식을 취하게 되는데 개인적으로는 이 시간이 매번 힘들게 느껴진다. 매일 같이 하던 러닝과 수영을 쉬는 것이 불편하고 어색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운동 없이 평소같이 먹으면 막 살이 찔 것 같은 불안감에 마음도 편치 않다. 차라리 운동 빡시게 하고 와인이나 막걸리 먹는 삶이 오히려 마음이 편하다.
4년째라고는 하나 긴장되기는 처음처럼 매한가지다. 전날에 등록하면서 가슴이 떨려오고 출발선 앞에서 또 심장이 두근두근 댄다. 달리는 내내 죽을 것 같고 피니쉬 라인 통과하면 행복이 찾아온다. 어쩌면 긴장과 행복 그 사이의 오만 감정을 느끼기 위해 매번 대회에 참가하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대회 전 날, 아내와 아이 둘을 데리고 경남 고성에 도착했다. 토요일 낮시간 대회장인 당항포에는 철인들과 그 가족들로 가득했다. 저마다의 포부를 가진 철인들은 웃기도 하고 긴장하기도 하면서 대회를 즐기는 듯했다. 그 사이 우리 가족도 함께 했다.
대회 등록과 자전거 검차를 마치고 숙소로 들어왔다. 통영바다가 보이는 좋은 숙소였지만 저녁을 먹고 TV를 조금 보다가 이른 잠에 들었다. 내일 새벽 4:30 알람이 울리면 간단히 세수를 하고 닭죽을 먹고 대회장으로 가야만 했다. 내일 아침 바람이 덜 불기를 바라며 잠에 들었다.
알람 전에 잠에서 깼다. 4:09이었다. 세수를 하고 미리 사놓은 닭죽을 전자레인지에 넣고 2분을 돌렸다. 침구류를 정리하고 철인경기복으로 환복 했다. 닭죽을 꺼내 한 그릇 뚝딱 비운 후 이빨을 닦는다. 그 사이 아내와 아이들이 일어났다. 차를 타고 경기장으로 향한다.
날은 벌써 밝아서 주변이 환하다. 아이들이 작년보다 좀 더 커서인지 새벽시간에 안 자고 쫑알쫑알 이야기를 한다. 그 이야기들에 대꾸하면서 가다 보니 벌써 대회장에 다다랐다. 도로는 주차장에 들어가려는 차들로 북적인다. 나만 내린다. 트렁크에 있는 짐을 가득 맨 채 나는 경기장으로 가고 아이들과 아내는 다시 숙소로 간다.
트랜지션 구역으로 가서 자전거 상태를 확인하고 웻슈트로 환복을 한다. 바람이 잦아들어서 바다는 호수처럼 평온하다. 바다 수영하기 딱 좋은 날씨다. 에너지젤과 이온음료를 섭취한 후 수모와 수경을 손에 쥔 채로 수영대기줄로 향한다. 6:40 드디어 첫 조부터 수영이 출발한다.
핑크 수모를 쓴 나는 맨 마지막 조다. 매번 하는 거지만 바다수영은 들어가기 전이 엄청 떨린다. 과연 잘할 수 있을까 걱정이 앞선다. 그래도 4년 차라고 작년보다 긴장감이 확실히 줄었다. 천천히 입수를 시작하여 한 팔 한 팔 내젓기 시작하면 매일 하던 수영장 수영과 다름없어진다. 역시 꾸준한 훈련이 완벽을 만든다.
50분가량 수영을 마치면 뭍에 발이 닿는다. 담수로 대충 씻어내고 트랜지션 구역으로 향한다. 자전거를 탈 차례다. 천 사백대 가량의 자전거 사이로 달려 들어가 내 자전거를 찾아낸다. 웻슈트를 벗고 양말과 사이클슈즈를 신은 뒤 자전거를 꺼내 트랜지션 구역을 벗어나 달리기 시작한다.
고성의 자전거 코스는 쉽지 않다. 오르막과 내리막이 꾸준히 이어진다. 땡볕과 높은 기온에 연신 땀을 흘리며 자전거를 탄다. 이온음료와 물, 에너지젤로 버티면서 꾸준히 자전거를 탄다. 90킬로를 3시간 20분가량 달리고 나면 육지에 발을 대고 자전거에서 내릴 수 있다. 이제 달리기를 할 차례가 되었다.
근전환 운동을 꾸준히 한 덕분인지 자전거 후에 달리기가 그리 어렵지 않았다. 물론 아버지, 어머니 포함 가족들이 열심히 응원해 주었기 때문에 더 힘이 났을 것이다. 3바퀴 도는 코스에서 2바퀴 중간에 양쪽 허벅지에 상당히 큰 쥐가 올라왔지만 그냥 무시하고 뛰면서 근육을 달랬다. 원래 철인 러닝은 다 참고 뛰는 거다.
러닝 21킬로를 지나면서 결승선이 앞에 보이기 시작했다. 레드카펫 옆에 아이들을 포함한 가족들이 서있었고 나는 포효하면서 결승선을 통과할 수 있었다. 지난 1년간 힘들었던 훈련들이 주마등처럼 스쳐 지나갔다. 그 과정이 오늘의 내 몸과 체력을 만들었다는 사실에 감격했고 행복했다.
지난주 일요일(2023. 6. 18.) “아이언맨 70.3 고성”에 참가했다. 생애 세 번째 철인3종 경기 출전이었다.
참고로, 철인3종은 올림픽 코스와 70.3마일 코스(Half), 140.6마일 코스(Full)로 나뉜다. 올림픽 코스는 32마일 정도인데 일반적으로 우리가 철인3종 하면 이것을 말한다. 이와 별개로 세계 Ironman 협회는 매년 170여 개 이상의 Ironman 70.3, Full Ironman 행사를 전 세계에서 진행하고 있으며, 한국에서는 고성에서 70.3 코스를, 구례에서 Full 코스를 진행하고 있다. 70.3 Ironman 을 기준으로 할 때, 전체 거리를 킬로미터로 환산하면 113.1km 이고, 구체적으로는 수영 1.9km, 자전거 90.1km, 달리기 21.1km 가 된다.
처음의 기억은 언제나 강렬하다. 나름 오랜 기간 준비했고 훈련했다. 너무 떨려서 당일날 좀 헤매기는 했지만 무사히 완주할 수 있었다. 당시는 올림픽코스(수영 1.5km, 자전거 40km, 달리기 10km)였는데 하는 내내 체력적으로 크게 힘들지 않았고 결승선을 통과하고 나서도 힘이 남아 있었다. 해보니 할 만했다. 그때 나이 만 39세였다.
철인3종을 준비하는 동안 체중과 근육을 관리하다 보니 건강상태가 매우 좋아짐을 느꼈다. 작년에 만 40세가 된 나는, 불혹(不惑), 즉 세상사에 미혹되지 않는 나이에는 도달하였지만 신체적 능력치가 점점 떨어지는 것까지는 막지 못하는 나이가 되었다. 그래서 매년 한 번씩 몸을 만들어 철인3종 대회에 나가면 어떨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다음 해인 2022년, 기왕 하는 거 조금 더 긴 아이언맨 70.3 에 도전하기로 결심했다. 석사 졸업 후 귀국국 전에 할 수 있는 대회를 찾아보았고 다행히 집에서 멀지 않은 곳인 미국 미시간주에 위치한 Benton Harbor 에서 열리는 Ironman 70.3 Steelhead 를 발견하게 되었다. (자세한 내용은 63. IRONMAN 70.3 Steelhead (brunch.co.kr) 참고)
거리가 전년에 비해 2배 이상 늘어난 만큼(수영 1.9km, 자전거 90.1km, 달리기 21.1km) 더 철저하게 준비했고 꽤 오랜 기간 훈련했다. 다만 날씨가 도와주지 않았다. 미시간호수가 원래 파도가 좀 치기는 했지만 그날은 좀 심하게 쳤다. 영어로 하면 choppy 했다. 파도를 뚫고 힘겹게 수영을 했는데, 이게 지금까지 수영 트라우마로 남아있어 이번 대회에서도 좀 걱정되는 부분이었다. 암튼 긴 시간 힘들었고 막판에 허벅지에 쥐도 올라왔지만 무사히 완주할 수 있었다. 결승선에 도착해서 가족들을 보니 피로가 다 풀리는 듯했다. Benton Harbor에서 미국집까지 차로 2시간 좀 넘게 걸리는데 그날 경기 끝나고 내가 운전해서 왔으니 체력이 완전 방전상태는 아니었던 것 같다.
