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과문은 어떻게 써야 하는가
사람들은 종종 사과문을 써야하는 상황에 부딪히게 된다. 어떤 사고가 일어났을 때, 혹은 개인 혹은 조직의 잘못이 일어났을 때 우리는 사과문을 써야 한다. 그렇다면 사과문은 어떻게 써야 하는가.
일반적으로 우리 사회에서는 사과하는 행위가 중요한 게 아니라, 저 사람이 얼마나 진심으로 반성하고 사과하는 마음을 가지고 있는지가 훨씬 더 중요하다고 한다.
실제로 어떤 사고가 일어났는데 바로 사과하지 않고 진상 규명을 다 거친 후에 한참 지나 사과를 하게 되면 진심이 보이지 않는다고 생각하여 사과를 받아들이지 않기도 한다. 잘잘못을 다 따진 후에 사과를 하면 진정성이 의심된다는 것이다.
심리학 연구결과에 따르면, 일반적으로 타인의 행동이 얼마나 의도된 것인가, 즉 우연이 아니라 개인적 의지가 반영된 행위인가를 가늠할 때, 사람들은 자동적으로 몇 가지를 고려한다고 한다.
첫째, 다른 행동을 할 선택의 여지가 있었느냐의 여부이다. 다른 행동을 선택할 수도 있었는데 결국 어떤 행동을 했다면, 그 행동은 더 의도적으로 보인다.
둘째, 어떤 행동을 하기 위한 어려움이 있었다고 판단되면 그 행동은 더 의도적이라고 판단된다. 쉬운 행동보다는 역경을 이겨낸 행동에 더 진심이 담겼다고 생각하는 원리이다.
셋째, 그 행동에 집중하고 있다고 느껴지면 더 의도적으로 느껴진다.
이러한 원리를 종합해보면, 어떤 사과가 진심이 담긴, 마음에서 우러난 사과인지를 가늠해볼 수 있다.
우선 굳이 안 해도 되는 사과를 하거나 기대보다 더 많은 사과를 할 때, 사과를 하지 않고 피할 수 있음에도 사과를 할 때 사람들은 그것을 진심으로 여긴다.
반대로, 몰릴 만큼 몰려서 더 이상 도망갈 길이 없어 보일 때 하는 사과는 해봤자 말짱 도루묵이다. 이왕이면 가기 어려운 곳에서 하기 어려운 형태로 하는 사과가 진심이 담긴 사과로 보인다.
이제 사과문을 쓰는 단계로 가보자. 사과문을 쓸 때 가장 처음 드는 생각은 일단 나를 변호하고 싶다는것이다. 잘못하긴 했지만 내가 한 잘못보다 더 많은 비난을 받을 때 사람들은 누구라도 변명을 하고 싶어진다.
사람들이 자신을 변호하며 사과하려고 할 때 그들은 딜레마에 빠진다. 사과는 후회의 감정을 전달하지만, 변호는 그런 감정을 경감하기 때문이다. 자기 변호를 계속 생각하다보면 본래의 사과를 경감해야 할 상황이 오기도 한다. 따라서 그처럼 지속적인 자기 변호는 본래의 사과를 진실하지 않거나 불완전한 것으로 만들 가능성을 높여 준다.
이러한 자기 변호가 심해지면 피해에 대해 사과하기를 거부하고 관련된 핑계만 대는 방식으로 사과가 변질되게 된다. 그러다 결국은 사과하는데 실패하고 사고에 대한 책임도 인정하지 않는 데까지 이르게 된다. 최악의 사과가 되는 것이다.
따라서 사과문을 잘 쓰기 위해서는 일단 자기 변호에 대한 생각은 머리 속에서 모두 지워야 한다. 그리고는 오직 자기가 무엇을 잘못했는지에 생각을 몰두해야 한다.
그렇다면 사과문에는 무엇을 반드시 담아야 할까.
첫째는, 자신의 행동이 왜 잘못되었는지를 본인이 확실하게 인지하고 있음을 써야 한다. 특히 상대방에게 자신이 어떤 행동을 했고 그 행동이 왜 잘못되었는지를 본인이 확실히 파악하고 있음을 분명하게 전달해야 한다.
