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로윈 단상
이태원 할로윈 참사로 사망하신 분들의 명복을 빕니다.
이태원은 꽤 오래전부터 외국인들이 많이 모이던 곳이다. 지리적으로 용산 미군기지와 한남동 대사관들에 가깝기에 가능한 일이었을 것이다. 그런 연유로 한국에 전파된 다양한 외국 문화의 산파 역할을 해왔다. 할로윈도 그 중 하나일 것이다.
할로윈은 원래 종교 축제였다. 할로윈의 Hallow 는 신성하다는 뜻이다. 성인의 날이란 기독교 축일이 아일랜드 전통 축제와 섞이면서 유럽에서 뿌리를 내리기 시작했다는 것이 정설이다. 영국 식민지였던 미국도 이에 영향을 받았고 그 경로를 통해 한국에도 퍼지기 시작했을 것이다.
미국 거주 당시 경험을 보면 할로윈은 그저 아이들이 사탕을 나눠주는 행사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었다. 코스튬으로 한껏 꾸민 초등생 이하 아이들이 집을 돌아다니며 "Trick or Treat"을 외치면 주인이 사탕을 내어주는 지역 공동체 행사였다.
자세히 이야기 하면, 할로윈 낮에 자신의 베개잇 혹은 깡통을 들고 아이들이 삼삼오오 모여 동네를 돈다. 거의 모든 집 앞에 사탕 박스가 놓여져 있었기에 별다른 트릭 없이 사탕을 집어서 나온다. 몇몇 집은 직접 주인이 앞에 앉아서 사탕을 나눠주기도 한다. 어른들이 코스튬을 입는 경우는 자기 아이들과 같이 다니기 위해서이다. 할로윈 행사의 주인은 어디까지나 어린 아이들이다.
아래는 내가 미국에서 할로윈을 겪으며 썼던 내용 중 일부이다.
하지만 미국 현지에서의 할로윈은 좀 다르게 느껴졌다. 단순히 코스튬 입는데 그치는 것이 아니라 아이들과 어른들이 서로 교감하는 하나의 축제로 보였다. 각자 개성있게 꾸민 아이들은 집집마다 돌아다니며 사탕을 받았고 그런 아이들을 어른들은 반갑게 맞아 주었다. 예전에 비해 덜하다고는 해도 여전히 많은 집들이 사탕통을 내놓거나 직접 사탕을 주었고 해피 할로윈 인사를 주고 받았다. 어른들은 자신의 어릴적 할로윈 추억을 자라나는 아이들에게도 선물해주고 싶어하는게 아닐까하는 생각이 들정도로 진심으로 아이들을 대하는게 느껴졌다. 겪어보니 왜 할로윈을 많은 이들이 기다리는지 알 수 있었다. (2020. 11. 1. 페이스북 글 중)
그런데 한국에서의 할로윈은 조금 다른 양상의 축제였다. 물론 아이들이 코스튬을 입고 사탕을 받으러 다니는 건 비슷했다. 하지만 여기에 20, 30대 청춘들이 더해졌다. 청춘들의 열기가 분출되는 축제의 한마당 같은 느낌도 더해진 것이다. 유치원과 학교, 학원에서 아이들에게 사탕을 나눠주는 동시에, 20, 30대는 코스튬을 하고 이태원에 가서 술을 마시며 축제를 즐기는 문화가 되어 있던 것이다.
그러면서 한국의 할로윈은 미국보다 더 많은 사람들이 즐기는 또 다른 문화가 되었다. 미국이 어린아이들과 학부모, 동네주민들의 공동체 문화라면, 한국은 어린아이들과 학부모, 동네주민에 더해 청춘들의 문화로까지 영역을 확장하여 40대 이하 대부분이 즐길 수 있는 문화가 된 것이다.
우리 아파트를 예로 들어보면, 할로윈 당일에는 아파트 전체 아이들이 참가하는 축제가 예정되어 있었다. 그리고 개인집들마다 사탕 박스를 현관 앞에 놓아두고 이를 공지해 놓기도 하였다. 할로윈 전날에만 우리집에 방문한 아이들이 30여명에 달하였다. 아마 예정대로 진행되었다면 당일에는 100여명이 넘는 아이들이 다녀갔을 것이다. (물론, 이태원 참사로 인해 축제는 취소되었고 우리 집 사탕박스도 바로 철거되었다.) 그리고 이태원 뿐만 아니라 청춘들이 모이는 지역 곳곳에서 전날부터 할로윈 파티가 진행되고 있었다. 예전 기사를 살펴보면 이러한 이벤트들은 꽤 오랜 기간 이루어져 왔던 일이었다. 5년 전에도 3년 전에도 할로윈은 축제였다.
따라서 우리는 충분히 이러한 상황을 예상할 수 있었다. 이태원에 수십만명이 움집한다 해도 전혀 이상할 것이 없었다. 더군다나 코로나 2년을 겪고 처음 맞는 노마스크 할로윈 행사이기에 이전보다 더 많은 인파가 이태원에 모일 것이라는 점은 분명해보였다. 그럼에도 우리는 그에 대응하지 못했다.
꽃다운 젊은 청년들이 좁은 골목에서 겹쳐서 쓰러져 가는데도 그냥 보고 있을 수밖에 없었다. 길가에서 시민들과 구급대원들 수십명이 동시에 CPR을 하는 장면은 도무지 현실적이지 않아 오히려 영화에 가까웠다. 왜 우리 사회는 그렇게 오랜 기간 우리에게 다가왔던 문화에 대해 무심했던 것일까. 그저 귀신놀이가 아니라 아이들과 청춘들이 손꼽아 기다리는 중요한 이벤트라는 것을 외면했던 것일까. 그리고 결정적으로 위험을 왜 인지하지 못했을까.
새끼 고양이가 위험에 빠지면 어미가 목을 물어 안전한 곳으로 옮겨준다고 한다. 수많은 청춘들이 위험에 빠져 있는데 우리 사회는 그들을 안전한 곳에 옮겨주지 못했다. 우리 사회의 많은 젊은이들이 켜켜이 쌓여 죽어가는데도 우리는 그들은 지켜주지 못하였다.
2022년 할로윈은 슬픔으로 기록될 것이다.
다시 한 번,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