작년 만 40세 첫 철인3종 경기의 출발이 좋았다. 준비기간 동안 열심히 훈련하다 보니 체력도 좋아졌고 몸도 가벼워졌다. 철인3종은 언제나 배신하지 않고 건강한 신체를 선물해 주었다. 과정은 힘들었지만 결과는 언제나 좋았다. 아내에게 40대 내내 매년 한 번씩 대회를 준비하면 건강을 유지할 수 있을 것 같다고 말했다. 고맙게도 아내도 동의해 주었다.
우리 가족은 2년간의 미국생활을 무사히 마치고 2022년 8월 한국에 돌아왔다. 그리고 바쁘게 사는 사이 수영 한 번, 자전거 한 번 못 타고 연말이 다가왔다. 나는 몸이 다시 무거워짐을 느꼈고 내년 철인3종 경기에 나가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만 41세에도 나와의 약속을 지켜야겠지, 하는 생각이었다. 검색해 보니 2023년 6월에 경남 고성에서 Ironman 70.3 대회가 개최예정이었다.
그렇게 나는 연말에 얼리버드(299달러 + 10% fee)로 고성 대회 등록을 하였다. 2022년 12월 27일이었고, 대회일인 2023년 6월 18일까지 173일 남은 시점이었다.
2. 훈련 訓鍊
참가신청을 했으니 본격적으로 훈련을 해야 했다. 하지만 한겨울에 할 수 있는 훈련은 많지 않았다. 수영은 실내에서 하니 가능했지만 자전거와 러닝은 만만치 않았다. 그래서 일단 수영부터 시작했다. 수영은 회사 근처 대전 올림픽기념 국민생활관에서 할 수 있었다. 새벽에 일찍 일어나는 날에는 7시에 자유수영하러 갔고 안되면 저녁 퇴근 후에 가서 수영을 했다. 25미터 레인이었지만 시설이 깔끔하고 사람이 많지 않아 훈련하기에는 안성맞춤이었다.
한국 귀국하고 정리하느라 한참 운동을 쉬었던 터라 새로 몸을 만드는 것이 쉽지 않았다. 특히 수영은 관련 근육이 많이 빠져서 더더욱 힘들었다. 수영 첫 주에는 겨드랑이와 목에 근육통이 왔다. 그래도 차근차근해보자는 생각으로 서두르지 않았고 매주 거리를 늘려갔다. 그러다보니 어느 순간 1,900미터를 쉬지 않고 40~50분 사이에 왕복할 정도가 되었다. 다행이었다.
러닝은 대전집 근처 탄방동 보라매공원(그 옛날 대전 군공항 부지)에서 연습할 수 있었다. 올해 1월은 너무 추워 사실 뛸 엄두가 나지 않았다. 그래도 뛰는 훈련을 해야만 했기에 영하 10도 보다 추우면 뛰지 말고 영하 10도 보다 따뜻하면 뛰자, 라는 나름 강력한 기준을 가지고 러닝 훈련을 했다. 말이 영하 10도지 한 번은 영하 9도에 나가 뛰다가 얼굴 다 터질 뻔하기도 했다. 암튼 추운날에도 히트텍 안에 입고 꽁꽁 싸매고 나가 열심히 뛰었다. 주말에 집에 올라오면 아파트 단지 내에서 열심히 뛰었다.
겨울이 지나고 봄이 되자 자전거 훈련에 돌입했다. 105급 로드바이크를 구해 근처 자전거도로를 달리기 시작했다. 대전이 자전거 도시로 홍보하는 것에 비해 도로상태가 썩 좋지는 않았지만 그래도 꽤 긴 거리 연결해 놓아서 연습하기는 괜찮았다. 탄방동에서 맹꽁이서식지까지 다녀오면 왕복 30km, 대청댐까지는 왕복 40km여서 연습하기에 적당했다.
초봄에는 해가 짧아 멀리까지 갈 수 없었고 해가 점점 길어지면서 거리를 늘릴 수 있었다. 다만 날이 더워지자 천변에 날파리가 출몰하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마스크 없이 탔는데 입 벌리면은 날파리가 그대로 입 속으로 들어와 단백질이 보충되는 기적을 맛볼 수 있었다. 하지만 바로 마스크를 구입하고 곤충 단백질 보충 없이 열심히 훈련했다.
그렇게 시간이 흘러 3월 중순 즈음이 되자 D-100 일이 되었다. 그리고 수영, 자전거, 러닝 모두 작년 수준까지 올라오기 시작했다.
솔직히 완주가 목표였지만, 조금 욕심을 내자면 작년 기록인 7:20:16 보다 빨리 들어오고 싶었고 좀 더 욕심을 내자면 7시간 안에 피니시라인을 통과하고 싶었다. 그래서 100일 이후로는 체중 감량과 동시에 운동량을 좀 더 늘리기 시작했다. 물론 쉽지 않았다. 회사를 다니면서 운동을 해야 했기에 시간이 많지 않았고, 더군다나 주말부부였기에 주말에는 시간 내기가 쉽지 않았다. 결과적으로 작년에 비해 운동량을 많이 늘리지는 못했지만, 감량에는 어느 정도 성공하여 가벼운 몸으로 대회에 나갈 수 있게 되었다.
그렇게 순조롭게 대회를 준비하고 있던 어느 날, 서울로 올라가서 일을 해야 하는 변수가 생겼다. 대회 2주 전이었다. 대전에서 사용하던 수영장, 자전거길, 러닝장소를 모두 포기하고 새로운 곳을 빨리 구해야만 했다. 어쩔 수 없이 자전거 등 철인3종 준비물을 몽땅 자가용에 실은 채 서울로 올라왔다.
수영장은 성남종합운동장 수영장으로 선택했다. 50미터 레인에 시설이 잘되어있어 마무리 훈련하기 딱 좋았다. 자전거는 탄천을 통해 한강, 하남으로 연결되는 자전거길을 탔다. 집에서 하남 경계까지 왕복 45km 이었고 하남 넘어가는 경계에 높은 언덕도 있어 업힐 연습하기에 적격이었다. 러닝은 아파트 내 산책로를 그대로 이용했다.
대회 4일 전인 수요일에 1.9km 자유수영을 마지막으로 공식 훈련을 끝냈다. 그리고 이후 대회까지는 아무런 훈련도 하지 않았다. 숨쉬기만 하면서 그동안 지친 근육들에 휴식을 주었다. 감기 조심하느라 마스크도 쓰고 다니고 무리한 움직임도 하지 않았다. 프로 운동선수는 아니었지만 그간 훈련한 게 아까워서라도 꼭 좋은 컨디션으로 대회장에 가고 싶었다.그렇게 마지막 2주를 새로운 장소에서 보냈다.
3. 당도 當到
전날 짐을 쭉 펴놓고 정리했다. 빠진 것 없는지 확인을 위해서였지만, 재작년부터 이어온 전통이기도 했다. 슈트와 물안경 외에는 3년간 크게 바뀐 것이 없었다. 러닝화를 새로 사서 신을까 하다 첫 철인3종을 함께한 물건이어서 올해까지는 함께 하고 싶어 바꾸지 않았다. 헬맷도 모자도 클릿슈즈, 운동복 모두 시카고, 미시간을 거쳐 여기까지 온 물건들이었다. 하나하나 소중하고 고마운 것들이었다. 얘들아, 이번에도 잘 부탁한다.