둘째는, 그 행동이 피해자들에게 어떤 방향으로 나쁜 영향을 끼쳤는지를 적어야 한다. 두루뭉실하게 죄송하다고 해서는 안되고, 구체적으로 피해자는 누구이며 어떤 영향을 미쳤고 얼마나 피해를 받았는지 상세하게 적시해야 한다.
셋째는, 무조건적인 반성을 하고 있음을 알려야 한다. 조건을 다는 순간 사과가 변명으로 들릴 수 있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사과를 하면서 "누군가에게 상처를 줬다면" 또는 "누군가가 불편했다면" 하는 식의 조건을 단다면 피해를 받은 사람들에게 두 번 상처를 주는 결과가 될 수도 있다.
넷째는, 본인이 얼마나 많이 반성하고 있는지 상대방이 확실히 느낄 수 있도록 분명하게 사과문을 작성해야 한다. 단순히 "진심으로" 또는 "가슴 깊이" 라는 말을 쓰는 것보다는, 더 구체적으로 본인이 얼마나 많이 반성하고 있는지를 객관적 수치 등을 통해 구체적으로 알려줄 필요가 있다. (예를 들어, 24시간 비상근무, 피해 대표자와 12시간의 대화 등)
끝으로, 앞으로는 그러지 않겠다는 다짐을 담아야 한다. 다짐은 분명하고 구체적이어야 한다. 그리고 피해에 대한 구제책 혹은 대안이 있으면 앞으로 어떻게 할 것임을 분명히 밝히는 것이 좋다.
우리는 누구나 잘못을 한다. 하지만 그 뒷수습에 따라 잘못이 줄어들 수도 있고 오히려 늘어날 수도 있다. "말 한 마디가 천냥 빚을 갚는다"는 옛말이 괜히 있는 것이 아니다. 따라서 사과를 잘해야 한다. 제대로 된 사과를 통해 우리는 그 상황을 수습할 수 있을 뿐 아니라 오히려 반등의 기회로 삼을 수도 있기 때문이다.
사과문을 써야 하는 이들에게 이 글이 많은 참고가 되었으면 좋겠다.
끝으로, 잘 쓴 사과문으로 오랜기간 회자되고 있는 삼성전자 이재용 회장의 메르스 관련 대국민 사과문을 첨부한다.
참고 자료
허태균, 어쩌다 한국인
사과드립니다.
저희 삼성서울병원이
메르스 감염과 확산을 막지 못해
국민 여러분께 너무 큰 고통과 걱정을 끼쳐 드렸습니다.
머리 숙여 사죄합니다.
특히 메르스로 인해 유명을 달리하신 분들과 유족분들
아직 치료 중이신 환자분들
예기치 않은 격리조치로 불편을 겪으신 분들께 죄송합니다.
저의 아버님께서도 1년 넘게 병원에 누워 계십니다.
환자 분들과 가족 분들께서 겪으신 불안과 고통을 조금이나마
이해하고 있습니다.
환자 분들은 저희가 끝까지 책임지고
치료해 드리겠습니다.
관계 당국과도 긴밀히 협조해
메르스 사태가 이른 시일 안에 완전히 해결되도록
모든 힘을 다 하겠습니다.
저희는 국민 여러분의 기대와 신뢰에 미치지 못했습니다.
제 자신 참담한 심정입니다. 책임을 통감합니다.
사태가 수습되는 대로 병원을 대대적으로 혁신하겠습니다.
어떻게 이런 일이 발생했는지 철저히 조사하고
재발방지를 위해
최선의 노력을 다하겠습니다.
이번 일을 계기로
응급실을 포함한 진료환경을 개선하고
부족했던 음압 병실도 충분히 갖춰서
환자 분들께서 안심하고 치료받을 수 있는 환경을 만들겠습니다.
저희는 앞으로
이런 감염 질환에 대처하기 위해
예방 활동과 함께
백신과 치료제 개발을 적극 지원하겠습니다.
말씀 드리기 송구스럽지만
의료진은 벌써 한 달 이상 밤낮 없이
치료와 간호에 헌신하고 있습니다.
이 분들에게 격려와 성원을 부탁 드립니다.
메르스로 큰 고통을 겪고 계신 환자 분들의
조속한 쾌유를 기원하면서
다시 한 번 진심으로 사과 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