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용한 퇴사
조용한 퇴사 Quiet quitting 가 인기다. 마음 속으로 퇴사를 해서 소극적으로 업무를 처리하는 것이다. 초과근무, 열정페이에 지친 젊은이들에게는 귀가 솔깃한 제안으로 보인다. 아래의 17초짜리 틱톡 영상이 그 시작이었고 역시나 반응이 뜨겁다.
이에 대해 의견이 갈린다.
먼저, 조용한 퇴사가 일과 삶의 균형을 위해 필요하다는 의견이다. 이들은 주어진 일에는 최선을 다하되 남은 에너지는 스스로를 위해 사용하자고 주장한다. 일이 삶의 전부는 아니므로 책임 범위를 넘어서는 일에 정신적, 물질적으로 투자를 하지 않아야 한다는 것이다. 일찍 출근하지도, 늦게 퇴근하지도 말고, 참석이 의무가 아닌 회의에 자발적으로 참석하지도 말자는 것이다.
일견 타당해 보이는 의견이기는 하지만 현실은 조금 다르다. 일반적으로 일(책임)이 명확히 구분(정의)되지 않는다. 공장의 컨베이어 벨트처럼 공정이 확실히 구분되어 있으면 좋겠지만 현실을 그렇지 않다. 계약 당시에는 A, B, C가 주요 업무라고 명시하지만 실제로는 일을 하면서 A', B'', C'''를 해야하는 상황에 직면하게 된다. 따라서 조용한 퇴사자가 본인이 생각하는 일만 한다면, 옆에 동료 직원이 더 많은 일을 떠안게 될 수 밖에 없다.
또한, 업무역량을 키울 수 없어 개인에게 손해라는 의견도 있다. 열심히 일하는 직원은 조용한 퇴사자와 비교되어 더 돋보이게 될 것이다. 적극성과 성실성 면에서 상대적 우위를 점할 것이다. 그런 그에게 더 많은 업무기회가 가는 것은 자연스러울 것이고 회사도 장려할 것이다. 결국 장기적으로는 업무역량에서 차이가 발생하게 될 것이다. 결국 실제 퇴사도 빨라질 수 있다는 것이다.
앞의 여러 의견은 노동자 입장에서만 바라본 것이다. 하지만 고용주도 마찬가지다. 조용한 퇴사의 어쩌면 직접 당사자는 고용주일 수 있다. 그동안 암묵적으로 실시해왔던 무급초과근무로 인한 혜택이 사라짐은 물론 전반적인 조직 분위기도 침체될 수 있는 것이다. 어쩌면 그간에 쌓여있던 "열정페이", "으쌰으쌰", "조직충성"에 대한 시대적 반작용의 산물이라고 보는 것이 맞을 것이다.
그렇다면 앞으로 어떻게 해야 할까.
하버드 비지니스 리뷰는 이에 대해 몇 가지 제안을 해놓았다. (관련 링크)
첫째, 중요 업무를 재정의 해야 한다. 노동자의 업무는 점점 확장되어 갔다. 하지만 불필요한 업무도 있을 것이다. 조용한 퇴사는 내 업무 범위를 넘어서("above and beyond")는 일을 하지 않겠다는 것이다. 따라서 중요 업무를 보다 명확히 정의함과 동시에 불필요한 업무는 과감히 감축해주어야 할 것이다.
둘째, 경청하고 투자해야 한다. 노동자들이 실제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듣고 이해하고 지지해주어야 한다. 단순히 동정심을 보여주라는 것은 아니다. 노동자 주위에 있는 정량적, 정성적 데이터를 모아서 분석하여 그들이 진정으로 원하는 무언가에 투자하라는 것이다. 누구는 월급을 더 받고 싶어하고 누구는 유연근무를 원할 수도 있다. 그들의 니즈를 충족시켜주기 위해 우선 골고루 의견을 들어봐야 할 것이다.
끝으로, 이제 더 이상 업무로 인한 희생을 강요해서는 안된다. 내가 맡은 책임을 넘어서서 다른 직원을 돕는 걸 당연시해서도 안되고, 초과근무로 인해 가족모임 또는 사교모임 참석을 놓치게 해서도 안된다. 노동자들이 자신의 일에 만족하고 희생 없이 열심히 할 수 있도록 고용주는 그들의 생각과 의견을 폭넓게 받아들여야 한다. 그리고 그들이 책임과 업무 범위를 넘어서 일을 할 경우 적절하게 보상을 해주어야 한다.
고용주와 노동자 간는 정보비대칭 상황에 놓여있다. 노동자가 조용한 퇴사를 다짐하며 출근하더라도 고용주는 그런 마음이 있는지 쉽게 알아채기 어렵다. 이러한 상황은 도덕적 해이 (Moral Hazard)를 낳게 되며 사실 모두에게 안좋은 결과를 야기할 수 있다.
이 정보 격차를 줄이는 것은 당연하겠지만 상호간의 신뢰이다. 존중과 타협의 조직문화를 통해 신뢰가 쌓인다면 정보비대칭도 크게 문제되지 않을 것이다. 하버드비지니스리뷰도 같은 맥락이 아닐까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