D-1, 토요일 낮 경남 고성 대회장에 도착했다. 해가 쨍한 화창한 날씨였지만 기온이 높아 가만있어도 땀이 줄줄 흐를 정도였다. 주차를 하고 등록을 위해 공룡의 문 쪽으로 걸어갔다. 얼마 지나지 않아 커다란 판넬이 나왔다. 참가자 명단이었다. Anything is Possible, 이라고 써진 빨간 글씨 밑으로 깨알 같이 사람들 이름이 쓰여 있었다. 내 이름도 거기에 있었다.
등록하고 사전 수영점검 하러 가야 해서 마음이 급한데, 아들 딸은 공룡 삼매경이었다. 대회장은 고성 회화면 당항포관광지에 위치하고 있는데, 이곳이 공룡엑스포 개최 장소여서 여기저기 공룡 관련 놀이시설이 많았다. 아빠가 뭐 하러 온 지도 정확히 모르는 아이들은 그저 공룡 보러 가자고 난리였다.
보채는 두 아이를 아내에게 맡기고 혼자 등록장으로 이동했다. 등록장은 사람들로 인산인해였다. 신분증을 제시하니 기록칩과 기어백 등을 멋진 기념백에 담아주었다. 이제 시작이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2시부터 시작하는 사전 물적응 훈련을 위해 바꿈터 쪽으로 이동했다. 슈트 입고 벗고 밤에 말리고 하기 귀찮았지만, 바다수영이 난생처음이어서 적응할 필요가 있었기에 하기로 결정했다.
화장실에 낑낑대며 슈트를 갈아입고는 30도가 넘는 무더위 땡볕에 남해 바다에 들어갔다. 입수하는 순간 첫 느낌은, 물이 따뜻하다는 것이었고 다음 느낌은 물이 짜다는 것이었다. 작년까지 미시간 호수는 담수여서 짜지도 않고 나와서 털기만 해도 찝찝하지 않았는데 바다는 다르겠구나 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날은 바람이 좀 불어서 파도도 꽤 있었다. 스트로크를 막 시작하는데 몸이 파도에 떠밀려 두둥실 날아가는 것이 느껴졌다. 순간 아 이거 큰일인데, 하는 걱정이 밀려왔다. 작년 미시간 대회가 생각났다. 거센 파도와 싸우며 어렵게 수영한 기억이 트라우마처럼 남아있었다.
200미터 사전 물적응 훈련을 마치고 물 밖에 나오는데 온몸에 피로가 몰려왔다. 기상예보상 내일 아침에는 바람이 잦아들거라 했지만 이미 마음은 수영 걱정으로 불안해졌다. 슈트를 벗고 아내와 아이들 있는 곳으로 갔다. 무더운 날씨에 아이들은 온몸이 땀에 젖어 있었다.
차를 타고 숙소로 향했다. 마음은 여전히 수영 걱정으로 무거웠다. 저녁을 먹고 기어백을 챙긴 후 일찍 자리에 누웠다. 하지만 파도에 몸이 실리던 느낌이 계속 나서 마음이 편치 않았다. 10시에 누웠지만 기상시간인 새벽 4시 30분까지 자다 깨다를 반복 했다. 내가 과연 해낼 수 있을까, 부모님도 오신다는데 결승선을 웃으며 통과할 수 있을까? 방이 덥지는 않았지만 밤새 땀을 많이 흘렸다. 마인드컨트롤이 필요했다.
4. 실전 實戰
4:30, 정확히 알람이 울렸다. 잠을 거의 못 이룬 상태였지만 저절로 눈이 떠졌다. 날씨 어플을 켜서 바람을 보니 예보대로 잦아들어 있었다. 다행이었다.
미리 사둔 간편식 닭죽으로 간단히 아침을 먹었다. 아이들은 자고 있었다. 아이들을 둘러업고 차에 태워 대회장으로 향했다. 새벽이라 하지만 이미 날은 밝은 상태였다. 30분 동안 아내와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면서 대회장으로 향했다. 주차장에 도착했고 나는 기어백 3개를 둘러메고 깨어있던 아들과 자는 딸, 아내와 인사를 나누고 대회장으로 향했다.
대회장은 참가자들로 가득했다. 준비물 정리하는 소리, 자전거 바람 넣는 소리, 슈트 갈아입는 소리가 주위를 빈틈없이 메우고 있었다. 그 소리 사이로 들어가 준비를 하기 시작했다. 러닝과 자전거 짐을 정리한 후 슈트를 입고 준비운동하는 곳으로 갔다.
흥겨운 음악이 나왔고 다 같이 모여 준비운동을 했다. 이후 내빈을 소개했다. 고성군수도 나오고 철인3종 협회장도 나오고 가수 션도 나왔다. 션? 션이 오는지 몰랐는데, 아마도 단골손님인 듯했다. 슈트를 반쯤 입고 무대에 오른 션은, 저 고성 다시 왔습니다 파이팅 합시다,라는 짧은 인사말을 했고 사람들은 크게 호응했다.
6:40이 되자 모두가 출발선에 도열했다. 롤링스타트 방식으로 진행되었는데 5초마다 5명씩 출발하는 방식이었다. 삑 소리와 함께 첫 그룹이 바닷물에 들어갔다. 이후 5초마다 삑 소리가 울렸고 5명씩 계속 입수를 했다.
한 오분쯤 지났을까, 내 차례를 기다리고 있는데 갑자기 누가 내 이름을 불렀다. 아내와 아이들은 모두 숙소로 돌아갔고, 날 부를 사람이 없는데 하면서 고개를 돌리니 그곳에 아버지와 어머니가 서 계셨다. 오신다고는 하셨지만 이 새벽에 여기에 오실지는 꿈에도 몰랐었다. 특별한 말 없이 손을 흔들어주셨고 나도 그에 응답하여 손을 흔들었다. 새벽에 와주신 부모님이 고마웠고 힘이 되었다.
나중에 아버지가 찍은 동영상을 보니 당시 나는 얼굴이 하얗게 질려 긴장된 상태로 사람들 사이에 서 있었다. 바람이 불지 않아 바다는 호수처럼 잔잔했지만 물 속이 어떨지 예상할 수 없었기에 몸과 마음 모두 긴장된 상태였다. 그런데 부모님 덕분인지 마음이 좀 차분해졌고, 여기까지 온 이상 끝까지 간다, 라는 굳은 결심이 서기 시작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내 차례가 되었다. 이윽고 삑 소리가 났고 그대로 물에 첨벙 뛰어들었다. 다행히 물속은 고요했다. 나는 바로 호흡을 잡고 스트로크를 하기 시작했다. 어제와 달리 파도가 치지 않아 마치 수영장에서 수영하는 것처럼 편안하게 느껴졌다. 중간중간 앞뒤옆 사람들과 크고 작은 몸싸움이 있었지만 그래도 무리 없이 안정적으로 전진해 나갈 수 있었다.
부표는 100미터마다 1개씩 있었다. 쉬지 않고 스트로크를 하다 보니 어느새 마지막인 18번째 부표를 지나게 되었다. 고개를 살짝 들어보니 전방에 종료지점이 보였다. 그 순간 아 이제 수영 끝이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마지막 100미터 스퍼트를 했다. 점점 물이 낮아졌고 나는 마침내 땅에 발을 디딜 수 있게 되었다.
시계를 보니 54분이었다. 연습 때보다는 느렸지만 처음 한 바다수영치고는 좋은 기록이었다. 이게 다 잔잔한 바다 덕분이었다. 하늘에 감사했다. 슈트 상의를 벗으며 뛰어나가 민물에 간단히 얼굴과 몸을 씻은 후 바꿈터를 향해 뛰어갔다. 자전거를 탈 시간이었다.
바꿈터는 이미 많은 자전거가 빠져나가 있었다. 수영하고 나온 몇몇 사람들 틈에서 나는 슈트를 벗었다. 수건으로 발을 간단히 닦은 후 양말을 신고 클릿슈즈를 신었다. 짠 바닷물 때문인지 목이 말라 게토레이 반 병을 원샷했다. 에너지젤을 하나 먹으며 자전거를 거치대에서 내렸다. 이제 90km, 자전거를 타야 했다.
자전거 도로의 풍경은 작년 재작년과는 크게 달랐다. 작년은 미시간주 미국 시골 풍경이었고 재작년은 시카고 시내 풍경이었다면 올해는 경남 고성군의 농어촌 풍경이었다. 물론 나에게 친근하고 편한 건 한국 농어촌의 풍경이었다. 한쪽은 푸른 바다가 있었고 다른 한쪽은 초록 논밭이 있었다. 한국에서만 볼 수 있는 아름다운 풍경이었다. 이 풍경은 자전거 타는 내내 나에게 힘이 되어주었다.
하지만 풍경이 3시간 넘는 라이딩을 모두 책임져 줄 수는 없었다. 가끔 풍경을 보며 페달을 돌리기는 했으나 대부분은 전방을 주시하면서 달렸다. 10km, 20km 는 후딱 지나갔는데, 30km, 45km 넘어가면서 허리와 허벅지에 피로가 누적되어 시간이 더디게 가기 시작했다. 하지만 힘들어도 멈출 수는 없었다. 페달은 어쩔 수 없이 계속 굴러만 갔다.
미국 자전거 길과 한국 자전거 길의 차이는 한국이 압도적으로 고개가 많다는 것이었다. 한 고개 넘으면 또 한 고개, 그러다 높은 언덕, 그리고 또 고개. 쉴 새 없이 나오는 고개에 기어를 바꾸며 대응해 봤지만 피로도는 높아질 수밖에 없었다.
그러다 60km 를 넘어가니 이제 많이 왔다는 안도감이 들었고 70km 가 되는 순간 좀만 더 버티자는 생각이 들었다. 가끔 동네 어귀 오두막에 둘러앉은 할머니, 할아버지들이 파이팅을 외쳐주기도 했다. 손주뻘되는 젊은이들이 땀 뻘뻘 흘리며 자전거를 타고 있으니 안쓰러워서 그랬던 것 같다. 암튼 그 모습에 감동받아 또 페달을 굴렸다. 이것 또한 한국만의 특징이기도 했다.
80km 넘어가자 이제 다왔다 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출발했을 때 보았던 점점 익숙한 풍경들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남은 거리가 5km, 4km, 3km 줄어들수록 이제 땅에 발을 딛고 설 수 있겠다는 생각에 가슴이 두근거리기 시작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바꿈터가 눈에 들어왔고 나는 3시간 30분 만에 자전거에서 내려올 수 있었다. 이제 러닝만이 남았다.
다시 바꿈터로 돌아왔다. 땡볕에 수고한 자전거를 거치하고 클릿슈즈를 벗고 러닝화로 갈아 신었다. 땀에 젖은 티셔츠도 갈아입었다. 게토레이 또 한 병을 원샷하고 에너지젤을 하나 먹은 후 다시 뛰기 시작했다. 이제 21km 러닝만 하면 끝이었다.
그런데 그런데, 날씨가 너무 더웠다. 30도가 넘는 기온에 햇살까지 강렬했다. 땀은 비 오듯 내리고 몸은 탈 듯이 뜨거워졌다. 1km 마다 있는 보급소에서 얼음물도 마시고 목덜미에 물도 뿌려보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또다시 몸이 뜨거워졌다. 그리고 양쪽 허벅지에 쥐까지 올라오기 시작했다. 파스 뿌려주는 요원들이 중간중간에 있어 지속적으로 파스를 뿌려가며 뛰었지만 뭉침이 쉬이 가시지 않았다. 나뿐만 아니라 많은 사람들이 힘들어했다. 땡볕 아래 걷는 사람 반 뛰는 사람 반일 정도였다.
그렇게 또 꾸역꾸역 뛰어가는데, 저 멀리 가족들이 보였다. 내가 뛰는 코스 중간에 자리를 깔고 앉아서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7살 아들은 스케치북에 “송현기 파이팅!” 을 적어서 응원하고 있었고 3살 딸은 뭔지 모를 그림을 그려 아빠를 응원하고 있었다.
부모님과 아내, 아들, 딸을 보니 또 없던 힘이 생겼다. 아이언맨 70.3 고성은 러닝이 동일한 코스를 3번 도는 방식이었는데 힘들 때마다 가족들을 보고 힘을 낼 수 있어 참 좋았다. 내가 달려오면 아빠 파이팅을 외쳐주는 아이들 덕에 걷고 싶어도 뛰었던 것 같다. 언제나 가족이 큰 힘이 된다.
중간에 흥겨운 농악을 연주해 주시는 분들도 계셨다. 장구, 북, 꾕가리의 흥겨운 연주는 엄청 큰 힘이 되었다. 그 근방에만 가도 힘이 솟구쳐 더 빨리 뛸 수 있었다. 신명나다, 의 뜻이 저절로 일어나는 흥겨운 기분과 멋이 생기다, 인데 실제로도 그랬다. 농악 연주해주신 분들 덕에 한 걸음이라도 더 뛰었던 것 같다. 이 자리를 빌려 진심으로 감사드린다.
그러는 사이 1바퀴, 2바퀴를 뛰었고 마지막 바퀴를 남겨두게 되었다. 마지막이라 생각하자 갑자기 없던 힘이 생기기 시작했다. 가족들은 모두 결승점으로 자리를 옮겼고 나만 뜨거운 도로 위에 남아 마지막 질주를 하고 있었다.
이제 좀만 더하면 그만 달려도 된다는 생각에 웃음이 났고 조금 있으면 차가운 무언가를 앉아서 먹고 마실 수 있다는 생각에 즐거워지기 시작했다. 18km 경과 팻말이 보이자 정말 끝이구나 라는 생각과 동시에 속에서 뜨거운 무언가가 올라오기 시작했다. 새벽부터 차가운 바닷물에 들어가 1.9km 수영하고 땡볕에서 90km 자전거를 타고 뜨거운 도로 위에서 20km 넘게 뛰다가 드디어 결승선에 도달할 수 있다는 생각에 울컥했다. 또 해냈구나, 하는 안도도 있었을 것 같다.
그리고, 드디어 저 멀리 레드카펫이 보이기 시작했다. 아버지와 어머니, 아내와 아이들이 모두 그곳에 서 있었다.
해냈다.
5. 후기 後記
: 내가 철인3종을 좋아하는 이유
누구나 한 번쯤은, 철인3종에 도전해볼까, 라는 생각이 들었던 순간이 있을 것이다. 특히나 운동 깨나했던 사람들이라면 더더욱. 아마도 “철인”이라는 단어의 묘한 매력 때문일 것이다. 강함의 상징인 철(鐵)과 결합된 사람이라니, 듣기만 해도 그 단단함이 느껴진다. 마블의 슈퍼히어로 이름이 “아이언맨 Ironman”인 이유도 여기에 있을 것이다. 암튼 “철인” 칭호는 많은 이들에게 부러움을 느끼게 하는 상징적 의미를 가진다.
그런데, 철인3종에 도전해볼까, 라는 생각이 그대로 도전하자!!, 로 연결되기는 쉽지가 않다. 신체적인 강인함은 둘째치고 실제로 마음의 준비를 하는데 꽤 오랜 시간이 걸리기 때문이다. ‘내가 철인을?’, ‘나 정도가..’, ‘내가 감히..’ 이런 생각들이 결심을 가로막고 있는 것이다. 수영 좀 하다가, 사이클 좀 타다가, 마지막에 좀 달리면 되는 거 아냐, 라고 쉽게 생각하면 좋은데 그게 잘 안 되는 것이다.
물론 그게 잘 안된다. 그 이유는 간단하다. 좀 하고 좀 타고 좀 달리는 거리가 만만치 않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세 가지를 모두 동시에 하루에 진행해야 한다는 부담도 크다. 달리기는 그렇다고 쳐도 수영과 사이클의 거리가 만만치 않다. 특히 바다에서 하는 수영은 많은 사람들이 철인3종을 큰 벽으로 느끼게 하는 주요 원인이기도 하다.
나 역시 그랬다. 꽤 오랜 시간 해보고 싶었는데 막상 도전장을 내밀기까지는 정말 오랜 시간이 걸렸었다. 나는 수영과 사이클을 좋아해 어느 정도 신체적 능력을 갖추었음에도 불구하고 엄두가 나지 않았었다. 맞아, 이 표현이다. 도무지 엄두가 나지 않았다. 그런데 우연한 기회에 대회 참여를 결정했고 완주를 했고 그 기회가 또 이어져 새로운 대회에 나갔고 또 완주를 했다.
지나고 나서 생각해 보니 사실 그렇게 어렵지 않은 일이었다. 준비만 열심히 한다면 보통의 사람이 못할 일이 전혀 아니었다는 것이다. 큰 장벽이라고 느껴졌던 수영도 꾸준히 연습한다면 충분히 가능한 일이었고 (슈트를 입고 하기에 절대 바다에 빠져 죽을 염려는 없다) 사이클도 연습을 통해 익숙해진다면 불가능한 일이 아니었다. 혼자서 하기 어렵다면 동호회에 가입해서 해도 되고 아니면 나처럼 계획 세워서 혼자 해도 충분히 가능하다. 결론적으로, 도전의 의지만 있다면 망설일 필요 없이 도전해도 된다는 것이다.
하지만 반대로 철인이 되기 위한 훈련은 쉽지 않다. 지난한 훈련과정은 필수다. 타고난 철인도 있겠지만 그것만으로는 완주를 담보할 수 없다. 작년에 완주했다고 자만하고 연습하지 않으면 올해는 컷오프 될 수 있는 것이 철인3종 경기이다.
이번 대회에서 러닝을 하다 보니 우연히 가수 션과 함께 달릴 기회가 있었다. (나란히 달렸다는 의미가 아니라 근처에서 달릴 기회가 있었다는 뜻이다) 보급소에 서서 물 마시고 있는데 자원봉사자들이 어머 션이다, 해서 옆을 보니 가수 션이었다. “얼음물 있나요”, 한 마디였고 물을 마시고 다시 뛰기 시작했다. (션 가수 활동 당시에 내 나이를 감안하면) 당연히 나보다 나이가 많을 것이기에 난 뛰면서 금방 제칠 수 있을 것으로 생각했다. 그런데 한참을 같이 뛰다 치고 나가더니 나중에는 보이지도 않게 멀리 뛰어 나갔다. 와, 정말 체력 좋네.
나중에 집에 와서 나이를 검색해 보니 나보다 10살 많은 만 51세였다. 원래 철인 체질인가 보다 생각하고 인스타에 들어가 보니 아이언맨 70.3 고성 대비 매일매일 꾸준히 운동을 하고 있었다. 나보다 훨씬 더 많은 훈련을 하고 있었다. 원래 타고난 것도 있었겠지만 결국은 노력을 해야만 잘 할 수 있는 것이었다. 그의 지난 노력들을 인스타를 통해 보면서 그의 달리기가 왜 그렇게 빠른지, 전체기록은 또 왜 그리 좋은지 쉽게 알 수 있었다. 노력은 절대 배신하지 않는다, 이 말이 딱 맞는 운동이 철인3종 경기 같다.
어쩌면 보통의 사람이 꾸준한 노력을 통해 사람들이 선망하는 철인이 될 수 있다는 것이, 그리고 그 안에 많은 스토리가 숨어있다는 것이 철인3종의 매력이 아닌가 싶다. 바다에서 그리고 도로에서 만난 사람들이 저마다의 스토리를 가지고 이 힘든 경기에 도전하고 있었다.
젊은 사람도 있었지만 나이 든 분들도 계셨고 여성분들도 많았다. 나이나 성별보다는 얼마나 준비했느냐 어느 정도 진심을 가지고 있느냐에 따라 결과가 나오는 매우 정직한 운동이었다. 70세 이상 노인이 빠르지는 않지만 천천히 전진하고 있는 모습을 보면 감동과 함께 존경심마저 든다.
나에게 철인3종은 아마도 40대 내내 매년 한 번씩 대회를 준비하면서 세월에 저항할 수 있는 건강을 유지한 스토리로 남지 않을까 생각한다. 계속 열심히 한다면 말이다.
아이언맨 70.3을 완주했다. 기록은 7:20:16. 7분이 아니라 7시간이다. 난 왜 그 긴 시간을 물과 길에서 보내야만 했을까.
처음 생각은 달랐다. 작년에 참가한 시카고 철인3종 경기를 한 번 더 하고 싶었다. 하지만 경기 개최일이 내가 귀국한 뒤였다. 포기해야 했다. 그 순간 아이언맨 Ironman 이 눈에 들어왔다. 오호 이걸 해볼까.
하지만 아이언맨은 만만치 않았다. 작년 시카고 철인3종과 비교해보자.
시카고 철인3종 올림픽 코스: 총 31.93마일[수영(0.93마일), 자전거(24.8마일), 달리기(6.2마일)]
아이언맨 70.3: 총 70.3마일[수영(1.2마일), 자전거(56마일), 달리기(13.1마일)]
아이언맨 70.3의 경우, 마일을 익숙한 킬로미터로 변환하면, 수영(1.93km), 자전거(90.12km), 달리기(21.08km) 였다. 이 수치 실화인가.
쉽게 설명하면 이렇다. 미시건 호수의 파도를 맞으며 1.93km 수영하고 나면 몸이 퍼진다. 당연히 하루 정도는 쉬어줘야 한다. 하지만 아이언맨은 그런거 없다. 바로 자전거에 몸을 싣고 90.12km를 타야한다. 자동차로도 1시간이 넘게 걸리는 그 거리를 3시간 넘게 자전거를 타고나면 몸이 다 부서져 내릴 것이다. 이제는 이틀 정도 쉬어줘야 한다. 하지만 아이언맨은 그런거 없다. 바로 운동화 끈을 묶고 21.08km 하프마라톤을 뛰어야 한다. 이게 바로 아이언맨 70.3이다. 한마디로 말하자면, 몹시…. 미친짓이다.
하지만 사람의 욕심은 끝이 없고 같은 실수를 반복한다. 나는 귀신에 홀린듯 지난 3월 27일, 대회를 정확히 3개월 앞둔 시점에 아이언맨 70.3에 등록하였다. 지옥문 오픈이었다.
그리고 등록과 동시에 훈련을 시작했다. 시간만 나면 집근처에서 5km 또는 10km를 뛰었고 주2회 1.5km 수영도 잊지 않았다. 자전거는 집근처 Illinois prairie path 를 따라 20km 씩 연습했다. 그리고 대회 한 달 전부터는 자전거 후 러닝하고, 수영 후 자전거 타는 등 근전환 훈련도 지속적으로 시행했다. 막판에는 무릎 부담을 줄이기 위해 체중을 빼기 시작해서 대회일 기준 5kg 감량에 성공했다. 마지막 봄학기 수업, 졸업준비와 동시에 진행했던 통에 몸과 마음이 몹시 힘들었다. 아내 역시 여기가 태릉 선수촌이냐며 푸념을 하곤 했지만 항상 남편의 도전을 응원해주었다. 우리 와이프 살아있는 부처임.
그리고 드디어 대회일인 6월 26일이 돌아왔다. 바로 오늘이었다.
새벽 5시 아내는 나를 대회장에 데려다 주었다. 나는 수영 슈트와 자전거 클릿 슈즈, 헬맷 등을 한 짐 갖고 Transition area로 향했다. 이른 시간이었지만 벌써부터 많은 인파로 북적이고 있었다. 나는 자전거 상태를 확인하고 가져온 물건들을 순서대로 정리했다. 동이 터오고 있었고 수영 준비를 위해 슈트를 입었다.
근데 파도가 심상치 않았다. (미시건은 호수지만 바다처럼 파도가 친다) 작년에는 날씨 때문에 수영이 취소되었지만 올해는 예정대로 진행되었다. 워밍업 후 줄을 서서 차례를 기다렸다. 컷오프(cut-off) 시간은 1시간 10분(1.93km)이었다. 그 안에는 못들어오면 탈락이었다. 코스는 600미터를 전진한 후 오른쪽으로 돌아 700미터를 나아간 후 다시 오른쪽으로 돌아 600미터 가량을 전진하여 육지로 돌아오는 코스였다.
내 차례가 되었고 서서히 물 속으로 들어갔다. 물은 많이 차지 않았다. 자유형을 위해 스트로크를 몇 번 했다. 그런데 이상했다. 몸이 앞으로 거의 나아가지 않았다. 나아가기는 커녕 파도에 몸이 실려 오르락 내리락만 반복했다. 옆을 보니 다른 사람들도 마찬가지였다. 파도 때문이었다. 앞으로 나아가기 위해서는 파도를 뚫어야만 했다. 대략 난감이었다.
방법이 없었다. 힘을 내서 파도와 맞서 나아가기 시작했다. 힘이 두 배로 들었다. 자유형과 평형을 교차로 하며 법석을 부려도 전진이 더디기만 했다. 내 앞과 뒤, 옆에 사람들이 모두 망연자실한 표정으로 물 위에 둥둥 떠있었다. 타이타닉 침몰 후의 모습 같았다.
그렇게 한참을 꾸역꾸역 전진해서 600미터 부표를 터치할 수 있었다. 시간이 많이 소모되었다. 이제 오른쪽으로 돌아 700미터를 가로로 전진해야 했다. 파도를 옆으로 놓고 하는 수영이라 크게 어렵지 않았다. 그런데 한참을 똑바로 수영해도 몸이 파도에 떠밀려 부표 안쪽으로 들어가기 일쑤였다. 똑바로 가려면 왼쪽으로 20-30도 기울여 수영을 해야했다. 톱니모양 전진이었다.
그렇게 또 어찌어찌 700미터 부표를 터치했다. 다시 오른쪽으로 돌았다. 이제는 육지를 향해 600미터를 나아가야 했다. 이건 쉬웠다. 내 뒤에서 파도가 나를 육지를 향해 밀어주었다. 쉬지 않고 수영했고 결국 육지에 발을 디딜 수 있었다. 시간이 관건이었다. 시계를 보니 다행히 컷오프 2분 전이었다. 01:08:04. 휴, 살았다.
파도와 씨름을 하고 나오니 모래사장을 걷는데 다리가 심하게 후들거렸다. 이대로 그냥 집에 가고 싶었다. 가서 해물라면 먹고 싶었다. 하지만 그럴 수는 없었다. 자전거를 타야했다. Transition area로 가서 슈트를 벗고 티셔츠를 입은 후 클릿 슈즈를 신고 자전거를 끌고 나왔다. 시원한 공기가 코끝을 간지럽혔지만 전혀 신이 나지 않았다. 앞으로 90.12km 를 타야했다. 아…
미시건 benton harbor 근처 도로는 만만치 않았다. 울퉁불퉁한 곳도 많았고 자갈도 많았다. 작년 시카고 lakeshore 드라이브는 여기에 비하면 실크로드였다. 자전거 바퀴 펑크가 걱정되는 수준이었다. 아니나 다를까 코스 초입부터 두 명이 바퀴가 터져 고치고 있었다. 도로 위에 시선을 집중해야만 했다.
자전거 코스는 길고 지루했다. 초반에는 차가 많은 곳을 달리더니 조금 지나자 시골길을 달리기 시작했다. 체감상 70퍼센트 이상이 시골길이었던 것 같다. 자전거간 앞뒤 거리가 꽤 멀었기에 나는 거의 모든 시간 자전거와 둘이서만 있게 되었다. 그리고 3시간 넘는 시간동안 자전거와 많은 이야기를 나눴다. 발은 계속 페달을 구르면서도, “저 작물은 도대체 뭘까, 너는 아니?” “여기에 와이너리가 있네, 포도가 잘 자라나보다” “나 허리 아픈데 넌 어떠니, 아프지 마렴” “너 바퀴 펑크나면 안돼, 제발 그러지마” 뭐 이런 식이었다. 그러다 자전거 타기 너무 힘들면 같이 욕도 했다. 여기에 쓸 수 없는 욕을 하며 아픔을 극복했다.
암튼 총 3시간 44분을 달려 나와 자전거는 코스를 무사히 마칠 수 있었다. 고통의 시간이었다. 허벅지는 터지려고 했고 허리는 끊어질 것 같았다. 나는 또 다시 Transition area로 돌아왔다. 자전거를 걸어놓고 티셔츠를 갈아입고 운동화를 신었다. 이제 뛰어야 했다. 순간 운동화를 미시건 호수에 던져버리고 싶었지만 그럴 수 없었다. 지금까지 한 게 너무 아까웠다. 돌아가기엔 자전거를 너무 많이 탔다.
신발끈을 새로 묶고 뛰기 시작했다. 바로 허벅지가 올라왔다. 마사지가 필요했지만 그냥 무시하고 뛰었다. 마사지 하는 순간 쥐가 나서 허벅지를 마비시킬 것 같았다. 이럴땐 무시가 답이었다. 허벅지도 타이밍이 안좋은 걸 알았는지 몇 번 승을 내다가 잠잠해졌다. 그렇게 마지막 하프마라톤이 시작되었다.
코스가 약간 특이했는데 후원사인 월풀 Whirlpool 본사를 두 바퀴 도는 코스였다. 3km 정도 뛰니 월풀 본사가 나왔다. 헤드쿼터, 국제관, 커뮤니티센터, 어린이집을 골고루 돌아보도록 코스가 구성되어 있었다. 그곳을 두 바퀴나 돌면서 삼성전자 평택공장이 아닌 것에 감사한 마음이 들었다. 그렇게 후원사 투어를 겸해 총 21.08km 를 달렸다. 기록은 2시간 11분이었다.
러닝이 끝나는 곳에 Finish 라인이 있었다. 사람들의 환호를 받으며 레드카펫 위를 뛰었다. 파도를 뚫고 수영하던 모습, 도로에서 자전거를 타던 모습, 땡볕에서 달리던 모습이 주마등처럼 스쳐갔다. 순간 울컥했다. 아침 7시 10분에 물에 입수해서 오후 2시 30분이 되어서야 피니쉬 라인을 통과할 수 있었다. 진행자가 내 이름을 불러줬고 나는 결승선을 지나 아내와 아이들과 진한 포옹을 할 수 있었다.
여름 더위가 시작될 무렵인 지난 5월, 나는 도형이와 시카고대 교정을 산책하고 있었다. 도형이는 시카고대 Booth MBA에 다니는 90년생 동생으로, 시카고 물정 어두운 나를 이래저래 잘 케어해주고 있는 착한 동생이다. 20살에 미국 노스웨스턴대 학부로 유학 와서 벌써 10년 넘게 시카고에 살고 있으니 미국 생활은 어느 정도 도가 텄다고 할 수 있다.
우리는 작년 가을학기 초에 처음 만나 매주 한 차례씩 정기적으로 만나고 있었다. 남자끼리 무슨 할 말이 많겠냐마는 한 번 만나면 미니멈 3~4시간씩 이야기를 나눌 정도로 언제나 대화가 끊이지 않는다. 그날도 우리는 오후 3시에 만나 해질 무렵까지 대학 교정을 이리저리 돌아다니며 이야기 꽃을 피우고 있었다. 그러다 내 차 앞에서 이제 작별인사를 하려고 하는데 도형이가 뜬금없이 말했다.
– 형, 저 올 여름에 시카고 트라이애슬론 대회 나가려고요. 어제 등록했어요.
– 응..
난 대꾸할 말을 찾지 못하고 약간 멍해져 있었다. 트라이애슬론(철인 3종 경기), 참으로 오랜만에 듣는 단어였다. 내 머릿속 어딘가에 그 단어가 남아 있을 텐데, 하는 생각이 슬몃 들었다.
결혼 전인 2012년 무렵, 나는 철인 3종 대회를 나가기 위해 열심히 연습했던 적이 있었다. 하지만 이런저런 사정으로 못 나가게 되었고 이제는 그저 마음속 버킷리스트로만 남아있는 상태였다.
– 그거 힘들지 않아?
– 괜찮아요. 저 17, 18년도에 두 번 했었는데 괜찮았어요.
– 그래? 실은 나 예전부터 해보고 싶었는데.
– 그래요? 그럼 같이 하실래요?
– 그럴까?
차를 운전해서 집으로 오는 내내 가슴이 떨렸다. 오랜 꿈이었는데, 지금 내가 할 수 있을까?
집에 도착해서 아내와 상의했고, 아내는 흔쾌히 나의 도전을 지지해주었다. 나는 곧바로 온라인을 통해 선수 등록을 마쳤다. 2021년 5월 25일, 대회를 정확히 95일 앞둔 때였다.
2. 결혼 전
2012년 4월 11일, 제19대 국회의원 선거가 끝났다. 그리고 다음날 나는 서점에 가서 한 권의 책을 샀다.
“ABC 철인 3종 경기”
특별한 이유는 없었다. 선거업무가 끝났고, 그저 도전해보고 싶다는 마음뿐이었다. 아주 얇은 기본서였다. 나는 그 책을 줄을 그어가며 열심히 읽었다. 그리고는 사무실 책상 제일 잘 보이는 곳에 꽂아놓았다.
한 번 시작해볼까?
나는 제일 먼저 수영 강습을 등록했다. 안양종합운동장 월수금 오전 7시 직장인 수영반, 명칭은 돌고래반이었다. 초등학교 때 수영을 배운 적이 있었지만 정말 오래전 일이었다. 기초부터 제대로 다시 배워보자는 마음에 초급반부터 시작했다.
말이 오전 7시지 직장인이 따박따박 출석하기 쉬운 시간대는 아니었다. 수업에 지각하지 않으려면 아침 6시에 일어나야만 했다. 월수금마다 고난의 행군이었다. 하지만 뭔 바람이 불었는지 나는 아침 수업은 물론 퇴근 후에 시간이 나면 자유수영을 하고 집에 가기도 할 정도로 정말 열심히 했다. 오리발 사서 접영까지 배우고 나서야 수강을 멈췄는데, 당시 주말에 가서 연습하면 25미터 60번 터치 (1.5km 수영) 정도는 쉼 없이 해낼 정도가 되었다.
자전거도 샀다. 주로 주말이나 퇴근 후에 자전거 길을 달렸다. 당시 살던 의왕 원룸 바로 앞에 학의천이 흘렀는데 자전거 길이 아주 잘 되어 있었다. 이 학의천 자전거 길은 안양 비산동 부근에서 안양천으로 합쳐져 광명, 고척, 목동을 거쳐 한강까지 연결되었다. 총길이 편도 30km였다. 주말에 이 길을 따라 한강을 다녀오기도 했다. 평일 저녁에는 금천 또는 가산까지만 갔다 돌아오는 왕복 40km, 철인 3종 풀코스를 주로 연습했다.
달리기는 자전거길 바로 옆 산책로를 따라 달렸다. 비산동 내비산교까지 갔다가 돌아오면 딱 10km 코스가 되었다. 빡세게 내달리면 기록이 50분 안쪽으로 나올 정도로 당시에는 몸이 참 좋았다. 젊기도 했고.
그렇게 열심히 운동하면서 늦봄과 한여름을 보냈다. 하지만 여름이 끝날 무렵 회사가 대선 국면에 들어섰고, 나는 여러가지 이유로 더 이상 운동을 할 수 없게 되었다, 아쉽게도.
3. 다시 시작
예전에 열심히 연습했다고는 하지만, 벌써 9년 전 일이었다. 그래도 아직 95일이나 남았잖아, 라고 애써 위로해보지만 막상 준비하자니 모든 게 막막했다.
일단 만만한 러닝부터 다시 시작했다. 운 좋게도 집주인이 남겨놓고 간 러닝머신이 차고에 있었다. 일단 8km/h 속도로 달려보았다. 후달렸다. 10분 달렸는데도 숨이 턱 밑까지 차올랐다. 그날 이후 하루에 30분 이상은 천천히 걷더라도 무조건 뛰자는 생각으로 이 악물고 버텼다. 그렇게 1주, 2주 지나자 점차 효과가 나타나기 시작했다.
다음은 자전거였다. 작년에 NBA 유니폼 입은 흑인 청년에게 산 중고 MTB가 아직 집에 있었다. 집 근처 Illinois Prairie Path에서 우선 연습해보기로 했다. 포장도로는 아니었지만 자갈이 거의 없는 산책길이어서 자전거 연습에 안성맞춤이었다. 집에서 St. James Farm까지 다녀오면 대충 거리도 20km 정도 되어 하프코스 연습에 딱이었다. 다만 처음에는 10km만 타도 다리가 후들거렸다. 안 쓰던 근육을 써서 그런지 다 타고나면 꽤 많이 뭉치기도 했다. 그래도 이틀에 한 번씩은 꼬박꼬박 타기로 마음먹고 꾸준히 연습했다. 그리고 중간에 로드바이크를 구입해서 본격적으로 타기 시작했다. 역시 점점 나아지기 시작했다.
마지막은 수영이었다. 가장 연습이 필요한 종목이기도 했다. 일단 집 근처 Rice Pool이 6월 12일부터 개장이었다. 시즌권(Pool Pass)을 끊고 거의 매일 같이 수영장에 출근했다. 처음에는 25미터 레인 왔다 갔다 하기에도 벅찬 수준이었다. 호흡도 가빠지고 팔 힘도 부족했다. 하지만 연습에 연습을 거듭하니 7월 초부터는 25미터 30번 터치가 가능해졌고 7월 중순 로드트립 출발 전에는 휴식 없이 자유형 60번 터치(1.5km)까지 성공하는 수준으로 발전하였다. 락스 물에 눈밑이 허는 고통을 이겨내고 꾸준히 연습한 결과였다.
세 종목의 연습이 어느 정도 진행되니 각각의 종목을 연계하여 연습할 필요가 생겼다. 철인 3종은 수영 – 자전거 – 러닝을 한꺼번에 해야 하기 때문이었다. 따라서 어느 정도 체력이 갖추어졌다고 생각한 6월 말부터는 자전거 20km 타고 바로 러닝 5km를 뛰는 근전환 연습을 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수영까지 풀코스가 가능해진 7월 중순 이후에는 격일로 자전거+러닝 하프 / 수영 풀코스 연습을 병행하였다.
이때부터 아내는 여기가 태릉인지 시카고인지 헷갈려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모진 연습 덕분에 나는 10년 만에 가장 좋은 몸상태를 가질 수 있었다. 도쿄행 티켓, 아니 철인 3종 완주가 눈앞에 보이기 시작했다.
4. 길 위에서
한참 체력이 좋아진 7월 말, 우리 가족은 서부로 로드트립을 떠났다. 이미 예정된 여행이었다. 7월 24일부터 8월 9일까지 16박 17일의 대장정이었다. 아무리 철인 3종 시합이 있더라도 가족 팽개치고 운동만 하고 있을 수는 없었다. 우리 가족은 예쁜 추억을 만들기 위해 서부 투어에 나섰다.
하지만 사실 좀 불안했다. 햄버거와 피자로 끼니를 때우고 하루 6시간씩 운전을 하다보면 금새 예전 모습으로 돌아가 버릴 것만 같았기 때문이었다.
마냥 가만있을 수는 없었다. 그래서 운전 중간중간 휴게소에 들를 때마다 팔굽혀펴기를 100번씩 했다. 그리고 숙소에 가면 피트니스 센터에 가서 러닝을 30분씩 뛰었다. 호텔 풀장이나 국립공원 호수에서 수영을 하기도 했다. 지금 생각해보면 참 극성이었다. 하지만 내게는 그만큼 간절한 꿈이어서 그랬던 것 같다.
암튼 나의 불안함은 8월 9일 여행에서 돌아온 당일 오후에 풀장에 가서 수영 풀코스 연습을 하고 다음날 자전거+러닝 하프 연습을 하고 나서야 가실 수 있었다. 다행이었다. 이후 D-Day인 8월 29일까지 꾸준히 연습했다. 연습이 쌓일수록 완주에 대한 자신감도 증가할 수 있었다.
5. 대회 전 날
시카고 트라이애슬론 대회는 38년 전인 1983년부터 시작된 행사로, 미국에서 가장 많은 인원이 참가하는 대회 중 하나였다. 대회는 시카고 다운타운에서 진행되며, 내가 등록한 올림픽 코스의 경우 미시간 호수에서 1.5km 수영, 레이크쇼어 드라이브 등 도심 관통 도로에서 40km 자전거, 미시간 호수변 러닝 10km로 구성되어 있었다.
대회 하루 전날, 시카고 힐튼 호텔로 향했다. 그곳에서 오리엔테이션과 패킷 수령이 있었다. 호텔 안에는 다부진 체격을 가진 남녀노소 선수들이 밀집해 있었다. 선수들을 보자 대회 참가가 비로소 실감 나기 시작했다. 오리엔테이션을 마치고 트랜지션 에어리어로 가서 미리 자전거를 거치했다. 이제 모든 준비를 마쳤고 내일 실제 경기를 뛰기만 하면 되었다. 자전거에게 잘 부탁한다고 속삭인 후 자리를 떠났다.
대회 전날은 도형이네 집에서 묵기로 했다. 도형이는 미시간 호수가 내려다보이는, 대회장 바로 뒤에 있는 스튜디오 아파트에 살고 있었다. 도형이가 직접 저녁식사를 차려주었다. 우리는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누며 즐겁게 저녁시간을 보낸 후 조금 늦게 잠자리에 들었다.
우리는 다음날 새벽 4시에 일어나야 했다. 하지만 나는 너무 긴장한 나머지 거의 잠을 이룰 수 없었다. 뜬 눈으로 이리저리 뒤척이다 겨우 1시간 남짓 잠을 잔 채 핸드폰 알람 소리를 듣게 되었다.
아, 큰일 났다.
6. 완주
새벽 4시 30분, 이미 많은 선수들이 트랜지션 에어리어에 도착해서 옷을 갈아입고 있었다. 나 역시 자전거 아래에 러닝과 사이클 짐을 정리하고 천천히 수영 슈트를 입기 시작했다. 거의 잠을 못 자긴 했지만 긴장감 때문인지 정신만은 매우 또렷했다.
조금 지나니 동이 터오기 시작했다. 잔잔한 미시간 호수 너머로 붉은 해가 떠올랐다. 그 사이로 수많은 선수들이 긴장된 얼굴로 몸을 풀고 있었다. 나는 35-39세 그룹에 속해있었고 파란색 수영모를 쓰고 있었다.
6시, 드디어 첫 번째 그룹이 출발하였다. 그리고 내가 속한 그룹은 12번째로 출발이 예정되어 있었다.
6시 44분, 드디어 우리 그룹의 차례가 되었다. 입수 신호에 따라 천천히 미시간 호수에 들어갔다. 생각보다 물이 차가웠다. 오픈워터 수영을 하는 건 이번이 처음이었다. 더군다나 슈트 입고 수영도 처음이었다. 순간 연습한 대로 될지 의문이 들었다.
4분 간의 물 속 워밍업을 마치니 출발 호각이 울렸다. 바로 자유형을 시작했다. 그런데 긴장감 때문인지 호흡이 가빠졌고 스트로크도 제대로 되지 않았다.
어, 어, 왜 이러지
당황되기 시작했고 그로 인해 더더욱 몸은 움직여지지 않았다. 거기다 슈트의 탄력으로 팔도 제대로 돌아가지 않았다. 총체적 난국이었다. 미리 슈트를 입고 오픈워터 수영을 연습해보지 않은 게 큰 실수였다.
내가 어버버 하는 사이 파란색 수영모를 쓴 같은 그룹 선수들은 이미 저만치 앞서 나가고 있었다. 주위에 아무도 없이 나 홀로 미시간 호수 한가운데 떠있었다.
나는 누구 여긴 어디?
여전히 호흡은 잡히지 않았고 멘탈은 계속 흔들리고 있었다.
그러다 4분 후 다음 그룹의 출발을 알리는 호각소리가 들렸다. 그리고 곧이어 시끄러운 물소리를 내며 내 옆으로 보라색 수영모를 쓴 선수들이 쏜살같이 지나갔다.
내가 완주할 수 있을까?
회의가 들기 시작했다. 하지만 동시에 지난 3개월간의 연습을 이렇게 허무하게 날리기 아깝다는 생각이 들었다.
천천히 내 페이스대로 다시 한 번 해보자.
그래서 정말 억지로 억지로 멘탈을 다 잡으며 천천히 천천히 한 팔 한 팔 내젓기 시작했다. 그렇게 어찌어찌 수영을 하여 겨우 500미터 라인을 통과했다. 아직도 1km가 남아있었다. 하지만 그 순간 마법처럼 긴장이 풀어지며 호흡이 잡히기 시작했다.
또다시 4분 후 그 다음 그룹 출발 호각이 울릴 즈음에는 다행히 그간 연습한 페이스대로 수영을 할 수 있게 되었다. 호흡은 편해졌고 팔 동작도 수월해졌다. 스트로크 50번 하고 고개 들어 방향 잡고를 반복하다 보니 어느새 종료지점에 가까워져 있었다. 그리고 감격스럽게도 생애 첫 오픈워터 1.5km 수영을 끝낼 수 있었다. 자원봉사자들이 내 양 쪽 팔을 잡고 육지로 끌어내는 순간, 아 이제 됐다, 하는 소리가 저절로 입에서 나왔다.
이후 자전거와 러닝은 그리 어렵지 않았다. 실전처럼 평소에도 연습했기에 힘들지 않게 완주할 수 있었다.
러닝 마지막 200미터 정도 앞두고 오른쪽으로 크게 도는 코너가 있었다. 그곳을 돌았더니 <FINISH> 라고 큼지막하게 쓰여진 결승선이 눈앞에 들어왔다. 그 옆으로 관중들이 빼곡히 들어차 있었고 그들은 내게 큰 환호성과 박수를 보내주었다. 관중의 격려 속에 결승선을 향해 뛰어 들어가는데 온몸에 전율이 느껴졌다. 지난날의 노력이 그 순간 모두 보상받는 듯했다.
결승선을 통과하고 나니 그 옆에 아내와 준서, 민서가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지난한 연습 기간 내내 내가 완주할 수 있도록 물심양면 도와준 나의 가족이었다.
꿈을 이룬 나는, 참 행복한 사람이다.
ps. 결승선 통과할 당시 선글라스를 쓰고 있었다. 그래서 가족 있는 곳으로 갔을 때 몰래 준서 얼굴을 살펴볼 수 있었는데 엄청 감동받은 얼굴이었다. 내게는 그 표정이 메달보다도 더 값진 선물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